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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25 Mongol (Huuchin)Bichig : 몽골 비칙
  2. 2008/11/25 A Brief Introduction to Mongol Bichig
  3. 2007/09/14 헤르만 헤세, 사라진 소리
  4. 2007/05/16 문학(文學)과 사회(社會)의 연결고리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 영화 물랑루즈(Moulin Rouge, 2001) - 2003.10.
  5. 2007/05/14 몽골의 의식주(衣食住)
  6. 2007/05/14 몽골 문화(文化) 전반

o. Mongol (Huuchin)Bichig : 몽골 (호친)비칙
몽골 비칙은 이전의 외몽골과 현 내몽골에서 사용 중인 몽골의 전통 문자다.
몽골에 온 이후로 계속해서 배우고 싶었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닿아 지난 10월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수업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한 5-6번 정도 수업을 받은 듯.



몽골은 1940년부터 러시아의 키릴문자을 차용해 사용하고 있다.
[참고] 전통문자를 버리고 키릴문자를 차용하게 된 것에는 역사적인 긴 스토리가 있다. 관심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검색해보길 - 대략 간추리자면, 1) 몽골 비칙은 글자수가 많아 배우기가 힘이 들며, 2) 신문명 도입으로(러시아) 인한 각종 언론 및 교육과 행정체계에 대한 빠른 입수와 언어상의 통일 체계가 필요하게 되었고, 3) 또 중국으로부터의 독립 후, 사실상 러시아의 체제권 안에 속해 러시아 정부의 강한 압박이 있었다고 한다 : 특히 3)의 경우, 대게 칭기스칸과 관련된 것들로 몽골 비칙 사용 금지 외에 수도승 및 사찰의 무력화, 샤머니즘 타파 등이 있다.

중국에 속해있는 내몽골의 경우에는 중국어와 더불어 아직도 몽골 전통 문자인 몽골 비칙을 사용하고 있긴하지만, 외몽골의 경운 전통 문자의 사용이 사회주의 체제 이후 전면적으로 중단되었다.
그 후, 사회주의가 붕괴되면서 얼마 지나지않아 전통 문자에 대한 초.중.고의 교과목이 정식으로 채택되었지만, 사실상 몽골 비칙을 아는건 전 인구의 30-40%쯤이라 한다.



몽골 비칙은 종서 표음문자(좌에서 우로 표기)로 키릴과는 다르게,
1. 문자가 단어의 맨 앞에 오느냐, 중간에 오느냐, 또 끝에 오느냐에 따라 표기법이 다르며,
2. 자음 뒤 어떠한 모음이 오느냐에 따라 또 표기법이 달라지기도 한다.
3. 더불어 현대의 키릴을 사용한 몽골어와 단어 자체가 다른 것이 있다 : 예) '아버지'의 경우, aav(키릴) -> abu(호친비칙), '나(my)'의 경우, minii -> min-u



바로 이것이,
1. 문장의 처음(ugiin ehend), 중간(ugiin dund), 끝(ugiin adag)에 따른 각기 다른 표기법의 예이며,
2. 또한 자음 뒤 어떠한 모음이 오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표기법의 예이기도 하다.

그리고 종서표기인지라 기마민족답게 말을 타고 달리면서도 쓸 수 있으며, 글자의 표기법을 완벽히 암기하면 매우 빠른 속도로 글을 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글자 모양이 다소 유사하기에 읽는 것이 꽤나 헷갈린다. 그런고로 몽골 비칙을 읽을땐 유심히 잘 보아야만 한다.



얼핏보면 만주 문자(만주어)와도 비슷한데, 알고보니 만주어는 몽골 비칙을 개량해 만든 것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다시금 만주어에도 관심이 가고 있는 중이라는.

아무튼, 몽골 비칙엔 개인적인 관심과 흥미가 커서인지 무척이나 재미있게 배우고 있다.
지금은 알파벳은 다 배웠고, 기본적인 문법을 배우고 있다. 예를 들자면, 격조사의 형태라던가, 동사의 현재-과거-미래시제 등등 말이다. 그나마 키릴로 된 신몽골문자를 알고 있어서 몽골 비칙을 배우는데 큰 어려움은 없는데(단지 글자의 형태가 많이 헷갈린다), 몽골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몽골 비칙을 바로 배우면 결코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더불어 내몽골에선 아직까지도 몽골 비칙을 중국어와 함게 사용하는데, 그래서인지 그들의 몽골어는 고어를 사용하기에 외몽골의 몽골어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한다. 즉, 쓰는 법에서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읽고 말하는데에서도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외몽골인들은 내몽골인들과 대화를 하면 백이면 백 다 웃음을 터뜨린다고 하는데, 나는 외국인이여서 그런지 신기하게는 생각되지만 그다지 이상하다거나 웃음이 나오지는 않았었다.
아무튼, 몽골 비칙은 알면 알수록 몽골어와는 다른, 이른바 새로운 언어나 다름 없다는 것을 날이 갈수록 더욱 체감하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배우는 재미는 더 쏠쏠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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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학문·정보/한국학/동아시아학 | 2008/11/2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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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po. A Brief Introduction to Mongol Bichig

[Image] A sample of Mongol Bichig in manuscript form. The top character on most of the lines are numberals.



In looking at the site's statistics, I had noticed that the single most common search phrase that brought people to the site was 'Mongol bichig'. Then, typing 'Mongol bichig' into Google, I found that the first two links returned are to my site. So I thought I'd put up a short essay on Mongol bichig more generally, for people who are looking for it.

Mongol bichig itself means Mongolian writing. What people (almost) always mean when they refer to it is the form of Mongolian writing based on Uighur. It is sometimes referred to as the 'old script' or 'vertical script' in Mongolian and even in English.

Mongol bichig is said to have been established by Chinggis Khaan, who commanded a Uighur captive in 1204 to adapt the Uighur alphabet for Mongolian. (Charles Bawden, somewhere in his history of Mongolia, drops a comment that he thinks Mongols had writing before then, but he never develops the idea.) It is a vertical script, which is read top to bottom and left to right. (Go to the section of this website that has documents in bichig to download to see a bunch of samples). It is an alphabet with 30 different letters. (This includes letters developed specifically for foreign words. A more 'core' listing of letters commonly used would number 22.) A friend of mine argues that Mongol bichig should really be seen as a syllabary, since once you learn the independent letters you invariably write and read bichig in terms of syllables, rather than individual letters. And she has a point. It also has a 'native' number system, although in publications in bichig from Mongolia, by the late 1930s or early 1940s, this was replaced by Arabic numbers. Today it seems kind of hit or miss on who uses which number system.

In Mongol bichig, each letter has three forms 'an initial, medial and final' depending on where in a word it occurs. The writing system is ambiguous, with, for example, 't' and 'd' being written with the same character. Certain forms of 'o' and 'ö' (among others) are also written the same. However, certain constraints of Mongolian 'such as vowel harmony' mean that the ambiguities are not as bad as they seem at first.

Spelling and grammar are different in bichig than they are in Cyrillic. Usually, but not always, there are specific patterns to the differences. Long (double) vowels in Cyrillic, for example, are almost never double vowels in bichig, but certain set patterns. Thus, what is written Ulaanbaatar in Cyrillic would be written Ulaganbagatur in bichig. (I'm not worrying how to transcribe the different Gs and such right now.) In a similar manner, grammar differs between the two versions of Mongolian, but actually tends to be more systematic in the old script. It should be pointed out, however, that the Cyrillic spelling and grammar much more closely reflects how Mongolian is actually spoken in Mongolia. The degree of difference was once explained to me as being as different as Chaucerian English is to modern English. I'm not sure this is totally accurate in some ways the vertical script has more differences with the Cyrillic than the analogy would suggest and in other ways, it has fewer. Still, it gives a good comparison.

