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ICA MONGOLIA'에 해당되는 글 112건

  1. 2010/10/08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주몽골 북한대사관)
  2. 2010/10/08 항상 전기가 고픈 몽골, 이제는 일상
  3. 2010/10/05 UB 외곽 트래킹, 몽골 서민들의 생활
  4. 2010/10/03 고마운 초대. 행복한 가정으로의 방문 : Tuvshintungalag(틉신통가락; 틉셔; 통가) 사서와의 인연
  5. 2010/09/30 [기사] 몽골국립도서관에 한국자료실 생겼다(세계일보 2009.11.12) (1)
  6. 2010/09/30 한국학정보센터 : Window on KOREA 개관을 앞두고(~2009.11.11)
  7. 2010/09/12 몽골 국립도서관 '한국학정보센터 : Window on KOREA' 설치 동영상 (1)
  8. 2010/09/07 [모니카(Mongolia KOICA) 일인인터뷰] 몽골 국립도서관의 한국학 전담 사서, 김희근 단원
  9. 2009/08/05 몽골 국립도서관 신축.이전 관련 세미나 : Planning the future of the Mongolian National Library (2009.07.07)
  10. 2009/08/05 END에서 AND로 (2009.07.19.)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주몽골 북한대사관)



예전엔 지금의 UN 몽골 본부가 북한 대사관이었다고 한다.
허나 몽골이 민주주의로 돌아서면서 이런저런 정치적인 영향으로 북한 대사관이 몽골에서 철회를 하였고, 그러다가 다시 몽골에 대사관을 설치하게 되면서 옮긴 자리가 바로 이곳이라고 들었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
몽골에 북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하거늘, 막상 이 이야기를 듣고 또 북한 대사관을 직접 보고나니 왠지모르게 모든 것들이 낯설게만 느껴졌었다. 조금은 분단의 현실을 잠시 더 느끼게 되었고 말이다.

2007.07. 현지훈련 당시, 팅기스 극장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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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KOICA MONGOLIA/아, 몽골(Mongolia)! | 2010/10/0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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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전기가 고픈 몽골, 이제는 일상

전기(전압)가 불안정한 몽골. 이렇듯 정전은 꽤나 잦다.
2년이란 시간이 참으로 무서운것이, 이젠 아무런 공고 없이 전기가 나가도 전혀 아무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정전이 되면 촛불을 키고, 또 하고있던 일들을 계속하되 최대한 빨리 마무리를 짓는다. 그 어떤 누구에게도 묻지도 않은채 그저 그려러니하고 마는 것이다. 씻어야 되면 랜턴으로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최대한 일찍 잠자리에 든다. 눈을 뜨면 밝은 아침이 와있길 기대하면서.
이렇듯 하루 이상 정전이되야 어찌된 일인지 경비아저씨나 관리인, 혹은 집주인에게 연락을 한다. 하지만 사실상 이러한 일상적인 정전 때문에 요란법석하게 연락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로 이렇듯 내가 인터넷을 하고 있는 것이,
1) 노트북 배터리의 잔량이 남아있었고,
2) 정전과 관계없는 무선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전용선을 이용한 인터넷을 사용했을땐 정전이 되면 자연스레 인터넷도 사용할 수가 없었는데, 무선 인터넷을 사용하니 정전이 되도 인터넷을 사용할 수가 있어 편하긴 편하다. 물론 속도는 매우 느리지만.

[사진1] 노트북 바탕화면. 나름 중립을 지키고자, 한 기관을 잊지 않고자
유엔거버넌스센터(UNPOG)쪽 활동도 열심히하고 싶은데, 오지라는 이 몽골에서 무언가 참여라는걸 한다는것 자체가 사실상 쉽지가 않다. 모든 활동이 국내(한국)에서 이뤄지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초기 '한국사에서 찾는 거버넌스의 사례'에 대한 리서치 활동만을-.- 한것 같다.
또한 무엇보다도 지금은 본격적인 KOICA 현장지원사업(프로젝트) 시작 직후인지라 KOICA에 대단한 집중을 해야만하기에(이쪽의 한국학정보센터 개관이 1년씩이나 미뤄진만큼 몹시도 시급한 상황인지라 확실한 우선순위를 정해야만 했었다) 지금은 KOICA에 전력질주를 할 때였다. 하지만 개관 후엔 한시름 덜 수 있으니까 그때를 고대하며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을 외치고 있다.
"확실하게 제대로 그리고 신속하게. 이제 그만 헤치워버리자."

