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계속 좋지 않았다.
특히 금요일과 토요일은 머리 속까지 멍해지는 듯한 느낌.
금요일 저녁, 수진언니의 출국을 앞두고 모두가 모여 수진언니집에서 저녁을 함께 했다. 그리고 찜질방엘 가기로 했는데, 나는 몸이 좋지 않아 집에 와서 쉬었던.
토요일. 타이레놀과 감기약만 먹어가며 기진맥진해있었다. 그러다가 울란바타르에 왔다는 경진언니 전화에 몸을 추스리고, 경진 민영언니와 함께 우리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지방에 있는지라 집들이며 이런저런 모임에 늘 참여할 수 없었던 언니들이었기에 돈까스며 샐러드를 손수 만들었다. 만들어 주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이런거 밖에는 없으니까. 같이 저녁을 먹고, 밤 아홉시 반이 되어서야 수진언니네 집으로 향했다. 출국 하루 전 날, 마지막 밤을 같이 보내기 위해서.
델구르(가게)에 들려먹을 것을 사서 언니네 집에 가니, 하나 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서로 약속을 한것도 아닌데 밤참이며 과자며 음료수며 이것저것 먹을 것을 잔뜩 사와, 방안에 먹을 것들은 넘쳐났다. 하지만 마음 속은 허전했다. 시작된 이런저런 이야기들. 중요한 이야기는 없었다. 또 결코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인생에 대한 심각하고 진지한 이야기들도 아니었고. 우리는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별 시덥잖은 소리를 하면서, 또 다들 피곤함을 억지로 이겨내며 졸린 두 눈을 비벼가면서.
그리고 아침이 왔다.
6시. 아직도 주변은 깜깜했다.
틉신 아하와 만나 공항으로 가면서도 모두들 말이 없었다. 파라다이스 리조트에 놀러 갈때와 거의 같은 멤버지만 다른 분위기. 그리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수진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언니,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선택들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와 함께 할 수 있었던 이 선택이 나중에라도 후회로 남지않게 되길 바래요. 언니를 만나게 되서 좋았고, 언니를 알게 되서 좋았습니다. 나 원래 편지 같은거 쓰지 않기에 이렇게 문자 보내요. 조만간, 우리 2년 뒤에 만나요.”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대충은 이런 내용었으리라.
어쩌면 이 문자는 나에 대한 고해성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이 선택에 대한 후회를 하지않게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언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후회한다고 단 한번이라도 생각을 한적이 있었을까? 아니면 혹 지금 실수였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칭기스 국제 공항에 도착하니, 이미 체크인을 앞두고 있는 상황. 사진을 찍고, 작은 카페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고, 그리고 체크인 시간이 조금 넘어서야 언니와 작별 인사를 했다. 실감이 나질 않았다. 물끄러미 유리벽 넘어를 바라보다 이제 집으로 가자는 말에 다들 발길을 돌렸다.
모두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역시 말이 없었다. 날은 이미 밝아오기 시작한지 오래고.
차 안이 추워, 따뜻한 담요를 모두와 나눠 덮고선 나는 답답함에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리고 그 어느때보다도 큰 소리로 음악을 들었다. 점점 날이 밝아오는 창 밖의 풍경을 보며 음악을 듣고 있노라니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울고 싶지 않았다. 운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었고, 이런 나를 위로 따위 해줄 사람도 없었다. 모두가 위로를 받아야할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리고 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집에 가서 아침을 먹고, 씻고, 곧장 잠을 자고 싶었다. 아니면 졸릴때까지 영화나 외화를 보던지.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그래, 차 안에 이렇게 가만히 있고 싶지가 않았다. 그 뿐이었다. 그런데 문득 공항에서 내가 민영언니에게 한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저요, 이곳에 온걸 후회한 적은 없어요. 그런데,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지금 제가 여기에 있는게 옳은 건지를요.. 너무 빨리 온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요새 들었어요..”
“……음, 네 인생 전체에서 말이야?”
“……네. 지금 여기에 제가 있는게.. 맞는건지를 잘 모르겠어요.. 적당한 시기인건지.. 너무 빨리 와버린것만 같아요..”