There were various attempts over the centuries to create more readable alphabets for Mongolian, such as a square script developed by the 'Phags-pa Lama during Khubilai Khaan's reign, and the Soyombo script developed by Zanabazar (the First Javzandamba Hutagt) although these never managed to displace Mongol bichig. (As an aside, the written form of Manchu is based on Mongol bichig, with diacriticals added to remove at least some of the ambiguities of the script.)

Bichig is still used in Inner Mongolia in China. It was used until the middle of the 20th century in independent Mongolia. In the mid to late 1930s, Mongolia briefly flirted with using the Latin alphabet. This never really took. In 1941, Mongolia officially switched over to the Cyrillic alphabet. In actuality, the switch did not occur until the early 1950s, and even then, documents and reports in the archives are often written in bichig. Mongol bichig once again became popular after 1989, and is now taught in schools. In the early 1990s, there were plans to convert back to the old script as an official writing form, but this was never realistic. Bichig today is used mainly in advertising or other ornamental purposes in Mongolia, where people tend to use it to proclaim 'true Mongolness' or convey a sense of something being 'traditional' (whatever that means).

http://www.chriskaplonski.com/mongolia/bichig.html (2008.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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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학문·정보/한국학/동아시아학 | 2008/11/2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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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리
- 헤르만 헤세

언제였던가, 어린시절에
나는 목장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때, 아침 바람에 노래가
살며시 실려왔다.
푸른 공기의 소리인가,
아니면 무슨 향기, 꽃향기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달콤한 향기를 내뿜으며
어린 시절을 영원토록
울리고 있다.

내가 성장한 후로 그 노래는 내 의식에서
사라져 갔다 ㅡ 그것이 지금 요 며칠 사이에,
비로소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살며시 다시 우러나고 있다.
지금 나에게는 세상이 아무래도 좋고
행복한 사람들처럼 살고 싶지도 않다.
다만 귀를 기울리고 싶을 뿐이다.
함초롱한 소리가 흐르고
그것이 그때 그 소리인 듯이, 다만
귀를 기울이고 조용히 서 있고 싶을 뿐이다.
:: Category_ 학문·정보/문학/철학/교육학 | 2007/09/1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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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0월경, 문학시간에서의 짧막한 리포트.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랑 루즈(Moulin Rouge, 2001)
o. 감독 : 바즈 루어만
o. 주연 : 니콜 키드먼, 이완 맥그리거 외

'문학(文學)과 사회(社會)의 연결고리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 영화 물랑루즈(Moulin Rouge, 2001)

영화 물랑루즈(Moulin Rouge, 2001)를 통해 본 문학과 사회.
즉, '문학(文學)과 사회(社會)의 연결고리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문학(文學)이란 것은, 한 개인의 정서나 사상을 상상의 힘을 빌어서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작품을 뜻한다.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픽션(fiction)이라는 것 자체가 바로 문학인 것이다.
문학 활동은 한 개인이 써내려가는 극히 개인적인 활동 중 하나로, 작품 속에는 작가의 사상이나 사고방식, 더불어 그의 삶 속 작은 일상의 모습들까지도 작품 속에 나타난다. 원채 문학이라는 것이 그것을 접하는 대중들과 맞물려 돌아가기에 작가의 한 줄 한 줄 그 자체가 대중들이 생각하는 하나하나의 생각 그 자체로 나타나는 것이다.

바즈 루어만(Baz Luhrmann)의 2001년도 작품인 영화 물랑루즈(Moulin Rouge)에서 크리시티앙의 직업은 시인이다. 그러나 이 물랑루즈의 뮤지컬 가수인 샤틴은 그를 공작으로 오인, 그의 환심을 사기위해 사랑한다는 달콤한 말을 하게 되고, 이런 그녀를 거짓말처럼 크리시티앙은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이내 전후사정을 알게 된 크리시티앙. 샤틴의 달콤한 말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낙담하고,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러 샤틴의 방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 곳에서 생긴 작은 소란으로 말미암아 그녀가 출연할 쇼의 스토리를 만들게 된 그는 작업을 해나가면서 샤틴과 진정으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여기에서 '그가 만든 쇼의 스토리는 바로 그 자신의 러브송(Love Song)'이다.

즉, 작가는 자신의 체험과 사고, 사상. 더불어 상상을 바탕으로 글을 써내려갈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이 주체가 될 수밖에 없고, 또한 대중들은 그것을 읽어 내려갈 때 그 작품 자체를 크든 작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늘 항상 처하게 된다.
왜냐하면, 바로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맞대어 살아간다는 것이 '사회(社會)'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작은 펜의 노래가 바로 '문학(文學)'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이라는 것은 곧 사회를 반영하고 그 문학은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문학-사회-우리 인간이라는 세 개의 톱니바퀴는 서로 맞물려 어느 것 하나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서로의 연결고리가 되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자신은 그 문학의 작가이든 아니면 그것을 읽어 내려가는 독자이든 간에 '문학(文學)과 사회(社會)'라는 커다란 톱니바퀴의 연결고리로써 필수불가별한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회를 반영하는 문학. 문학의 주체가 되는 우리자신. 이 어찌 전혀 상관없는 남남이라 그 누가 쉽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올바른 문학을 받아들이고 또 그렇지 않고는 그것을 선택하여 사회에 반영시킬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사회라는 것 자체가 꼭 완벽하게 구성된 지상낙원일 수는 없을뿐더러, 문학 또한 이러한 사회와 마찬가지로 꼭 올바르게 쓰여 진 작품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문학과 사회의 연결고리자인 우리 자신이 풀어내야할 문제인 것이며, 또 개개인이 선택할 선택상의 문제인 것이다.

단지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그 선택의 몫은 바로 우리 자신이 가지게 된다는 사실이며 문학과 사회의 큰 주체로써 그것을 직시하고 있어야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직시하고 있을 때, 우리는 '문학(文學)과 사회(社會)'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Category_ 학문·정보/문학/철학/교육학 | 2007/05/16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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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몽골의 의식주(衣食住)
몽골(Mongolia)의 생활 스타일, 의복, 음식, 음주, 주거.

1. 생활 스타일
물가수준에 비해 급여수준이 너무 낮아 대다수의 몽골인들은 문화, 여가활동을 즐길수 없는 형편이지만 발레나 연극, 극장등은 보편화 되어있어 가족단위로 즐기는 편이다. 이들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시골에 가서 쉬던지 혹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던지 한다.
몽골어로 토요일을 하가스 사잉 어더르(반쯤 좋은 날), 일요일을 부그트 사잉 어더르(완전히 좋은 날)로 부를 만큼 주말을 충분히 즐겨 주말에는 시내가 한산해 진다.

2. 衣服
몽골인들은 대개 여름에는 반팔과 청바지 및 운동화 그리고 모자와 썬글라스등을 착용하며 봄과 가을에는 점퍼차림, 겨울에는 양털로 된 겉옷이나 두껍고 긴 점퍼등의 파커류 에 짐승의 털로 된 사각형의 털모자 및 장갑 그리고 무릎까지 오는 부츠등을 착용한다.
노인들은 대부분 계절에 관계없이 몽골 전통 옷인 델을 입는다. 겨울에는 대개 어두운 느낌을 주는 색깔을 즐겨입고 계절이 따뜻해지면서 색깔은 점점 밝아진다.
젊은이들은 서구의 문화에 민감하여 이곳에서 쉽게 접할수 있는 CNN 및 홍콩의 Star TV를 통해 서구풍의 자유분방한 옷들을 즐겨입는다. 청바지가 흔하고 여자들은 여름에 과감히 노출된 옷을 즐겨입는 것도 특색이라 하겠다.