[사진2] 정전이 되서 어두운 거실의 티테이블 한 켠
대부분 티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사용하거나 인터넷을 한다. TV를 좋아하지 않기에 TV는 전혀 시청하질 않고있는 상태. 참고로 이 티테이블은 침대 및 주방의 바(bar)와 더불어 내가 사랑하는 3대 장소 중 하나이다. 랭킹을 굳이 따지자면 2위. 역시 나에게 있어 침대에 대한 총애를 뛰어넘을 곳이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나는 (아침)수면욕이 대단한 사람이니까.

[사진3] 지난 8월 말, KOICA 정기평가때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들
작게 보이는 흑백 폴라로이드 사진. 이 사진의 필름이 단종 되었다고도 들었고, 그래서인지 비싸다고도 들었다. 찍을땐 몰랐는데 찍고나서 주위에서 무어라 무어라 나에게 말을 하니 갑자기 두 귀가 솔깃. 이럴때만 귀가 얇아지는것 같다.
그리고 작게 보이는 G-MOBILE 무선 인터넷 USB. 모 단원이 건강상의 문제로 SOS 메디컬 서비스를 이용, 한국에 일시귀국하게 되자 어찌어찌하다 요금은 내가 내고 당분간 빌려 쓰게 되었다. 모든 선 없이 인터넷을 하는 기분이란! 그런데 요금과 속도면에선 아니라는 생각이..

[사진4] 인스탁트 미니로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
한국에 가면 인스탁트 미니든 폴라로이드 사진기든 뭐든. 반드시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하나 사리라 다짐했다. DSLR과 새로운 똑딱이 디지털 카메라도 사고 싶고, 몽골에서는 로모를 구해서 로모를 사고 싶고. 정말이지 이래저래 물건 욕심만 늘고 있다. 꼭 필요하지 않는 이상 그다지 이런 것들에 집착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거늘.

2009.09.07. 전기가 없는 밤, 발로 사진을 찍고 한숨을 내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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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KOICA MONGOLIA/아, 몽골(Mongolia)! | 2010/10/0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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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 외곽 트래킹, 몽골 서민들의 생활

언젠가의 주말, KOICA 유숙소에 단원 몇명이 모여, 벼루고 벼루었던 UB의 외곽으로의 하이킹에 나섰었다.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걷다가 잠시 앉아서 쉬고, 또 준비한 과일들과 먹을거리들을 먹다가 또다시 걷고. 아마 한 5-6시간은 계속해 걷지 않았을까?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고 있는지, 또 우리가 서있는 이곳이 정확히 어디인지조차 모른채 말이다. 그리고 이쯤이면 걸을만큼 걸었다고 생각되었을때, 미크로(한국의 봉고차로, 몽골에선 마을버스식의 대중교통수단)를 타고 UB의 중심부로 돌아왔다. 몽골에서 최고의 중식집이라 소문난 곳에서 치룬 뒷풀이가 그날따라 또 어찌나 맛이 있던지.




사진은 도중에 만난 아이들과 그곳의 사람들. 그야말로 평범한 보통 시민들의 생활이다.
높은 고층빌딩이며 한국만큼 혹은 한국보다도 더 럭셔리한 곳들이 존재하기도 하는 울란바타르(Ulaanbaatar; UB, 몽골의 수도)지만, 이렇듯 한 30여분만 걸어나가도 시내 중심부와는 전혀 다른 풍경들과, 그야말로 지극히 평범하다 할 수 있는 보통 몽골 서민의 생활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 혹은 하샤라고 불리우는 나무집에 울타리를 쳐서 사는데, 겨울엔 난방이 되질 않으니 갈탄으로 불을 지펴 난방을 한다. 그러나 한 겨울 한파가 극심히 지속될땐 영하 40-50도까지도 떨어지는 곳이거늘 이런 식의 생활들이 과연 괜찮으련지 아직까지도 의문이라면 의문. 다행히 왠만해선 전기는 들어오지만 더러는 들어오지 않는 곳들도 있고, 또 도시 중심부 자체도 상하수도 시설이 미비하다보니 당연히 이런 외곽까지 상하수도 시설이 잘 갖춰져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고. 더불어 큰 도로를 제외하고는 마을 전체가 비포장 길이며, 마을에 하나 있을까말까한 우물물을 마을 사람 모두가 힘겹게 길러다 사용하는건 기본이다. 이런 환경의 격차가 같은 나라 같은 지역에 그것도 도보로 20-30분 이내 존재를 한다.
몽골은 그런곳이다. 이런 빡빡하고도 힘겨운 서민들의 생활을 잘 알기에 한편으론 마음이 무겁고도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이내 난 희망을 갖기로 했다. 언젠가는 이 사람들도 제대로 갖춰진 곳에서 살아갈 수가 있을것이다. 그만큼 몽골은 빨리 변화하고 있고, 그만큼 발전가능성이 있는 나라이니까 말이다.




