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초대. 행복한 가정으로의 방문
- Tuvshintungalag(틉신통가락; 틉셔; 통가) 사서와의 인연 -
2007년 8월 말, 한달 남짓한 KOICA 몽골사무소의 현지적응훈련이 끝나갈때쯤 일주일 정도를 기관측 사람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기관으로 출근도 하는 등 OJT(On the Job Training) 기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때 나는 사진 속에 있는 열람서비스과의 Tuvshintungalag 사서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되었으니..
치안에 문제가 있는 15구역에서 홈스테이를 했었기에 Tuvshintungalag 사서는 노심초사 나의 안전에 대해 상당히 예민할 정도로 신경을 썼었고, 거실을 포함한 2개의 룸들 중 룸 하나를 나에게 내어주고는 자신을 포함한 자신의 여동생과 여동생의 친구, 그 친구의 갓난아이까지 가족 전체가 한 방에서 일주일간 지내는 등 정말이지 내가 몸들바를 모를 정도로 편의를 바주었었다.
그러다 홈스테이가 끝나갈때쯤 알게 된 것이, 사실 그녀는 그집에 살지 않았었고, 나를 위해 자신의 여동생에게 부탁을 해 일주일간 그녀의 집에서 지냈던 것이었다. Tuvshintungalag 사서가 살던 곳은 몽골의 전통가옥인 게르(Ger). 사실상 몽골인들의 대다수는 어런소츠(대략 아파트쯤으로 보도록 하자) 등의 건물에서 살지를 않고,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나 나무로 만든 하샤라는 집에서 생활을 하는데, 그녀 또한 상하수도 시설도 없고 전기도 간신히 들어오던 곳에서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몽골은 동거문화가 자유로우며, 결혼 전 동거가 흠이 되지 않는 곳이다). 따라서 나는 항상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너무나도 고마운 마음에 연신 어찌할 바를 몰라 했었는데, 미리 언질을 해놓지는 않지만 나중에 KOICA 측에서 홈스테이 비용을 주기때문에 괜찮다고는 한들, 사실상 내 마음은 편해질래야 편해질 수가 없었다. 이렇듯 나 하나 때문에 가족 전체가 불편한건 아닌지 늘상 신경이 쓰였고 마음 또한 불편했었지만, 한사코 괜찮다고 하는 나를 편하게 지내라며 방을 내어주던 그들에게 내가 불편하다고해서 아직 몽골 생활에 익숙치 않은 내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것도 이들에겐 꽤나 큰 걱정거리가 되겠고, 이들이 늘상 괜찮다고 하는대도 끝까지 거절을 하는건 후한 손님접대의 문화가 있는 몽골에서 과연 결례인가 아닌가라는 문제를 두고 생각해보았을때 그들에게 있어선 '우리의 손님접대가 후하지 않아서 그런것이다'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싶어 어찌되었든 이곳에서 가족들과 즐겁게 잘 지내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동기 단원들의 송별식을 제외하고는 홈스테이 기간 모두를 Tuvshintungalag 사서의 집에서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했다. 아직 양고기에 익숙치 않았던 내가 군말 없이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너거태슐(양고기 외 야채 등을 넣고 끓인 국)을 네그릇씩이나 비워가면서 말이다.
그러다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국립중앙도서관의 '(아시아)문화동반자사업'에 지원하게 된 Tuvshintungalag 사서를 도와주게 되면서 더욱더 친해지게 되었는데, 그녀의 한국어 학습을 위해 해외인력송출센터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던 원대한 단원에게 부탁을 해 한국으로 가기전 잠깐이나마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녀가 한국에 가 있는 약 1여년 가까이를 이메일을 주소 받으며 그녀의 연수를 도와주게 되었다.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된 '틉셔(Tuvshintungalag)-희그네(희근이)-대한박샤(대한 선생님)'의 라인. Tuvshintungalag 사서가 몽골로 돌아오고, 또 그녀의 딸인 턱토를 출산하게 되고, 더불어 원대한 단원의 귀국이 초읽기가 되면서 정식으로 초대를 받게 된 그녀의 집. 우리가 좋아한다는 감자 호쇼르(몽골의 전통 음식인 튀김 만두. 원래는 살짝 양념된 양고기가 들어간다)며 몽골의 전통 음식, 또 고비 알타이의 지역명물인 백포도주까지 한상 거하게 차려놓고는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이때 찍은 사진들을 이렇듯 바라보고 있노라면,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복한 미소들에 아직까지도 기분이 한껏 좋아지는데, 아직 사진을 찍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한껏 환한 웃음을 짓다가도 사진만 찍으면 굳어지는 그들 내외를 보며 원대한 단원과 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던 기억도 난다.
그야말로 고마운 초대, 행복한 가정으로의 방문.
이렇듯 이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하고, 또 소중한 추억들을 한껏 만들었기에 너무나 다행이라는, 행복하다는 생각을 아직까지도 하곤 한다.
이제는 3년전 처음 만났던 그때와는 다르게 Tuvshintungalag은 한 남자의 부인이 되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또한 내가 남기고 온 몽골 국립도서관 한국학정보센터의 현지 담당 사서가 되어 새로운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다시 그녀를 만났을때, 과연 우리는 서로 어떤 모습일까?
아직까지도 주고 받는 소소한 일상 속의 이메일들. 그녀와 내가 주고 받은 이메일에서 이미 지나간 조금은 잊혀졌던 옛 추억도 잠시 되살려 보며, 잊지 않고 연락을 해주는게 그저 고맙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 소소한 이메일들이 1년 2년 3년 그리고 10년쯤 쌓이면, 이것도 하나의 멋진 스토리이자 깊은 인연이란게 되겠지?
"저도 보고싶습니다. 그리고 고마워요, 통가. 멋진 한국학 사서로써의 모습을 기대할께요."
Sain baina uu
higen shi ajil sain uu
sonin yu bna daa sanaj bn auu higen shi manaihan namar bolohoor soyolin ajiltni odor geed hodoo yawdag bas zondoo humuus yawdag duuldag ter maani boloh geed margaash hodoo yawan chi sain yu bna daa mongol helee martaagui biz dee martaj bolohgui shuu bi chamaig ih sanaj bna aa
bid tsomooroo sain bgaa Za daraa uulziya hairtai shuu baka
- Sep 10, 2010
안녕하세요
희근씨 하고 있는 일은 잘 되고 있나요?
새로운 소식은 있어요? 희근씨 우리는 가을이 오면 '문화예술인들의 날' 행사로 지방(유원지)에 가곤해요(참고: 몽골 교육문화과학부 산하 문화예술과 소속의 도서관, 박물관, 국립극장 등의 소속인들이 모두 함께하는 문화체육행사). 많은 사람들이 가구요, 우리들(몽골 국립도서관 사람들) 또한 내일 이 행사에 참가한답니다. 희근씨는 잘 지내요? 몽골어는 잊지 않았지요?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많이 보고 싶어요.
턱토와 저는 잘 지내요. 그럼 다음번에 만나요. 사랑합니다. 안녕.
- 2010년 9월 10일
[사진] 2009.8.22. 울란바타르, 바양 호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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