3. 飮食
몽골인들은 전적으로 육식에 의존하는 민족이다. 이들은 음식을 먹기전에 항상 수태차로 목을 축이고 고기와 야채를 섞어 만든 스프 혹은 밀가루를 얇게 썰어 고기와 함께 삶아 먹거나(칼국수와 비슷함) 삶지 않고 기름에 튀겨먹으며 보즈라고 불리는 고기만두를 아주 즐겨먹는다. 이 고기만두는 우리나라의 만두와 다를바가 없으며 양고기나 소고기를 넣어 만든다.
간단히 먹는 음식으로는 밀가루에 고기와 야채를 넣어 얇게 만들어 튀겨먹는 호쇼르가 있다.
이들은 손님의 방문을 받으면 대개 보즈라는 고기만두를 만들어 대접을 하며 차강사르와 같은 명절때는 한 집에서 보통 2,000~3,000개의 만두를 준비한다. 또는 양고기나 소고기의 한 부분을 크게 썰어 감자와 함께 뼈까지 삶아 소금으로 간을 한후 세수대야 같은 곳에 삶은 고기를 모아놓고 먹을 만큼 가져다가 한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잡고 한손으로 고기를 잡아 능숙한 솜씨로 잘라먹는다.
이들은 식사를 할때 숟가락과 포크를 이용하지만 요즈음은 젓가락도 많이 사용한다. 이들은 식사시 따로 상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응접실에 있는 탁자위에 음식을 올려다 놓고 식구들이 둥글게 앉아 고기를 손으로 깨끗하게 발려 먹거나 만두나 칼국수등을 먹는다. 따라서, 고기를 먹을 경우에는 테이블 위에 마치 야수들이 초식동물을 잡아먹고 난 것처럼 뼉다귀들이 널려있다.
대개 음식은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짭짤하며 고기냄새가 난다. 몽골인들의 음식은 종류가 많지 않으며 고기를 하루라도 먹지 않으면 힘을 쓰지 못한다고 할 만큼 고기를 좋아한다.
우리들이 몽골인들은 늑대처럼 고기를 너무 좋아한다고 하면 그들은 한국인들은 염소처럼 풀만 먹고 산다라며 놀려댄다. 양고기를 먹으면 몸이 따뜻해져서 추운 겨울을 지내는데 좋다고 한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름기 많고 고기냄새가 나는 몽골음식을 좋아하지 않아 그들이 전혀 먹지 않고 버리다 시피하는 소꼬리나 소족등을 사다가 여한 없이 먹곤한다.
이들은 가축이 많아서인지 소꼬리나 소족등은 입에 대지도 않는다. 따라서, 소꼬리나 소족등은 500투그릭 정도면 서너개를 시장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데 지금은 한국사람들이 이를 좋아하는 것을 이용해 포장도 하고 조금 고급스럽게 보이게 만들어서 조금 비싸게 받는 곳도 생겨났지만 그래도 한국에 비하면 형편없이 싸다.
또한, 몽골인들은 몽골산 소세지 및 러시아산 혹은 유럽산 소세지를 날것으로 잘라서 식빵에다가 오이와 함께 먹는다. 이들은 여행을 갈때 항상 이렇게 준비하여 빠른 시간내에 간단히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한다.
이곳에서도 한국음식을 쉽게 먹을 수가 있다. 이곳에는 2곳의 한국식당이 있는데 그 중 서울레스토랑은 몽골에서 가장 좋은 뷔페식 레스토랑으로 이름 나 있다. 이곳에는 한국의 유명호텔에서 주방장으로 있었던 사람이 음식을 만들고 있어 음식도 꽤 괜찮고 홀도 넓으며 잔잔한 음악과 함께 분위기 있게 식사를 할 수 있다. 이곳은 뷔페와 함께 설렁탕 및 꼬리탕과 같은 탕류와 해물탕이나 김치찌게 같은 찌개류를 팔고 있으며 가격은 대개 음료수를 포함해 10~15불 정도면 된다. 음료수 값은 보통 2불정도이다.
또 한군데는 레인보우라는 식당인데 이곳에서는 된장찌게/김치찌게/라면/소꼬리 찜/불고기/갈비/삼겹살 등을 먹을 수가 있으며 가격은 8불에서 15불까지 이다. 이 식당 안에는 노래방이 하나 있어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가끔 이곳에 들러 한국의 노래를 마음껏 불르기도 한다. 입장료는 1인당 5불이다.
요즘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전문 노래방인 채플린이 외무부 뒷편에 생겨 한국노래와 외국 팝송 및 몽골노래등도 있어 매일 많은 사람들이 애용한다고 한다.
또한 일본식 식당인 하나마사에서는 소고기를 로스구이 해먹거나 샤부샤부를 해 먹을 수가 있어 양고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들러 고기로 배를 채우곤 한다.
요즘엔 북한 사람이 개점한 시화랑이란 일식점이 생겼는데 회도 먹을 수가 있고 음식 자체가 조선식이므로 이곳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가격은 비싸지 않은 편이며 반찬 하나하나에도 값을 받고 있으며 이것저것 많이 주문하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단점이다. 1인당 대략 10불 내외면 배를 채운다.
몽골인의 음식문화 가운데 가장 특이한 것은 이들이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2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라마교에서는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중들이 육식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로서 먹을 것은 육식밖에 없는 이들로서는 금기시 할 음식이 자연스레 물고기로 넘어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 한가지 이유는 몽골에는 바다가 없기 때문에 물고기 문화에 전혀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 조차도 바다냄새가 나서 처음에 거부반응을 일으킬 정도인 것이다. 이들의 음식은 우리나라 처럼 반찬이 없으며 가끔 오이를 절인 것과 무를 절인것등을 시장에서 쉽게 볼수 있다.
몽골인들은 냉수를 잘 먹지 않고 항상 수태차나 뜨거운 차를 마시며 식당에서도 냉수대신 스프라이트나 콜라 쥬스 및 맥주를 즐겨 마신다.

4. 飮酒
몽골인들은 스미로프등의 러시아산 보드카나 칭키스칸등의 몽골산 보드카를 즐겨 마시며 계속해서 따라주며 술에는 인색하지 않다. 따라서, 아무리 어려운 형편이라도 손님이 방문하면 술을 준비해 두었다가 대접하며 대체로 안주는 먹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과 술을 대적할 때는 금방 취하기가 쉽상이여서 절제를 요한다.
보드카는 40도 정도의 독한 술로써 3잔 정도 마시면 조금씩 혀가 말을 듣지 않으므로 자신의 분수껏 마시기를 바란다.
여름철에는 가끔씩, 마유주 및 몽골 아르히(가축의 젖으로 만든 요구르트를 끓여서 증발시킨후 액화시킨 술로써 투명하며 알코올 농도가 약하고 맛이 고와 정종과 비슷하지만 젖냄새가 나며 많이 마시면 은근히 취하는 고급 술이다.)를 대접하곤 한다.
이들은 술을 마시면 즉석에서 노래를 부르기를 좋아하는데 노랫가락이 우리의 정서와 흡사해 구슬프게 들린다. 어머니를 그리워 하거나 자연과 가축을 찬양하는 노래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왠만해서는 손님앞에서 술이 취하지를 않으며 술은 마음을 드러내 놓고 상대방을 사귈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은 이렇듯 사람을 정으로써 엮어주므로 몽골인들이 술로써 대접을 한다는 것은 결국 예와 공경으로써 대접하는 것이므로 이쪽에서도 허심탄회하게 진실로써 상대방을 대해야 한다.