[추가] 트래킹을 하는 모습들, 그리고 이곳의 풍경.
도중에 KOICA가 진행한 프로젝트 사업물을 발견하여 반가운 마음에 기념사진도 찰칵.
다들 몽골에서 보낸 시간이 짧진 않아서인지 이런 곳에서의 목적지 없는 트래킹도 전혀 낯설거나 무섭진 않았다. 오히려 노래를 부르며 걷거나, 동네 아이들과 장난을 치기도.

2008.05. 몽골, 울란바타르(UB) 외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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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KOICA MONGOLIA/아, 몽골(Mongolia)! | 2010/10/0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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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초대. 행복한 가정으로의 방문
- Tuvshintungalag(틉신통가락; 틉셔; 통가) 사서와의 인연 -


2007년 8월 말, 한달 남짓한 KOICA 몽골사무소의 현지적응훈련이 끝나갈때쯤 일주일 정도를 기관측 사람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기관으로 출근도 하는 등 OJT(On the Job Training) 기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때 나는 사진 속에 있는 열람서비스과의 Tuvshintungalag 사서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되었으니..

치안에 문제가 있는 15구역에서 홈스테이를 했었기에 Tuvshintungalag 사서는 노심초사 나의 안전에 대해 상당히 예민할 정도로 신경을 썼었고, 거실을 포함한 2개의 룸들 중 룸 하나를 나에게 내어주고는 자신을 포함한 자신의 여동생과 여동생의 친구, 그 친구의 갓난아이까지 가족 전체가 한 방에서 일주일간 지내는 등 정말이지 내가 몸들바를 모를 정도로 편의를 바주었었다.
그러다 홈스테이가 끝나갈때쯤 알게 된 것이, 사실 그녀는 그집에 살지 않았었고, 나를 위해 자신의 여동생에게 부탁을 해 일주일간 그녀의 집에서 지냈던 것이었다. Tuvshintungalag 사서가 살던 곳은 몽골의 전통가옥인 게르(Ger). 사실상 몽골인들의 대다수는 어런소츠(대략 아파트쯤으로 보도록 하자) 등의 건물에서 살지를 않고,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나 나무로 만든 하샤라는 집에서 생활을 하는데, 그녀 또한 상하수도 시설도 없고 전기도 간신히 들어오던 곳에서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몽골은 동거문화가 자유로우며, 결혼 전 동거가 흠이 되지 않는 곳이다). 따라서 나는 항상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너무나도 고마운 마음에 연신 어찌할 바를 몰라 했었는데, 미리 언질을 해놓지는 않지만 나중에 KOICA 측에서 홈스테이 비용을 주기때문에 괜찮다고는 한들, 사실상 내 마음은 편해질래야 편해질 수가 없었다. 이렇듯 나 하나 때문에 가족 전체가 불편한건 아닌지 늘상 신경이 쓰였고 마음 또한 불편했었지만, 한사코 괜찮다고 하는 나를 편하게 지내라며 방을 내어주던 그들에게 내가 불편하다고해서 아직 몽골 생활에 익숙치 않은 내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것도 이들에겐 꽤나 큰 걱정거리가 되겠고, 이들이 늘상 괜찮다고 하는대도 끝까지 거절을 하는건 후한 손님접대의 문화가 있는 몽골에서 과연 결례인가 아닌가라는 문제를 두고 생각해보았을때 그들에게 있어선 '우리의 손님접대가 후하지 않아서 그런것이다'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싶어 어찌되었든 이곳에서 가족들과 즐겁게 잘 지내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동기 단원들의 송별식을 제외하고는 홈스테이 기간 모두를 Tuvshintungalag 사서의 집에서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했다. 아직 양고기에 익숙치 않았던 내가 군말 없이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너거태슐(양고기 외 야채 등을 넣고 끓인 국)을 네그릇씩이나 비워가면서 말이다.

