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다시 읽고 있다.
그런데 다시 읽고 있는 지금의 감동들은 내가 이 책을 처음 잡았던 그때보다도 훨씬 커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것은 필히 내가 허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다시 정독했을때의 그 기분, 한 문장 한 문장 한 단어 한 단어에도 작은 소름이 돋아나는 그 기분이다.
지독한 현실을 소설 속에 잘 담아내서, 화려한 미사어구들을 사용해서, 작품 자체가 누구나가 다 소리높여 훌륭하다고 말하는 유명한 작품과이라서 그것에 끌리는 것도, 또 극찬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작품 속에서 작가 그 ‘자신’을 찾을 수가 있어서.
픽션인 소설이지만, ‘진실’이란 것을 찾을 수가 있어서.
우리의 일상이라는 하찮은 작은 것들 속에서 반짝거림과 추악한 면 모두를 찾을 수가 있어서.
훌륭한 글이고, 소설이다.
진실이 없고, 또 양면성이 없는 작품에는 나.. 전혀 끌리지가 않으니까.

한때는 나도 무작정 글을 쓰고 싶었었다. 어떤 장르라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단순했다. 고백병이라는게 있어서인지 단지 글로 풀어내는게 좋아서 글을 쓰고 싶었을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선 나도 참 이기적인게 나를 위해 글을 썼던것 같다. 글을 쓰고 나면 가슴이 후련했으니까.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동시에 불안감도 같이 느끼게 된게. 다른 이들이 내 글을 읽고 어떤 생각들을 할지, 또 어떠한 비평들을 할지 두렵고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쓰는 한 문장과 한 단어에 점수가 메겨진다는게 참으로 끔찍했다. 빨간 펜을 들고 띄어쓰기며 맞춤법이며 이런저런 체크와 감점만을 해대는 심사위원들을 상상하니, 보여지는 글자들에 연연해 더이상은 자유롭게 글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더불어 이미 어떠한 결과물에만 관심이 쏠려있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더더욱 펜대를 놀리는데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그저, ‘좋아하기때문에 이런것들은 하면 안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했다.
단지 이런저런 상들을 몇 개 받아왔다고해서 문학소녀라 불리우고, 또 문예를 중심으로 여러 대회에 내보내지고, 좋은 상을 타서 대학입시에 높은 가산점을 받아야 하고. 그저 있노라니 갑갑해졌다. 더불어 질려버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때쯤 소소한 일이 하나 터지고 말았으니, 학교 대표로 출전하는 백일장 대회로 나를 찾아온 한 아이. 대뜸 그 자리를 양보하라고 했다. 너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지를 않으니, 자기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면서. 이건 진심으로 원하는 사람에게 가야만하는 자리고, 또 기회라며 잔뜩 긴장한채로 나를 계속 응시했었다.
그때 그 아이가 어찌나 당돌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간절해보였는지,참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의 이런저런 그 아이의 이유들은 앞의 말에 가리워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고, 그래서 나는 양보를 했다. ‘그럼, 네가 나가.‘라면서. 하지만 결국 그 아이는 그 대회에서 수상을 하지 못했고, 그 사실을 안 나는 순간 생각했었다.

 ‘예상대로군. 거봐, 너에게 기회가 갔어도 넌 그 정도야.’

나는 참 못됐다고 생각했다. 또 참 솔직하지 못하구나 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내 자신을 잘 모르던지. 이런 생각을 한 것 자체가 나에게는 패배였다. 그리고 자존심에 상처가 나는 순간이었다. 결국 난 결코 진심으로 그 자리를 양보했던게 아니였으니까.
그저 그 아이가 나보다 조금 더 원했을뿐, 결코 나도 원하지 않았던 자리는 아니였다. 그리고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그 아이가 생각한대로 난 이런대엔 연연하지 않는 아이라는 걸, 또 연연하지 않으니 당연히 양보할줄 아는 아량을 가진 아이라는 걸, 그리고 그 아이가 그렇게 출전을 한다한들 어차피 상은 받지 못할테니 해보라는 식의 빈정거림이라는 걸.