5. 住居
몽골인들은 크게 3개의 주거형태를 갖고 있다. 첫째는 아파트로서 도시나 아이막의 터우에서 흔히 볼수 있다.(어런소츠라고 함) 둘째는 도시외곽이나 아이막의 솜에서 흔히 볼수 있는 나무판자를 울타리(하샤)로 하고 그 안에 나무로 지은 집을 짓거나 마당에 게르를 설치해 놓은 게링아일, 세째는 초원위에서는 언제든지 볼수 있는 몽골전통 이동식 천막집은 게르(ger)이다.
도심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여름의 휴가철을 이용해서 항상 시골 친척집 혹은 도심 외곽지대에 휴양지(조슬랑)에서 여름을 나고 돌아온다. 다시말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도심외곽 지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보단 부유하지만, 시골에서 게르에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 부유하다고 말할수는 없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몽골에서 부는 가축을 몇마리 가지고 있느냐로 따지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도심 외곽의 나무 판자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 초원위에서 게르를 치며 가축을 기르고 있는 사람들이 물질적, 혹은 정신적으로 훨씬 풍요하다는 것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아파트, 한, 게르 모두 벽치장을 카페트로 한다는 것이다. 이는 아파트건 어디건간에 몽골의 혹심한 겨울에 벽의 찬바람을 막는것과 동시에 인테리어의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다 준다.
아파트는 보통 2칸, 3칸, 4칸으로 구분되는데 대개 응접실도 방수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2칸짜리 아파트는 방 하나에 응접실이 하나인 아파트를 의미하는 것이다.
방에는 항상 침대가 있으며 응접실에는 소파가 있다. 마루건 방이건 간에 항상 커다란 카페트가 깔려있는데 이는 추위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실내에서는 항상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착용한다. 부엌에는 전기레인지(피렐테크(러), 갈조흐(몽골어))가 있으며 테이블과 조그만 의자, 찬장이 놓여있다.
응접실에는 TV및 장식물들이 놓여있으며 테이블에는 대개 수태차가 들어있는 빨간색의 긴 보온병이 있다. 이들의 아파트는 대개가 두꺼운 콘크리트로 지어져 있는데, 이는 공산주의시절 지어진 탓에 단단하게 지어져 30년이 지난지금까지도 벽에 금하나 안가있으며, 추운 겨울을 대비하여 창문도 2중으로 되어있다. 바깥벽의 두께가 보통 30cm 가 넘어 얼마나 단단하게 지어졌는지 알수 있다.
그리고 응접실과 모든 방에는 '파르'라고 하는 보일러가 있는데 이는 겨울에 정부에서 공급해준다. 다시말해, 개인들이 난방을 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울란바타르 시의 화력발전소에서 동시에 공급해 주는데, 연료사정이 좋지 않아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에는 그 열이 너무 미약해서 대개 잠을 잘때는 두꺼운 옷을 껴입고 자야한다. 요즘에는 전기담요 및 전기 보일러등을 사서 밤에 틀어놓고 자면 되지만, 돈이없는 일반서민들은 가끔씩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아 완전히 추운겨울 바깥외출할때 입는 방한복을 껴입고 잠을 자기도 한다.
나무로 만든 집들도 거의 비슷하나 이들은 나무나 땔깜으로 난방을 하는데 더워진 물들이 방마다 설치된 파이프를 통해 열을 전달하나 추위를 이기기엔 너무도 미약하다. 대개 화장실은 바깥 마당에 놓여있는 것이 일반 아파트와 다르다. 초원위의 게르역시 가축의 똥이나 나무로 불을 떼우나 자기전에 때운 열로 아침까지 견딘다. 대개, 양털로 된 옷을 입고 양털로 된 두꺼운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 쓰고 잔다. 아파트나 나무집과는 달리 게르는 방이 하나이므로 이 안에 침실과 응접실과 부엌이 공존해야 한다. 따라서, 게르안 왼쪽에 침대가 둘 정면에 소중한 물건들을 놓는 장식대가 있고 오른쪽에 침대가 또 두개가 더있다. 그리고, 게르 오른쪽엔 초라한 부엌이 있으며 중앙 난로뒤에는 조그만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있어 손님이 오면 접대하는 곳이다. 게르안 바닥은 대개 나무로 만든 마루가 둥그렇게 놓여있어 습기를 막아준다.
그리고, 초원위에서는 화장실이라는 것이 없다. 아무데고 볼일을 보면 되지만 대개 집뒤에 가서 볼일을 본다. 남자들은 괜찮으나 여자들은 대개 긴 옷을 입고는 앉아서 볼일을 본다. 누가봐도 별로 게의치 않는다.


출처. http://blog.naver.com/imahun?Redirect=Log&logNo=90013302560 (2007.5.14)

:: Category_ 학문·정보/한국학/동아시아학 | 2007/05/14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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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몽골 문화(文化) 전반

몽골인들을 처음 만나게 되면 우선 그들의 모습이 우리와 많이 닮았기 때문에 별로 낯설지 않고 친근하며 부담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된다. 그들 역시 우리를 별로 낯설지 않게 생각하며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면 더더욱 친절하게 대해준다. 그들의 한국에 대한 감정은 무척 좋다. 그들은 현재의 몽골이 가난하며 발전하지 못했고 또한 몽골인들의 국민성이 나태하고 게으르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아 행여 상대하는 외국인들이 어떤 불편을 겪지 않나 혹은 무슨일이 생기지 않을까 무척 염려하며 잘 챙겨주는 편이다. 리고 거기에 대한 대가를 별로 바라지도 않는다. 고위직에 있거나 많은 젊은 지식인들중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잘 하는 반면 영어를 잘 하지 못하므로 러시아어를 모르는 우리들이 그들과 만나 사귀는데 몽골어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친절한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의 그 친절함이 관공서나 기타 업무에 관련될 때에는 무척이나 불친절하다. 다시 말해, 서비스 정신이라고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권위주의적이고 비합리적이지만 그들은 자기의 일은 자기만의 특권이라는 인식이 강해 보잘 것 없는 곳에 보잘 것 없는 직책을 가지고 있더라도 자기의 일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가 없다. 그러나, 업무관계를 떠나 개인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면 금방 가까워지고 그 다음부터 업무관계로 다시 그를 찾아가면 어느 누구보다도 일이 빨리 끝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허나 때로는 그 정이 지나쳐 터무니 없는 것을 부탁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적당한 변명으로 거절하면 된다. 여하튼, 처음에는 다가가기 서먹서먹한 사람일지라도 조금만 친해지면 금방 오랜 친구처럼 대하는 몽골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 보다도 더 정에 약한 사람들인것 같다.
그러나 이처럼 정이 많은 몽골인을 만나는 데에는 최소한 지켜야할 예절이 있는데, 몽골인과의 교류시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적어본다.