아직 나는 배워야할게 많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욕심만큼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내가 지금 여기에 있어도 되는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진정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일이 1순위인가 라는 의문.
한때는 이들보다는 내가 아는 것이 많으니, 당연히 도와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설령, 내가 모든 면에서 이들보다 월등히 뛰어나진 않더라도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에선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을터이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에서 제대로 된 결과를 얻기 위해선 일방적인 것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들을 가르치든, 무언가를 전해주고, 또 봉사를 하든. 나의 일방적인 행동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 서로간의 상호작용이라 생각을 했다. 서로를 알아가면서, 서로와 소통을 하면서, 그리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또 서로를 이해해가면서 가능한 일이라 생각을 했다. 그런데 두려워졌다.
내 인생의 전체에서 지금이 이곳에서 보낼 그 때가 맞는것인지 의문이 들면서, 그리고 내 예상보다도 한국이 너무나 그리워지면서, 또한 내 능력에 대한 확신이 갑자기 서질 않으면서 몹시 두려워졌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는 않지만, 그리운건 어쩔 수가 없었다. 가슴이 뛰다 눈시울이 붉어질만큼 보고싶은 사람들이 있고 그리워졌다. 그리고 문득 내가 가진 내 능력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지금 이 시기에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현재의 나는 전혀 잘하고 있지를 않은데 말이다.
이제 막 시작하지 않았냐는 말들과, 이런저런 친구들의 위로도 요즘은 통하지가 않았다.
넌 늘 그랬잖아. 늘 그렇듯 잘해낼거야. 그게 너니까. 그러니까 너를 믿는다.
잘 해낼거라는, 잘 될거라는 이런 말따위 듣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선택했고, 다짐을 했고, 힘들게 몸과 마음을 추스려서 이곳에 왔는데, 난 이곳에서도 제대로 된 정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언젠가 유숙소에서 읽었던 한 노트의 글귀가 생각이 났다.
“난 허공에 1센티쯤 떠 있었다.”
그 말대로였다. 난 허공 위에 떠 있었다.
그리고 허공에 점점 높이 떠올라 저 멀리서 사람들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그들과 같은 공간에 있기는 했지만서도 난 달랐다. 늘상 안절부절했고, 또 허공에 떠 있기를 원하지 않았음에도 그곳에서 뚝 떨어져버릴까 몸과 마음을 움추렸다.
남들과 같아지기 싫어 내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인지.
아니면 태생 자체가 남들과 다른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의견도 늘 분분했다.
“..왜 있잖아요. 남들과 다르다는건 나쁜게 아니에요. 음.. 그러니까, 그러니까….”
일요일 새벽, 한 단원이 한 말이 생각이 났다.
“머리 속이 정리가 안되네. 헤에-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은 자신한테 더 집중하는거 같아요. 자신한테 더 집중하니까, 그러니까.. 음, 성공한 사람들 보면 이상한 사람들 많잖아요. 좀 남들과는 다른. 아무튼, 그 사람들은 그래서 성공하는거 같아요. 그런 사람들.. 저는 존경해요. 진짜.. 존경해요.”
이야기 도중 자꾸만 횡설수설하는 그 단원의 이야기를 우리는 웃어가며 들었었다. 그러나 말을 마쳤을때 순간 조용해지면서 나름대로의 진심과 그가 하고자 하는 말들을 알아 들을 수가 있었다. 사실 그 이야기를 다른 제3자에게 한건지 아니면 나에게 한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 그리고 그 단원을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는데 수진언니와 눈이 마주쳤다. 언니가 나를 보고 있었다. 씩하고 짓는 미소. 나는 어떤 사람인걸까 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나 자신도 모르는걸 다른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있는걸까 라는 생각도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내 마음이 어떤지 등 나에 대한 것들을 말이다.
수진언니와 진지한 이야기를 곧잘 나누곤 했었다.
