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블로그의 글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최근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런데 참 타이밍도 기가 막힌것이, 지난주 기관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 그대로 나를 주저 앉히고야 말았다.

기관 사람, 그것도 몽골인이 아닌 티베트인에게 성추행을 당해 심적으로 더 많이 힘들어진 것.
그가 내 볼에 한 타액이 뭍을 만큼의 키스와 "'i want you'란 말을 한국어로 어떻게 말해? i want you."란 말. 그 사건이 있기 전후의 스킨쉽 등. 치욕스럽다는 것이 바로 이럴때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제아무리 개방적이라고 한들 이건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고, 문화적 차이로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문제였다. 근무시간에 그것도 근무지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그는 술에 취해있었으며 이런 일로 악명이 자자한 사람이었다. 만난 첫날부터 상식밖의 행동을 하여 의도적으로 내가 그를 피한건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사서에게 한국에서 온 사서는 자기를 싫어하고 또 무서워한다고 말을 할 정도였으니까. 아무리 개방적인 곳이라지만 유부남이기까지 한 그의 행동과 언행은 상식을 벗어나 도저히 참을 수 있을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결국 계속해서 참고 있었던 것들이 터져나와 정말 미치기 직전까지 가버리고 말았다. 이런저런 것들을 그래도 지금까지 꾹 꾹 눌러참고, 또 스스로를 달래가며 억지로 견뎌내고 있었거늘 가만히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었다. 이곳이 너무나 싫어졌고 지금이라도 당장 짐을 싸서 어디론가로 가고 싶었었다.

일이 있은 직 후 코워커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역시 그 다음날은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오늘의 도서관 사람들은 어제와 달랐고, 나는 불편함을 느껴야했다. 도서관에 들어서서 내가 나가는 그 순간까지 모든 시선들이 나를 쫓았고, 내 이야기로 항상 분주했다. 화가 났다. 내가 잘못한 일은 아니었지만, 물론 이것을 그들도 잘 알고는 있겠지만, 평소처럼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으니까. 하루만에 사이가 서먹해져버렸고, 그래서 더 끔찍해져버렸다. 이런식으로 정말 2년을 지낼 수 있을까 란 생각이 들면서 지금까지 느꼈던 힘겨움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물론, 그들이 호들갑을 떨며 나에게 어제 사건을 하루종일 거론하길 바란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딱딱하고도 서먹한 분위기와 그들의 시선, 수근거림은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차라리 어제의 이야기를 들춰내며 나쁜 놈이라 호들갑을 떠는게 더 나을거란 생각도 들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그것이 몽골의 집이든, 한국의 집이든 집에 가고 싶었다. 차라리 내 눈치를 보지말고 평소처럼이라도 행동해줬으면 했다. 하지만 내가 고개를 돌리면 언제나 그들은 말이 없어졌다.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치 내가 죄인이라도 된듯한 이런 분위기에 견딜 수가 없어 점심을 먹고오자마자 퇴근을 서둘렀다. 더이상 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으니까.

이제 한계가 온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더이상 견디기 힘든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게 모른척 넘어갈 수 있는 일인데 내 마음이 너그럽지 못한걸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몰라 헤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번에는 나도 참 크게 상처를 받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면 안되는데, 난 혼자가 아닌데 계속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을 나서 집으로 향하면서 KOICA 사무실로 향해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다소 심각해진 분위기. 관리요원은 이 일을 그냥 지나칠 순 없다고 했다. 처음에 강력하게 조취를 취해야 그 후 불미스러운 일이 더이상 일어나지 않는다며 기관장에게 KOICA 측에서 직접 연락을 취하겠노라 말했다. 또 기운 내라면서, 이럴때일수록 기운을 내야한다면서 다독거려 조금은 안정을 시켜주었다.
그러나 그래도 마음이 무거웠다. 물론 이곳에 오기전부터 충분히 이런류의 일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이런 일을 직접 겪은 지금은 생각보단 더 많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 자체만으로도 힘든데, 다른 사람들과 또 기관과의 이해관계도 얽혀있어 더욱 복잡했고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이성적으로도 모든게 해결될 수는 없는 문제이기에 눈물이 났다. 답이 없는 문제였으니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스스로 마음을 다독거리는 것 뿐이었다. 그런데 나 자신을 추스릴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아버지와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다.
몸 건강히 잘 지내냐는 아버지의 피곤한듯한 목소리에 울컥 눈물부터 났다. 나쁜 사람이 있다고, 그래서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그러지를 못했다. 부모님의 기대와 바람(바램)을 져버리고 낯설고도 먼 이 곳에 오기로 고집의 고집을 부린건 나였으니까. 힘들게 선택했고, 힘들게 온 이곳이기에 차마 힘들다고 내가 먼저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많이 춥냐는 말씀, 책이며 이것저것 물건은 싸놨는데 아직 못붙이셨다는 말씀, 그리고 건강히 잘 지내라며 국제전화비 많이 나오니 빨리 끊으라는 말씀..
그래서 결국 나는 거짓말을 했다. 잘 지낸다며, 열심히 잘 하고 있다며, 그러니까 아무 걱정마시라고.
통화를 끝내고는 나도 모르게 수화기를 든채 바보처럼 눈물을 글썽이고 말았다. 나는 왜이리 못난 딸인걸까 라는 생각을 했다. 보란듯이 잘 지내고, 더 크게 성장하고, 또 부모님의 기대보다도 더욱더 성공해야하거늘, 길을 가다 넘어져 조금은 다친 이 곳에서 그저 주저 앉아 울고 있을 뿐이었다.

몇 일 내내 아주 사소한 일이라고, 이런 일 때문에 실망해버리지 않겠노라고 스스로를 달래고도 달랬다.
그리곤 주저 앉은 나를 다시 일으켜세우려 무던히도 애를 쓰기 시작했다. 아직도 마음이 잘 잡히지는 않지만,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렇기에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만큼 다시 가보기로 했다. 또다시 스스로를 어루고 달래면서. 이제 자리에서 일어서야 할 때였다.

:: Category_ KOICA MONGOLIA/KOICA/사서/몽골 | 2007/11/2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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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댓글입니다

    2007/11/27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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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댓글입니다

    2007/11/30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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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댓글입니다

    2007/12/03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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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댓글입니다

    2008/02/10 00:23
    • Favicon of http://www.ngnm.net BlogIcon 근사서 2008/02/15 1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지금은 시간도 좀 흘렀고, 개인적으로도 마음을 다스려 괜찮습니다. 그리고 모든게 마냥 행복하고 편안할수만은 없죠. 액땜으로 생각키로 했습니다. 아무튼 반갑구요, 3월에 몽골에 오시면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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