1. 존칭사용
몽골말에는 상대방을 부를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너와 당신을 의미하는 2가지 말이 있다. 우리말의 너는 ‘치’, 당신은 ‘타’로 발음이 되는데, 친해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치’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1,2 살만 위인 사람에게도 대부분 ‘당신’이라고 표현을 하지만 몽골사람들은 6~7년 정도의 차이는 대개 서로가 ‘치’라고 반말을 한다. 이는 버릇이 없다기 보다는 상대와 그 만큼 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 자기에게 반말할 때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버릇없는 것에 화가 나거나 다시는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가 않은데 그러한 마음을 일찌감치 버리고 상대방이 나와 친해지고 싶어서 혹은 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는 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또 하나의 이유는 외모상 한국인들은 몽골인들보다 훨씬 어려보인다. 항상 건조한 곳에서 생활하여 피부가 꺼칠해지고 따가운 햇볕에 피부가 그을려 그들은 상대적으로 한국인들에 비해 5~6살 혹은 열살이상 나이가 많아 보인다. 그리고 또 그들은 일찍 결혼을 하므로 아무래도 남자들은 더 빨리 늙는것 같다. 따라서, 그들은 나의 나이가 상대방 몽골인 보다 훨씬 많아도 겉으로 느끼질 못하므로 처음 만날때 자기소개를 하면서 자연스레 내 나이를 얘기하는 것도 괜찮다.
많은 몽골인들은 친구들의 연령차가 정말로 다양하여 7,8살씩 차이가 나도 내 친구 운운하며 서로가 잘 어울린다. 가끔 멋모르는 한국인들이 어린놈이 반말한다고 분을 삭이며 그들을 버릇없는 놈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지만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그들과 대화가 이루어질 수가 없다.
상황에 따라 xx 씨라고 불러야 할 때가 있는데 고아이(Mr.)라고 부르면 자연스럽다. 선생님에게는 바크샤 라고 부르는것이 예의고 나보다 나이가 5~15여살 많고, 내가 정말 친해지고 싶을때는 상대방을 아하(형)라고 부르는 것도 꽤 친밀감이 있어서 좋다.
실례로 몇년전 삼성의 한 직원이 이곳의 한 거래선에 상담을 하러왔다가 하루종일 상담을 해도 결말이 나지 않고 지치자 통역에게 몽골어로 형이 무어냐고 묻고는 상대방에게 아하! 한번만 도와주세요 라고 말했는데 한치의 양보도 없던 상대방이 그 얘기를 듣고는 호탕하게 큰 소리로 웃으며 우리가 원하는 가격에 상담을 마쳤다고 한다. 물론, 그들의 관계는 그 이후에도 항상 형과 동생처럼 이어진 것은 물론이다.

2. 식사시 예절

몽골사람들은 수태차라고 하는 차를 즐겨 마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물을 마시는 것과 같이 몽골인들은 수태차를 마시는 것이다.
수태차는 끓는 물에 우유가루와 짭짤한 맛을 내는 약초를 섞은 것으로 익숙해지면 보리차 마시듯이 마시게 된다. 유목생활을 하던 몽골인들은 물이 가깝고 건초가 많은 곳에 겔을 짓고는 가축을 방목하였다. 따라서, 항상 물을 길어다가 조금씩 아끼며 사용했으며 겨울에는 아예 얼음덩어리를 집에다 갖다놓고 그것을 깨서 끓여먹었다. 그러다 보니 물이 깨끗할 리가 없고 또 추운날씨를 이기기 위해서는 항상 물을 끓여 먹어야 했던 것이다. 거기다가 몽골인들은 항상 육식을 하므로 그 기름기를 없애기 위해서는 중화시키는 무언가를 먹어야 했는데 그것이 바로 수태차인 것이다.
수태차는 육식을 하는 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고 젖냄새에 익숙해 있는 그들에게는 아주 향기로운 차인 것이다.
몽골인 집을 방문하면 이들은 상 테이블위에 대개 겉이 빨간 길쭉한 보온병이 놓여있는데 이 안에는 항상 따뜻하게 보온이 되어있는 수태차가 들어있다.
손님이 오면 몽골인들은 먼저 상대방에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한다음 수태차를 사기그릇에 따라주며 두손으로 건내준다. 이때, 받는 사람 역시도 두손으로 정중하게 받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한다(바야르랄라). 그리고는 바로 입에다 대고 조금이라도 마셔야 하는데 한번에 다 마실 필요는 없지만 남겨서는 안된다. 실례가 되는 것이다.
처음 마실때는 젖냄새도 나고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들며 가끔은 우유 찌꺼기가 다 풀어지지 않아 뭉쳐 있는 것이 보이기도 하지만 결코 몸에 나쁘지 않으니 꾹 참고 천천히 마신다.
나는 지금도 가끔씩 수태차가 마시고 싶을때가 있다. 몽골인들은 차나 술을 상대방에게 권할때 항상 오른손가락을 모아 잔 밑부분을 받쳐 들고 왼손으로는 오른 팔꿈치를 받들면서 권한다. 하지만, 권하는 사람이 왼손잡이 일때는 반대로 해도 상관 없지만 받을때는 항상 왼손으로 오른팔꿈치를 받들며 잔을 받아야 한다. 나름대로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싶다.
몽골의 전통옷인 델은 소매가 길어 가만히 팔을 내려놓으면 소매가 손을 덮는다 -이는 추운겨울에 손을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따라서 가운데 고기들과 술잔이 놓여있는 상위에서 음식을 먹거나 술을 따르고 권할때 소매가 유난히 크고 길어 중간부분을 끌어당기며 받쳐주지 않으면 음식을 먹는데 아주 불편할 뿐 아니라 옷이 음식물에 닿아 옷과 음식이 더러워 진다.
음식을 먹을때도 주인이 권하면 역시 두손으로 받아 감사의 표시를 하는데 이때는 잔이 아니라 그릇이므로 두손을 내밀며 그릇을 정중하게 받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음식이란 상대방의 성의를 생각하여 많이 먹는 것이 좋으나 상황에 따라 이미 배가 부른 경우나, 혹은 느끼해서 도저히 먹지를 못하겠다면 음식을 하나 입에다 넣어 맛을 본 후 적당한 핑계를 대며 음식을 내려놓는 것이 좋다. 맛을 본 것 자체가 예의를 지킨 것이므로 구태여 들어가지도 않는 음식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예의를 지키기 위해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간신히 먹을 필요는 없다.

3. 몽골 가정 방문

몽골인 가정을 방문할 경우에는 하찮은 것이라도 반드시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예의다. 대개 보드카 1병과 초콜렛이나 사탕 정도면 된다. 그러나, 상대방의 부인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을때는 화장품 정도가 괜찮다.
설사, 시간이 없고 가게가 문을 닫아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돈을 주는 것도 일반화 되어있다 (깨끗한 돈으로 2,000 투그릭 정도면 알맞음).
집에 들어가서는 식구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사람부터 ‘사잉 밴오?’(안녕하세요) 라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면 된다.(명절날은 다름) 그리고, 주인이 권하는 자리에 앉아 주인이 권하는 수태차를 받는다. 가끔 몽골인들은 외국인이 불편할 까봐 신발을 신고 들어오라고 하는 경우가 있으나 벗고 들어가는 것이 예의이다.(아파트나 목조건물등에서)

그리고, 몽골 게르 방문시 다음 사항에 주의해야 한다.
1)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인사말을 한다.
2) 중앙의 난로옆에 좌우로 2개의 기둥이 나란히 놓여있는데 왼쪽 기둥의 바깥쪽에 서서 주인이 권하는 자리에 앉는다. 두 기둥사이로는 오고 가고 할 수가 없다.
3) 자리에 앉아서는 그들이 주는 수태차를 정중하게 두손으로 받아 마신다.
4) 용무가 끝나고 나올때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뒤로 되돌아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앞쪽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나와야 한다.
5) 절대 문지방을 밟아서는 안된다.
6) 인사말을 한다.
* 명절날에는 인사할때 서로가 팔을 벌리고 껴안으며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젊은 사람의 뺨에 자기 코를 갖다대도 냄새를 2번정도 마신다.