단 둘이서 하는 진지한 이야기는 둘을 차분하게 해줬고, 많은 생각들을 쏟아내게 해줬고, 또 가슴 속의 답답함을 조금은 날려버리게 해주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었을때와, 단 둘이 있었을때의 우리 모습은 사뭇 달랐다. 어떠한 점에선 둘 다 양극성이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는 곳에서 그 코드가 맞아버린 것이다. 또 분출 되 버린 것이고.
그래서 조금은 더 심란한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언니가 떠나가버려서.
사람들은 어쩌면 언니를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쉽게 말해 가벼운 사람으로만 생각할지도 모른다. 늘상 치는 말장난에 싫고 좋고가 너무 분명해서 겉보기엔 제멋대로인 사람이라 보이기 쉬웠으니까. 사실사람들에게 그렇게 생각되어도 상관은 없다. 나는 이미 언니의 다른 면을 봤고, 나는 그렇게만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사람들한테 어떠한 식으로 평가되어지고, 또 기억되어지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그리고 나또한 언니와는 다르지만 지금의 내 본모습과는 다르게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나에게 나의 본 모습을 보이라고 말했던 언니의 말들도 생각이 난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지금 얼마만큼이나 지나쳐버리고 만 것인지, 또 나의 본 모습을 보일 필요성이 과연 있기는 있는건지, 그리고 그렇다면 지금 어떻게 해야하는건지는 아직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내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려하지 않는다면.
코워커의 말이 생각났다.
“왜 사람들과 말을 하지 않죠? 무엇이든 좋으니 이야기를 해요.”
결국 나는 친해지고 싶지 않은거고,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실상은 정말 그럴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쩌면 한국인이며 몽골인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마음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 문제는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었다. 내가 풀어내야 할 숙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니, 지금 이 시기에서 부딪혀야 할 문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또 내 인생상에서 꼭 풀어야할 숙제는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끝없는 딜레마에 빠지고 만거라 생각했다. 한 문제에 대해 너무나도 여러 관점에서의 시각을 동시에 인지하고 마니까. 그리고 이상을 추구하지만 현실을 잘 아니까. 마지막으로 난, 나를 잘 알면서도 잘 모르니까.
언제나 그렇듯 몇 발자국 전진하면 다시 몇 발자국 뒷걸음질 쳐서 결국엔 제자리. 이번에도 그런걸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내 스스로가 몹시 안타까워졌다. 인생을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하는건가 라는 의문이 들면서. 또, 아.. 평생 외롭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곧장 아침을 준비했다.
경진언니와 민영언니와 아침을 먹고, 잠깐 시덥잖은 소리를 하며 웃다가 언니들이 가고나서야 샤워를 하고 곧장 침대에 뛰어 들었다. 그리고 외화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잠을 자다 깨다가를 반복, 이윽고 눈을 떠 세수를 했을땐 월요일 아침이었다. 7시 40분. 출근을 앞둔 시각. 내가 어떤 생각들로 가득차 혼란스러워하든지, 또 마음이 흔들리고 심란하든지. 다시 일상으로 복귀를 해야할 시간이었다.
나는 그렇게 하루를, 한 주를 다시 시작했다.
조금은 긴 여행을 다녀온듯한 피곤함으로, 다시는 이런 여행을 가지는 못할 거란 안도감과 아쉬움으로, 그리고 나름대로의 슬픈 여행이라는 이별의 무거움으로 말이다. 하지만 아마 결론도 나질 않는 이런 복잡한 생각들과 여러 걱정들을 하며 음악 따위를 듣는 오늘과 같은 일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게 내 일상이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으니까.
'KOICA MONGOLIA > KOICA/사서/몽골'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결국 주저 앉았던.. 한 주 (5) | 2007/11/27 |
|---|---|
| 2007.11.14.수. 60개의 채널 (4) | 2007/11/14 |
| 2007.11.11. 마치 긴 여행 후의 일상과도 같은 (0) | 2007/11/14 |
| 2007.11.2. – 11.6. 5일간 (0) | 2007/11/14 |
| 침을 맞다, 손가락을 다치다 (0) | 2007/11/08 |
| 다운된 기분. 몽골 겨울의 우울함 급습 (0) | 2007/11/02 |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