그러다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국립중앙도서관의 '(아시아)문화동반자사업'에 지원하게 된 Tuvshintungalag 사서를 도와주게 되면서 더욱더 친해지게 되었는데, 그녀의 한국어 학습을 위해 해외인력송출센터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던 원대한 단원에게 부탁을 해 한국으로 가기전 잠깐이나마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녀가 한국에 가 있는 약 1여년 가까이를 이메일을 주소 받으며 그녀의 연수를 도와주게 되었다.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된 '틉셔(Tuvshintungalag)-희그네(희근이)-대한박샤(대한 선생님)'의 라인. Tuvshintungalag 사서가 몽골로 돌아오고, 또 그녀의 딸인 턱토를 출산하게 되고, 더불어 원대한 단원의 귀국이 초읽기가 되면서 정식으로 초대를 받게 된 그녀의 집. 우리가 좋아한다는 감자 호쇼르(몽골의 전통 음식인 튀김 만두. 원래는 살짝 양념된 양고기가 들어간다)며 몽골의 전통 음식, 또 고비 알타이의 지역명물인 백포도주까지 한상 거하게 차려놓고는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이때 찍은 사진들을 이렇듯 바라보고 있노라면,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복한 미소들에 아직까지도 기분이 한껏 좋아지는데, 아직 사진을 찍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한껏 환한 웃음을 짓다가도 사진만 찍으면 굳어지는 그들 내외를 보며 원대한 단원과 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던 기억도 난다.

그야말로 고마운 초대, 행복한 가정으로의 방문.

이렇듯 이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하고, 또 소중한 추억들을 한껏 만들었기에 너무나 다행이라는, 행복하다는 생각을 아직까지도 하곤 한다.

이제는 3년전 처음 만났던 그때와는 다르게 Tuvshintungalag은 한 남자의 부인이 되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또한 내가 남기고 온 몽골 국립도서관 한국학정보센터의 현지 담당 사서가 되어 새로운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다시 그녀를 만났을때, 과연 우리는 서로 어떤 모습일까?
아직까지도 주고 받는 소소한 일상 속의 이메일들. 그녀와 내가 주고 받은 이메일에서 이미 지나간 조금은 잊혀졌던 옛 추억도 잠시 되살려 보며, 잊지 않고 연락을 해주는게 그저 고맙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 소소한 이메일들이 1년 2년 3년 그리고 10년쯤 쌓이면, 이것도 하나의 멋진 스토리이자 깊은 인연이란게 되겠지?

"저도 보고싶습니다. 그리고 고마워요, 통가. 멋진 한국학 사서로써의 모습을 기대할께요."



Sain baina uu
higen shi ajil sain uu
sonin yu bna daa sanaj bn auu higen shi manaihan namar bolohoor soyolin ajiltni odor geed hodoo yawdag bas zondoo humuus yawdag duuldag ter maani boloh geed margaash hodoo yawan chi sain yu bna daa mongol helee martaagui biz dee martaj bolohgui shuu bi chamaig ih sanaj bna aa
bid tsomooroo sain bgaa Za daraa uulziya hairtai shuu baka
- Sep 10, 2010


안녕하세요
희근씨 하고 있는 일은 잘 되고 있나요?
새로운 소식은 있어요? 희근씨 우리는 가을이 오면 '문화예술인들의 날' 행사로 지방(유원지)에 가곤해요(참고: 몽골 교육문화과학부 산하 문화예술과 소속의 도서관, 박물관, 국립극장 등의 소속인들이 모두 함께하는 문화체육행사). 많은 사람들이 가구요, 우리들(몽골 국립도서관 사람들) 또한 내일 이 행사에 참가한답니다. 희근씨는 잘 지내요? 몽골어는 잊지 않았지요?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많이 보고 싶어요.
턱토와 저는 잘 지내요. 그럼 다음번에 만나요. 사랑합니다. 안녕.
- 2010년 9월 10일