4. 몽골인의 시간관념
몽골인들은 시간에 대한 관념이 별로 없다. 보통 30분 정도 늦는 것에 별로 미안해 하지 않는다. 이는 급할 것이 없는 민족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고 우리마저 그럴 수는 없는 일로써 그들에게 무언가를 느낄 수 있도록 약속시간을 정확히 지켜주는 것이 좋다.

5. 복장
1) 정장은 양복 과 흰색 긴팔 와이셔츠에 넥타이 이다.
2) 명절때는 몽골 전통옷인 델을 입는 것도 괜찮다.
3) 평상시 너무 어리게 입거나 추잡하게 입지 아니한다.
4) 명절때(신찔, 차강사르) 방문시 항상 모자를 착용한다. 이들은 명절때 손님이 올경우 주인이나 손님이나 모자를 쓰고 상대방을 맞는것이 예의이다.
5) 몽골인과 밖에서 만날때는 절대로 반바지를 입지 말며 부득이한 경우에 츄리닝을 제외하고는 삼가는 것이 좋다.

6. 손가락으로 사람을 가리키지 마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언가를 가리킬때 검지손가락을 사용하는데 이는 몽골에서는 대단히 실례되는 행동으로써, 상대방을 죽이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본인 모르게 이러한 행동을 했다면 즉시 사과를 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좋다. 무언가를 가르킬때는 손바닥을 펴서 가르킨다.

7. 음주 예절
몽골인들은 손님이 오면 항상 준비해둔 보드카 및 여름철에 시골에서 가져온 마유주(말젖을 발효시켜 만든 술로서 막걸리와 비슷한 맛임) 등을 권하는데 보드카는 조그만 잔을 이용하지만 마유주는 커다란 대접에다 가득 담아 준다.
술을 주고 받을 때는 보드카의 경우 차를 마실때와 같이 왼손바닥으로 오른팔꿈치를 받쳐 잡으며 오른 손가락을 모아 술잔을 받으면 되고 마유주는 대접에다 주므로 두손으로 대접을 받으면 된다.
마유주는 처음 마시면 대개 설사를 하게 되는데 위장을 깨끗이 해준다고 하며 설사후에는 몸이 아주 가벼워짐을 느끼게 된다. 마유주를 마시면 별로 취하지는 않고 배가 불러오는데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된다.
또한 보드카나 몽골 아르히등을 마실때에는 왼손으로 술잔을 잡고 오른손의 네번째 손가락을 술에 대어 술을 묻힌다음 얼굴앞으로 갖다대어 먼저 하늘을 향해 엄지손가락으로 튀기고 다음엔 앞을 향해 그리고는 땅을 향해 튀긴다음 입에다 갖다대는 것이 예의인데 마유주를 마실때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이는 하늘과 땅에 감사하고 또 인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몽골인들은 술을 마실때 끊임없이 술을 권한다. 그렇다고 다 받아 마실수는 없으므로 보드카의 경우는 조금만 입에 대어 예의를 표하고 술을 못한다고 정중하게 얘기를 하면 괜찮은데 마유주는 약하므로 최소한 1 대접 정도는 마셔야 한다. 몽골인들 얘기로는 술을 받을때 3잔까지는 기본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이 예의라고 하지만 적당한 핑계를 대고 정중히 거절하면 된다.
또한 한국은 술잔을 완전히 비우면 술을 따르지만 몽골에서는 술잔이 조금만 비워도 술을 따른다. 참고로, 몽골인들은 보드카나 마유주를 잘 받아 마시면 무척 대견스러운 듯 흡족해 하며 아주 좋아한다.

8. 흡연
몽골에서 흡연은 몇몇 장소를 제외하고는 가능하므로 주위를 살펴 금연표시가 없는 곳에서 피는 것이 좋다.
몽골 가정을 방문하다 보면 나이드신 어른들이 있는 경우 인사를 할때 그들은 소매춤에서 조그만 옥돌로 된 병을 꺼내어 정중히 건네준다.
이것은 하마링 타미흐(코 담배)로서 두손으로 정중히 받아들어 뚜껑을 열고 두껑에 붙어있는 귀 청소기 처럼 생긴것을 구멍속에 밀어넣어 재(잎을 곱게 갈은 것)를 왼손가락위 (보통 둘째 및 넷째 손가락)에 조금 묻힌다음 엄지손가락과 함께 비비면서 코로 들이마시면 되는데 진짜 들이 마시지 말고 시늉만 내는 것이 좋다 :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은 대개 들이마시는데 재채기가 끊이지를 않는다. 그리고는 다시 뚜껑을 닫아 정중히 두손으로 건네준다.
또한 공공기관에서 흡연 구역일지라도 옆 사람의 동의를 구한 후 피우는 것이 무난하며 손윗사람 앞에서는 담배를 되도록이면 삼간다. 이곳에서는 여성도 자유스럽게 담배를 피우며, 저항감을 표정에 담지 않도록 한다.

9. 여자에게 나이를 묻는것은 실례
몽골에서 처음 만났거나 친하지도 않은 여자에게 나이를 묻는것은 실례이며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이때, 끈질기게 여자의 나이를 물어보거나 혹은 무슨 띠인지 물어보는 것은 무례한 짓이며 상대에게 여간 부담을 주는 행동이 아니다. 생일등은 물어봐도 상관없으며 정 상대의 나이가 알고 싶으면 친숙해져서 부담이 없어지면 그때가서 나이를 물어볼 수는 있다.

10. 거리에서
1) 몽골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좌측통행이다. 횡단보도를 건널때는 반드시 신호를 지키며 보행신호시에도 차가 오면 일단은 경계를 하는 것이 좋다.
몽골은 우회전 하자마자 횡단보호가 나오면 대개 차들이 서지않고 바로 지나간다.
2) 택시 이용시에는 가능하면 콜택시를 이용한다.(야간)
3) 무단횡단 하지 않는다(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한다.)
4) 큰소리로 사람을 부르거나 이야기 하지 않는다.
5) 야간에 혼자 택시를 이용하지 않는다.(특히 여자의 경우)
6) 현금을 많이 갖고 다니지 않는다.

11. 호텔에서
1) 시내 고급 호텔의 경우 종업원의 서비스를 받으면 1$정도의 팁을 주나 지방에서는 팁을 줄 필요가 없다.
2) 방에 비치된 호텔 안내책자를 먼저 읽어본다.
3) 노출이 심한 복장으로 복도나 로비에 나오지 않는다.
4) 방에 현금이나 귀중품을 놓지 않는다.
5) 방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

12. 식당에서
1) 음식값 계산은 후불이며 계산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몽골의 대부분의 식당 및 호텔 그리고 상점에서는 컴퓨터가 있다 할지라도 컴퓨터로 계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가 종업원이 계산기로 계산을 하므로 착오가 있을 수가 있다.)
2) 음식값을 계산한 후 반드시 영수증을 받는것을 습관화 한다.
3) 음식값을 계산할때 반드시 현지화를 준비하였다가 계산한다.(환율상 손해를 보게 되어있다.)
4) 식당에 들어가서 마음대로 앉지 않는다.(반드시 종업원에게 동반자 수를 말하고 안내를 기다린다.)
5) 종업원을 부를때 큰 소리로 부르지 않는다.(손만 조용히 들어도 된다.)
6) 테이블 아래로 떨어진 수저, 포크, 젓가락등은 다시 집어 사용하지 않는다.(종업원을 불러 새 것으로 가져오도록 시킨다.)

