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몽골에서 첫번째 여행을 떠났다. 장소는 칭기스 국제공항 근처의 파라다이스 리조트.
우리 동기 6명과 앞의 다른 기수 4명. 이렇게 총 10명이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떠났는데, 나는 이곳에 와서 여행이란 것에 굶주려 있었던지라 매우 큰 기대를 안고 떠난 여행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만큼 걱정도 앞서기도 했다. 아직까지는 모두가 편한 사이는 아니었고, 또 거리감도 있는 사이였으니까. 기수(동기)끼리야 덜하겠지만 기수 대 기수로는 나부터가 거리감을 안고 있었달까?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지금은 이런 걱정을 왜했나 싶을 정도로 재미있게 지내다 와서 다녀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때 찍은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니까, 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어 큰 소리로 웃게 되곤 하니까. 이렇듯 사진 속의 우리들은 모두들 밝은 미소로 즐겁고 행복한 표정들만 한가득이다.
늦은 저녁으로 벽난로에서 삼겹살과 감자, 계란을 구워 먹었던 일, 또 편을 나눠 윷놀이를 하고(내가 생각해온 게임이었는데 내가 깍두기에 걸려 홀로 설거지를 해야했다. 다들 황당함에 웃었던-.-) 꼴찌팀의 개인기를 봤던 일(맹세컨대 민영언니, 신희, 동률 - 이들의 개인기는 내 인생의 영원한 기쁨조가 될듯), 메칸더 V 게임과 마피아 게임, 그리고 어설픈 전기게임과 반(half)진실 게임을 한 채 새벽 4-5시가 되어서야 다들 지쳐 잠을 청하고야 말았던 일, 중간중간의 가족 노래방 등등.
이 단 몇 줄이 그날 있었던 일들의 대략적인 일들이지만, 역시 이것만으로는 설명하기가 매우 부족하고 곤란하다. 그 누가 글을 쓴다고 해도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 몇 마디의 말이나 몇 줄의 글로는 부족하다고.
어쨌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모두에게 감사와 안부의 문자를 날리곤 피곤함에 지쳐 나도 모르게 주방에 쪼그리고 누워 잠이 들어버렸는데, 벌떡 일어나 시계를 보곤 괴성을 질러야만 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토요일 저녁, 코워커와의 저녁 약속이 우리집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즉, 주방에서 요리를 하던 중에 잠이 들어 버린 것. 약속 시간 55분 전에 일어나 부리나케 준비한 음식들로 코워커와의 저녁 약속이 끝나고, 또 동기들과 다시 모여 두 번째 저녁과 티타임을 갖고 우리집에서 밤새도록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 잠을 자고, 다음날 또 다같이 쇼핑을 가고. 그렇게 바쁘고도 바쁘게 이틀 밤을 우린 보냈다. 수진언니의 중도귀국을 아쉬워하면서.
이 모든 것들이 수진언니의 중도귀국 때문이라고는 말하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큰 부분을 차지했던건 사실이다. 다들 같았을 것이다. 우리 8명중 누군가는 중도귀국을 하게 될거라는걸 다들 알고 있었고, 그때 본인들 또한 마음이 조금은 흔들릴거라는 것을.
나또한 그랬다. 절대 중도귀국은 없다며 중도귀국 자체를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도 중도귀국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고, 또 이전과는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꼭 2년을 다 채운다고해서 이러한 봉사활동 자체가 성공한건 결코 아니라고. 정작 중요한건 기간 자체가 아니라, 내가 있는 동안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여 이들에게 어떠한 이로움과 도움을 주었는지가 중요한 것이라고. 그리고 본인 스스로가 힘에 겨워 견딜 수가 없다면, 많은 아픔과 외로움을 악으로 버텨내면서까지 2년을 버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나 스스로가 여유 있어야, 또 내가 베풀 수 있는 위치와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참된 봉사와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다시금 생각했다. 몇 일 전에 들었던 어떤 신규 단원의 말을.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은 세가지의 부류로 나뉜다고 말했다.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한마디로 노는 사람.
자신의 연구나 개인적인 공부를 하는 사람.
그리고 진짜 봉사를 하는 사람.
그때 나는 어떤 부류에 속할지 문득 생각을 했었다. 잘해봤자 나는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이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답답해져왔던 기억이 난다.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이 되어야지. 그러도록 해야지. 다시 다짐을 했었다. 모든 욕심을 버리고 임하자고, 그러기위해 이곳에 오지 않았냐면서.
어떠한 것의 소유욕이란 것이 모든 것에서 부정적인 의미만을 내포하지는 않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나를 옭아매는 극단의 부정적인 것이라 나는 무소유의 개념을 배우러 이곳에 온 점도 없지 않아 있다.
한국에서의 이런저런 현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온 것도 있고,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해 온 것도 있고,
앞으로의 내 인생에 있어 큰 경험의 밑바탕이 되고자 온 것도 있고,
또 모두가 말하는 참된 봉사의 정신으로 이곳에 온 것도 있다.
어떠한 마음이 1순위인지 솔직하게 나도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건, 지금 나는 물질적인 것보다도 정신적인 것을 얻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것이고, 또 나 혼자만의 기쁨보다도 모두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점이다. 이미 물질적인 것들에 한껏 질려버린채 그것도 모자라 매너리즘에 빠지기 직전이었으니까.
세상은 '나'를 위해 살아야된다고 현실적으로 말하고 있다. 내가 성공하기 위해선, 그 누구보다도 내가 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다른 이들을 누르고 올라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나’와 ‘너’의 개념보다도 ‘우리’와 ‘모두’라는 개념을 더 중요시 여긴다. 나의 기쁨보다도 우리의 기쁨이 나에게는 더욱 크니까. 그리고 너의 기쁨보다도 모두의 기쁨이 나에게는 더욱 크니까. 아니, 기쁨 보다도 느끼는 성취감 자체가 나에게는 전혀 다르게 와닿는다고나 할까?
이런 나를 보며 부모님은 큰 한숨을 내쉬곤 하셨다. 나의 이런점때문에 너는 성공하기 힘들거라며. 그래서 나는 오기가 생겼다. 내가 이런 생각과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기에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이런게 진짜 성공이라고. 나는 거짓이 아닌 진짜 성공을 할거라고.
그래서 그러고 싶다.
수진 언니의 편지에서처럼, 또 대화에서처럼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반드시 될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기에 더욱 솔직한 내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바로 내 방식대로.
As Your Self. 역시, 나에게 필요한건 이 단 한마디인지도 모르겠다. 수진언니의 마지막 말처럼.
서른살의 나는. 내가 바라는, 또 수진언니가 바라는, 더불어 모두가 바라는 내 모습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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