[사진] 2009.8.22. 울란바타르, 바양 호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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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KOICA MONGOLIA/KOICA/사서/몽골 | 2010/10/0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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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국립도서관에 한국자료실 생겼다
12일 한국·몽골 국립도서관 간 MOU도 체결



몽골에서도 한국과 관련한 자료를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게 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관장 모철민)은 12일 몽골국립도서관 1층에 ‘한국자료실-WINDOW on KOREA’를 개실했다.
몽골국립도서관 한국자료실 개실 기념행사에는 모철민 국립중앙도서관장과 아킴 몽골국립도서관장을 비롯하여 정일 주몽골 한국대사, 몽골 국립교육문화부 및 한국국제협력단(KOICA)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하여 몽골 국민의 한국에 대한 큰 관심을 읽을 수 있었다.
한국의 역사·문화 등에 대한 올바른 이해 증진과 국가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주제와 형태를 가진 한국 관련 도서자료 약 3000여 책과 서가, PC 등을 제공하고 있다.
2007년부터 현재까지 태국 국립도서관, 베트남 국립도서관, 러시아 국립도서관 등 6개소를 설치하여 해당 국가 국민이 보다 친근하고 쉽게 한국을 이해하는 창구로 운영중이다.
한국자료실은 몽골국립도서관 내 1층에 위치하고 39평방미터의 규모로 설치되었다. 여기에는 국립중앙도서관이 지원한 약 3200여 책의 한국관련 도서 및 비도서 자료, KOICA가 지원한 PC 및 서가, 책상 등을 갖추고 있다.
더불어 지난 5월에 개관한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 ‘디브러리 포털’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약 1억2000만 건에 달하는 디지털콘텐츠와 한국관련 자료에 신속하고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국립중앙도서관은 몽골국립도서관 한국자료실에 2013년까지 매년 200여 점의 한국관련 자료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향후에는 폴란드 주립도서관, 인도네시아 국립도서관, 카자흐스탄 국립아카데미 도서관 등 3개소에도 한국자료실을 설치할 계획이다.
한편 이에 앞서 한국과 몽골 양국 국립도서관장은 호혜평등의 원칙에 입각하여 양 기관간의 우호관계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MOU)에 서명하였다. 이를 통해 두 도서관은 정보 및 경험의 공유와 인적교류, 출판물의 상호교환, 도서관발전 프로그램의 공동개발 및 교환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세계일보 2009.11.1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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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ulaan.net BlogIcon 근사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업로드해야할 것들은 많은데 이게 참 쉽지가 않다. 압박 아닌 압박을 받고 있어서 그런가. 예, 예 그래도 요샌 꾸준히 업데이트 하고 있잖아요. 그것도 원하시는 것들로.

    2010/10/01 10:46



한 권의 책이 서가에 꽂히기까지 거쳐야되는 그 과정들을 다들 아는지?
당시 나는 한국 국립중앙도서관과 KOICA, KOFIC 등 굵직한 세건의 프로젝트들을 총괄하고 있었고, 하물며 자료 한 권 한 권의 정리까지도 모두 다 떠맡아야만했던 상황이었다. 진정 너무나도 바빠서 9시까지의 야근과 주말근무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고, 다친 다리를 절뚝거리며 하루에도 서너건의 외근을 다녀야만했었다.

1) 자료 하나당 날인(스탬핑)만 3번
2) 자료 등록 점검에
3) 자료 분류
4) 등록번호(바코드) 라벨 부착
5) 등록번호 라벨 위 키퍼(보호 필름) 부착
6) 분류 색띠 부착
7) 청구기호 라벨 부착
8) 다시 이 위에키퍼 부착
9) 감응테이프(도서 분실방지택) 부착
10) 서가에 배가

이런 작업들을 해야하는 자료가 최소 3,500개 이상.