13. 운전시
1) 여름엔 강렬한 태양빛을 피하기 위해 선글라스를 반드시 착용한다.
2) 일방 통행로가 있는 곳이 종종 있으므로 교통표지판을 유의해서 본다.
3) 교통법규 위반시 잘못했음을 시인하고 경찰의 지시에 따르는데 조용히 겸손한 자세로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낫다. 몽골의 경찰은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므로 본인이 귀찮아 그냥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4) 도로사정이 좋지 않고 군데군데 뚜껑없는 맨홀들이 도사리고 있어 가능한 밤에는 천천히 달리며 그러한 지점을 외워두는 것이 좋다.
5) 이곳의 인건비가 싸므로 운전사를 고용하는 것도 사고예방의 차원에서 괜찮다. 운전사의 월급은 보통 월 100불내 이다.
6) 출장자의 경우 가능하면 직접 운전하지 않는다.
7) 몽골의 도로에서 좌회전 차선은 오로지 1차선 밖에 없다. 2차선에서 좌회전을 시도하다가 경찰한테 십중팔구 적발되므로 직진을 하다가 되돌아 오는 것이 낫다.
몽골에서 좌회전은 신호등에 좌회전 표시가 있으면 신호를 받아 가면 되지만, 신호가 없을 경우에는 비보호 이므로 도로 중간에서 좌회전 할 수가 있다.
8) 밤에는 가로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내가 어두우므로 앞에 사람이 있는지를 잘 관찰하며 천천히 운전을 해야한다.
9) 교통사고 발생시 직접 협상하지 말고 교통경찰을 부른다.(대부분 손해를 보기 일쑤이다.)
10) 고물차 뒤는 되도록이면 뒤 따라가지 않는 것이 좋다. 가령, 차가 갑자기 서는 경우가 많아 사고의 위험성이 있다.
11) 횡단보도 앞에서는 일단 차를 세워 행인에게 양보하는 미덕을 가진다.
12) 느긋하게 운전하는 습관을 가진다. 몽골인들은 운전할때 차들이 대개가 고물이므로 천천히 달리며 많은 차들이 사이드 밀러가 없어 주행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때 짜증이나 화를 내기보다는 여유를 가져 그들과의 충돌을 피하는 것이 좋다.

14. 선물
1) 선물은 적당한 가격의 한국적인 상품이 좋다.
2) 가정방문시 남자에게는 보드카 1병, 부인에게는 화장품류, 아이들에게는 사탕이나 초콜렛등이 좋다.
3) 꽃을 주고 받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으며 꽃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가끔 꽃을 좋아하는 여자들도 있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꽃만을 선물하는 것은 좀 어색하다. 가령, 특별한 날, 남녀의 선물에 있어서 보드카 혹은 초콜렛이나 사탕등을 비닐종이로 싸고 장미꽃 조화 1송이를 꼿은 선물들은 흔하게 볼 수 있다.
4) 선물을 주고 받을때는 일어서서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는다.
5) 선물이 준비되지 않았으면 돈으로 줘도 무방하다.(2~3천 투그릭 정도)
6) 고가품, 고액의 선물은 피한다.

15. 파티
1) 초청장을 필히 지참한다.
2) 작은 선물을 준비하여 주최자에게 준비한다.
3) 자기 소개를 할 명함 등을 준비한다.
4) 초청자 이외에는 추가 동반하지 아니한다.
5) 사전통보 없이 무단 불참하지 아니한다.
6) 무리하게 술을 마시거나 권하지 않는다.
7) 담배는 지정된 곳이나 양해를 구하고 핀다.

16. 종교
1) 몽골인들은 대부분 티벳 불교인 라마교를 믿으므로 타 종교와의 논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2) 사원 같은 곳에 가서 내부 및 신자들이 절하는 모습등 촬영은 가급적 삼가도록 한다.
한번은 울란바타르 시내의 명소인 간단사원에 들렀다. 규모와 위용에 감탄을 하며 갖가지 시설들을 돌아보고 있었다. 경내에는 항상 비둘기가 많이 몰려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모이를 먹고 있다. 한쪽에는 신도들이 절을할수 있는 사람체구만한 긴 널판지 몇장이 운동기구 처럼 열을 맞춰 놓여있었다. 한 신도가 그 널판지에 사지를 쫙펴고 엎드려 절을 하고 있었다.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 그 신도모르게 사진을 몇장 찍고는 돌아나오는데 그 신도가 나를 부르더니 자기 사진을 허락없이 찍었으니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저씨도 아니고 아주머니가 그런얘기를 하다니. 나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 전혀 몽골어를 모르는 사람처럼 의아해하고 전혀 이해하지 못한것처럼 대했더니, 결국은 몇마디 뱉더니 그냥 가버리는 것이었다.
역시 위기에 처하면 전혀 대화가 안되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상책인 것이다. 신성한 경내에서도 몇몇 신도의 마음엔 돈의 유혹이 꿈틀거릴만큼 현재의 삶이 어려운 것이 또하나의 몽골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17. 쇼핑
물건을 살 경우 돈을 지불하는 방법은 상점에 따라 크게 2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하나는 국영 백화점과 같이 여러종류의 가게가 한 주인에게 속해있는 경우에는 물건을 고른후 그 물건의 가격을 종업원으로부터 받아 직접 계산대에 가서 돈을 치루고 그 영수증을 다시 종업원에게 갔다 주어야 한다. 이때, 종업원으로부터 영수증을 받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한가지는 슈퍼나 시장과 같이 개인이 자기 가게를 운영하는 경우에는 물건을 고르면서 돈을 지불하면 되는데 대형 슈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경우영수증이 없다.
몽골에서는 아무리 물건을 많이 산다해도 깍아주거나 덤으로 서비스를 주는 법이 없으므로 애석해 하지 말기를 바란다. 또한, 하르자흐나 텀자흐처럼 사람이 아주 많이 몰려드는 곳에 갈 때는 도둑을 맞기가 쉬우니 돈 간수를 잘해야 하며 그들과 부딪힌다 해도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낼 필요가 없다.
이곳에는 많은 몽골인들이 값싸고 좋은 물건을 사기위해 항상 장사진을 이루는데 걸음을 옮기기가 힘들정도로 사람이 많고 접촉이 심해 한번 갔다오면 옷이 더러워져 빨아야 한다. 그리고, 계산시는 항상 다시 검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몽골인들은 계산할때 거의 계산기에 의존하여 계산기가 없이는 정확한 계산이 나오지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계산기 사용방법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에 있다.

