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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입시와 더불어 국회 사서직시험을 준비하면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예상치못한 아버지의 큰 수술과 이런저런 문제들로 인해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 대학원이든 취업공부(국가고시 시험)든 공부를 계속해서 하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되지 못해 좌절감 아닌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었고, 또 마냥 집에서 편하게 취업공부를 하며 대학원 입시도 준비할 수는 없게 되었다.
사서직의 경우, 사서자격증 유무에 따라 시험의 응시자격이 결정되어지기에 거진 졸업을 하고 나서 약간의 텀(term)을 두고 취업이 되곤 하는데, 그러다보니 좋게 말하자면 취업준비생이란 타이틀을 얼마간 달지 않을래야 달지 않을 수가 없는 것.
그러나 나에게 있어 이러한 부모님의 원조는 상당한 부담감으로 다가왔고, 워낙 성격자체가 독립심이 강하기도 하여 부모님의 원조를 받는걸 매우 못마땅해 했었다. 더군다나 임용을 준비해 교사의 길을 걷길 바라는 부모님과, 조금은 다른 길로 나가아고자했던 나와의 코드가 엇갈리면서 '부모님의 원조=임용'이라는 공식으로 나에게 다가왔고, 그러했기에 더욱더 부모님의 원조없이 내가 바라는 무언가를 스스로 성취해내고만 싶어졌다.
따라서 잠시 한 재단법인의 프로젝트 팀에 속해 팀장이란 꼬리표를 달고 일을 시작해보기도 했었으나, 일을 시작하면서 느낀건 '아직은 계속 공부를 하고싶다'는 마음이었고, 이런 마음이 일에 대한 열정보다 더 크기에 일을 하는 내내 나는 즐거움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재단법인이고, 하물며 직함은 나름 프로젝트 팀장이고, 담당하는 프로젝트도 국립중앙도서관의 목차 DB쪽 프로젝트이며, 기관 자체가 작더라도 국립중앙도서관 내에 있다보니 겉보기엔 괜찮은 모양새였을수도 있었겠지만, 그때 당시엔 이 모든게 다 싫었으니 확실히 그때의 그 자리는 나에게 있어선 미련도 없이 깔끔히 떠나야 할 곳이었다. 그러나 일을 그만두고 싶었어도 기관의 프로젝트 진행상, 또 팀장이라는 직함상 쉽게 그만둘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이러한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었으나 역시 결과론적으론 그만둘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진행하던 목차 DB 프로젝트가 자연스레 무산되면서 다른 팀으로 넘어가려던 찰나, 원하던대로 쉽게 일을 그만둘 수 있게 되었고, 그때 내게 남은건 맥이 끊긴 국회 사서직 시험 공부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의 1차 합격 증서뿐이었다.

부모님께선 당연히 이전에 받은 국회에서의 상도 있기에 2차에서 가산점이 있을 국회 시험에 모든 사활을 걸고 임하기를 바랬으나, 이미 그간의 취업에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대다 되려 새로운 곳으로의 새로운 길을 갈망하곤 했던 나였으니, 난 당연히 KOICA에 대한 관심이 더 크게 쏠릴 뿐이었다.
그래서 2차 면접을 보고선 그때 당시 하고 있던 일을 그만 두었고, 이내 면접 합격자가 되어 최종합격을 앞두었을때 조금은 걱정이 되면서도 기대치가 잔뜩 올라가 있었으나, 아쉽게도 어떠한 문제로 인해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합격을 포기해야만 했었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돌발적인 일로 어쩔 수 없이 그리된 일인지라 나에게 있어선 다소 충격으로 다가왔었는데, 이제 끝이라는 생각에, 남들보다 뒤쳐진것도 모자라 이젠 따라 잡을 여력 조차 힘에 부친다는 생각에 하마터면 눈물을 보일뻔도 했었다.
결국 이렇게 저렇게 내가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보였으니, 그때엔 그 어떠한 것조차도 다시 시작하고 싶지가 않았던게 사실이었다. 무언가를 해놓으면 또 포기를 해야할테니까. 하지만, 내가 성공하기 위해선 반드시 맛 보아야할 인생의 끝자락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다스리고 또 다스렸었다.
그러다 그럼 포기를 하겠노라 말했던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최종합격 통지서를 받게 되었을때, 나는 당연히 소스라치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관련 서류 제출 문제로 기관 담당자와 옥신각신하다 결국 마음을 접고 포기를 했던 일이었거늘 최종합격이라니. 사실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 일이다.

물론, 비록 내가 졸업과 동시에 목표로 했던 그것을 당장에 이룬 것은 아니지만, 그간 관심을 가지고 도전을 해보고자했던 곳에서 이렇듯 좋은 결과를 얻게 되니, 무척이나 기쁘고, 또 아직은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저 멀리에서부터 다시금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두 말할 나위없이 '내 인생의 두번째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다. 이것저것 모든 면에서 따지자면 조금은 차이가 있겠지만, 결국 커다란 내 인생의 목표에 맞게 걸어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 안도감을 느끼고, 뿌듯함을 느낀다. 그리고 더욱더 큰 목소리로 스스로를 응원할 수 있는 용기도 다시 생기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아야 한다. 그 누가 뭐래도 마음이 이끄는대로 부딪혀서 깨져봐야 한다. 포기는 그 다음이다. 이렇듯 나는 이번 일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또 동감하는 것들이겠지만 이러한 사실들을 직접 몸소 느끼게 되었고 굳게 다짐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은 내 앞에 놓인 기회를 잡을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갈 수 있는데까진 한번 힘차게 가볼 것이다. 아니, 가 봐야 아는 거다. 나는 나 스스로를 믿는다. 그리고 느낄 수 있다. 닥터 베일리의 말처럼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 Category_ 몽골(Mongolia)/KOICA/사서 | 2007/05/10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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