그 후로 글을 쓰지 않았던것 같다. 어떤 식의 글이든 진지하게 펜과 맞땋뜨리지 않았으니까.
난 죄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미 진실성이란건 내게 없으니 글을 써봤자 거기서 거기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글자 나열’ 놀이 따위는 하기 싫었으니까. 그리고 더더욱 자연계열로 진로를 바꾸면서 자연스레 멀어져만 갔다. 글이란 것과.
하지만 대학입학 후에도 가끔 글을 써야만 하는 수업에서나 문학을 논하시는 교수님을 만나 비평을 들어야했을땐 그 어떤때보다도 이때의 생각이 많이 나곤했다. 글을 안쓴지 오래됐냐는 질문과, 사물을 보는 시각과 문체에 대한 여러 평, 그리고 글의 마무리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 등 꼭 데자뷰 현상을 일으키는듯 이전의 어린 나로 돌아간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했었다.
어쩌면 난 글을 썼던 그 시절보다도 그때 내가 가졌던 마음가짐이나 사고방식 자체가 더 그리운걸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니까, 즐거우니까 한다 라는 그런 단순하고도 군더더기 없는 사고와 결론, 그리고 행동. 또 쓰면서 꼭 칭찬을 받아야만 한다고, 혹은 상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해보질 않았으니까, 그저 내가 쓰고 싶어서 썼던 것이였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즐거웠던거다. 지금도 그렇지만, 글은 단순히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여졌을때만큼 거짓 투성에 추악한건 없다고 생각하는 나로썬 그때의 나는 진정한 의미의 참된 작가였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내가 지금은 왜 없는 것인지 골똘히 생각을 해보아도 늘 어떠한 깨달음은 얻지 못한다.

단지 난 이미 세상을 알기에,
단지 난 이미 시각이 너무 많이 트여버렸기에,
또 단지 난 이미 자기애를 잃어버렸기에,
혹은 난 이미 고백병을 상당수 치유해버렸기에 글을 쓰지는 못하는거라는 몇 가지 추측만이 난무할뿐이다.

왜냐하면, 창작을 하는 작가에게 있어 현실과의 타협은, 그리고 자기애의 상실과 고백병의 치유는 작가 생명의 끝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니까.
어쩌면 자기 속에만 갇혀 자기 내면의 목소리만을 듣기에 작가는 글을 쓸 수 있는건지도 모른다. 그래, 자신만의 문장으로, 자신만의 시각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그렇듯 소름 돋도록 쓸 수 있는건지도.

언젠가 난 수업시간의 한 문학 리포트에서 ‘우리 모두가 작가’라는 말을 한적이 있었다.
지금도 이 말에 동의를 한다. 우리 모두가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각자의 인생을 이렇듯 각자 지어내어 노래하고 있으니까. 문제는 훌륭한 작가, 그저 그런 작가, 혹은 작가임을 포기한 작가 등 셀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자가들이 존재한다는데 있다는 거다. 또 언제든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고, 지금의 이야기를 끝낼 수가 있다는 거다. 단지, ‘나’라는 주인공만이 바뀌지 않을 뿐이고, 사람들은 이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을 뿐.

허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선 희망속에서 좌절감을 맛보았고,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선’ 좌절 속에서 희망을 맛보았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나를 추억했다. 어쩌면 지금의 내 모습일 수도 있는. 아니면 앞으로의 내 모습이기를 바라는.
아직도 난 내가 어떠한 작가인지, 또 앞으로 어떠한 인생이란 작품을 써내려 가고 싶은건지를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간다고 한들 헤르만 헤세의 한 시귀처럼 난 인생 자체를 탓하지는 않겠노라 늘상 중얼거린다. 또한 다른 이들을 먼저 탓하지는 않겠노라고. 왜냐하면 이 모든건 바로 내가 결정내려 지어진 이야기 속에서 흘러가는 것일테니까 말이다.

또다시 쓸데없는 잡담을 해버린것 같다.
괜한 책 한 권 때문에, 괜한 작가 하나 때문에 이전의 내 이야기가 생각나버렸고, 또 고백해버렸다.
이럴땐 어두운 방안에서 벽에 기대어 음악이나 한껏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창 밖에는 비가 내려 더없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기에 한없이  좋고 말이다. 이렇게 바라는 것도 많은 나는, 역시 욕심이 많은 엉터리 잡(雜)사상가인걸까?

:: Category_ 글·생각·소식 | 2007/11/1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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