18. 몽골의 신찔(신년. 12월31일)
교통사고 목격건으로 분주한 하루를 보낸후 몽골인 가족의 초대를 받아 10시쯤 그 집으로 갔다. 몽골의 신찔에는 모든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모든 출가한 자식들이나 친척들-정성스럽게 차린 음식을 선보이고 보드카를 마시며 덕담을 늘어놓는다. 그리고는 새해를 맞아 건강하게 그리고 하는 모든일이 잘되기를 기원한다. 우리가 설에는 조상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것만 빼고 몽골의 신찔은 우리의 신정이나 구정과 너무도 흡사하다. 그날 만큼은 그들은 모든것을 아끼질 않는다. 돈이 없어도 빚을 내어서라도 음식을 만들어 놓고 자기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 접대를 한다. 12시가 지나면 그들은 보드카를 건배하며 신찔의 절정을 만끽하며 새해를 맞는다. 이때 수흐바타르 광장을 가보면 광장주변에 전기불꽃들로 된 장식들이 여기저기 걸려 분위기를 고조하고 중앙에 놓여있는 밝게 빛나는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는 가족 및 연인혹은 친구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환호를 치며 희망찬 새해를 맞기위해 기원한다.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모여 크리스마스 트리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쌍쌍이 데이트도 즐기는데 12월 31일부터 1월 3일까지 휴식을 취한다.

19. 몽골의 신찔 전야
이 날은 내일(12. 31)이 몽골의 신찔(신년)이기 때문에 모든 관공서나 회사가 이때 종무식을 겸한 파티를 한다. 이때는 거의 모든 레스토랑이나 Bar를 예약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파티손님들로 붐비는데 대개 부부동반이나 파트너를 데리고 파티에 참석한다. 따라서, 이날 파티에 초청을 받으면 정장에 넥타이를 메야하며 파트너가 있는 경우는 함께 가도 무방하다.

20. 몽골의 차강사르(음력 1.1~1.3)
우리의 구정과 같은 몽골의 차강사르(하얀 달). 진작부터 이때에 준비하여 몇몇 스케쥴을 잡아 놓고 있었다. 이 기간동안 모두 5집의 몽골가정을 방문했는데 처음만 어색할 뿐 나머지 4집을 방문하기는 아주 쉬었다. 그 과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처음 몽골인 집을 방문하기 전에 선물이나 돈을 준비한다.(돈은 500투그릭이나 1,000투그릭이면 되는데 1,000투그릭 정도가 알맞다.)
2)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모자를 준비해야 한다. 집에 들어가서 모자를 쓰고 인사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주인도 집에 있다가 손님이 오며는 인사를 하기위해 모자를 쓴다.
3) 몽골인 집에 들어가서는 먼저 가장 윗분부터 인사를 해야하는데 먼저, 아마라 밴오? 혹은 사이항 시넬쯔 벤오? 라고 말하면서 마주 안고 얼굴을 갖다 대면서 서로의 옆볼에 키스를 한다. -왼쪽과 오른쪽에 각 1번씩) 이때,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이많은 사람들은 키스를 하는 것이 아니고 흡흡 하면서 코로 냄새를 맞는데 이것이 서구화 되면서 요즈음은 볼에 입술을 갖다댄다. 이때, 주의할 것은 볼에 입술을 갖다만 대야지, “쪽”하고 키스를 하면 안된다.
4) 그리고, 준비해온 선물이나 돈을 주고, 모든 식구들과 인사를 한다음 그들이 안내하는 자리에 앉는다. 여기서 돈은 자기보다 연상인 사람들에게 주는것이 상례이므로 나이어린 사람들에게는 주지않아도 된다.
5) 자리에 앉은 다음에는 성인남자들이 항상 갖고 다니는 조그만 옥병을 건네준다. 그 옥병속에는 까만 가루들이 들어있는데 탐히(담배)라고 한다. 그 병을 받아들고서 검지손가락에 조금 뭍힌다음 코에 들이대고 흡흡하고 들어마시는 시늉을 한다. 그러지 않고 완전히 들어 마시면 재채기가 끝없이 나오게 된다.
6) 그리고, 그들이 주는 수태차(우유차)를 두손으로 받으면서“바야르랄라”(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음 가능한한 다 마시는 것이 상례이다. 다 마시지 않고 내버려두면 그것은 커다란 실례가 된다.
7) 음식이 차려진 긴 상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앉는데 그 상위에는 전통적으로 양이나 소의 몸통부분을 삶아서 갖다 놓고 그 옆에 그것을 자를수 있는 칼을 놓는다, 그 주위에는 우유(젖)로 만든 빵이나 과자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놓고 맨위에는 사탕들을 갖다가 놓는다.
8) 그리고, 그들이 주는 음식은 모두가 다 한번씩은 입에 대는 것이 상례이며, 만약, 먹기 싫거나 배가 부르면 지금 배가 불러 먹을 수가 없으니 미안하다 라고 말하면 된다.
9) 그들은 술을 좋아하는 민족이므로 손님이 오면 항상 술을 대접을 하는데 술의 종류는 주로 2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그들이 자랑하는 몽골산 보드카 징키스칸(우리의 고량주와 비슷함)과 아이락(구니수 라고도 한다. 이것은 말젖을 발효시킨 것으로 우리의 막걸리 맛과 비슷하며 처음 이것을 마시게 되면 설사를 하게되는데 그 다음부터는 속이 아주 깨끗해짐을 느낀다. 장 청소를 시켜준다고 한다.) 이 있다. 아이락은 커다란 대접에다가 막걸리처럼 주는데 차강사르때를 대비하여 그 전에는 먹지도 않고 준비를 한다.
10) 그리고, 술을 먹고는 그들이 권하는 대로 고기를 칼로 살짝 떼어 최소한 한번쯤은 맛을 봐야 한다.
11) 그리고 돌아올때는 그들에게 인사를 하며 사이항 아마랄라레(편히 쉬십시요.), 바야르랄라(감사합니다.) 바야르테(안녕히 계십시요)라고 말하는데 이때, 그 집주인은 방문객에게 하타크라로 하는 파란 긴천을 두손으로 길게 잡고는 그위에 손님에게 줄 선물을 올려서 준다. 이때, 거절하면 실례가 되므로 두손으로 정중히 받으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나온다.

이것만 지키면 몽골의 차강사르때 몽골집을 방문하는데 커다란 어려움이 없을것이다. 몽골의 차강사르는 우리네와 흡사한 면이 많았다. 우리는 구정때 부모님께 세배를 드리고제사를 지낸다음 친척집에 인사를 가던지, 손님을 맞이하여 오랜만의 회포를 푸는데 비해 그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축제인양 가족끼리 먼저 새해인사를 나눈다음 이집저집을 찾아가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정을 돈독히 한다. 그리고, 이때 몽골의 모든가정은 손님맞이를 위해 만두(보즈 라고 함)를 만드는데 그 수가 가히 놀랄만하다. 각 가정마다 보통 2,000개에서 3,000개의 만두를 만드는데 우리의 만두와 겉모양이 똑같으나 속에는 양고기 혹은 소고기를 갈아서 넣어 만든다. 하루종일 이집저집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전통과 아주 흡사한 면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이웃과의 정을 돈독히 나누는 정이 넘치는 그러한 가족적인 사회가 아직도 몽골의 저변에 깔려있어 점점 이기주의적인 사회가 되어가는 우리네와 구별이 되었다. 그리고,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휴가기간은 3일이지만 그 다음주까지 그들은 계속해서 이집저집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기분을 만끽한다는 것이다. 이때에 분명 일을 하기는 하지만, 많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에는 별로 신경을 안쓰고 퇴근중이나 후에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하여 마치 차강사르기간이 열흘정도 되는 것 같았다. 따라서, 그 기간중에 일 관계로 다른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다. 여하간, 그들의 집을 방문하면서 그나마 한국의 구정을 그리워했던 그 순간들 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가 있었다.


출처. http://blog.naver.com/imahun?Redirect=Log&logNo=90013302560 (2007.5.14)

:: Category_ 학문·정보/한국학/동아시아학 | 2007/05/14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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