도서관 사서들과 KOICA 단원 외 도서관과 책에 애착이 있는 한인분이 모여 작업의 작업을 계속.
바쁜 선임덕에 후임들도 바쁘고, 바쁜 친구를 둔 덕에 측근들 마저도 바빴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렵사리 시간을 내어 도와주신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많이 지체가 되었었던 사업인지라 개인적으론 마음 고생이 수년간 극심했었는데, 개관식 직전에도 아니나다를까 사건이 터져 나를 마지막까지도 넉다운 시켰었으니, 다름이 아닌 전 세계적인 조류독감으로 인한 대공황상태.
몽골도 예외일수는 없어 마을과 마을, 도시와 도시로의 이동이 엄격하게 금지되었었고, 9시 이후의 모든 고급 레스토랑 및 일반 음식점 외 주류판매점 등도 문을 닫아야만 했다. 하물며 모든 몽골 내 극장들을 포함하여 일정 수 이상의 사람들이 모이는 각종 단체모임 외 회의, 집회 등도 전면적으로 금지. 초중고교의 휴교령은 당연히 말 할 필요가 없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도서관만큼은 정부측으로부터 휴관령이 떨어지지가 않았었는데, 아니나다를까 개관식을 약 4-5일 앞두고 임시폐쇄령이 떨어져 모두를 패닉상태로 만들었었다.
성대하게 준비했던 한국학정보센터의 개관식. 그러나 맙소사, 그야말로 아예 취소될 위기. 이 일로 아킴 관장님과 뱜바수렝 부관장님께서 몽골 교육문화과학부에 얼마나 전화를 하시고 또 직접 찾아가 사정 설명을 하셨는지, 나또한 다급히 한국 국립중앙도서관측에 이 소식을 전하며 얼마나 가슴을 졸였었는지 아마 모두들 상상도 못할거다.

우여곡절 끝에 예정대로 개관식은 진행하되, 소규모로 진행하라는 몽골 교육문화과학부의 명령(권유도 아닌 명령이었다). 이에 모두가 합의를 한 뒤, 이윽고 몽골행 비행기에 탑승하신 용감한 한국 국립중앙도서관의 모철민 관장님, 문시영 부장님, 강지태 선생님. 조류독감으로 몽골 전역이 폐쇄되고 있는 마당에 몽골로 오셨으니 오시기전에 얼마나 걱정을 하셨을지.
입국 당일 주몽골 대한민국대사관의 정일 대사님, 임희순 영사님 외 몽골 국립도서관의 뱜바수렝 부관장님, 해외교류담당 뭉흐치멕과 함께 칭기스한 국제공항으로 마중을 나갔었고, 곧장 숙소인 바양골 호텔로 모셔드린 뒤 아킴 관장님과의 저녁 만찬으로 분주한 첫 날을 보냈었다.

한-몽 통역에 메달렸던 나와, 영-몽 통역에 메달렸던 뭉흐치멕. 뭉흐치멕과 일로 부딪히는건 사실상 처음이었는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꽤나 프로근성이 있어 같이 하는 내내 큰 도움과 의지가 되었었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챙겨가며 힘들지만 즐겁게 임했었는데 둘이서 2년이 넘게 나누지 못한 온갖 잡담들을 그 몇 일 내내 다 나누었던것 같다. 비록 최고급 레스토랑에서의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제대로 먹지를 못했었지만, 또 모두와 같이 있는 시간만큼은 온통 모두의 대화에 귀를 귀울여 몇 시간이고 최고의 초집중상태로 있어야했기에 피곤하기도 굉장히 피곤했었지만 그래도 어찌되었든 쓰러지지 않을만큼 참을만은 했었다. 아니, 참아야만 했었다.
특히 나의 경운, 지금 이 순간을 위해 2년이란 시간이 넘게 이곳에서 그 얼마나 깨지고 인내하며 버티고 또 버티었던건지 다시 생각조차 하기가 싫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렇듯 나 스스로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건, 나는 오랜시간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수십번을 생각해도 지금 이곳에 지금 이 시기에 반드시 해야만하는 사업이었고, 또 여러 기관들로부터 서포트를 약속 받아 가능성이 무한대인 상태였었고, 그만큼 오랜기간 공을 들여 준비를 하며 확신의 확신을 거듭했었던 일들이었기에 중도포기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이상하리만큼 수차례 일들이 꼬여 힘든 고비가 있기는 있었지만 끝까지 나를 믿고 지지해준 분들이 있었기에 나에게도 굉장히 절실했었고, 그만큼 지독히도 이 사업에 집착 아닌 집착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과의 믿음과 스스로가 가진 그 확신이라는 것. 난생 처음으로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무기이고, 또 그 어떠한 일의 크나 큰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몸소 체험했었다.



아무튼 밤 9시가 넘자 손님들을 호텔로 다시 모셔다드리며 나는 다시금 도서관으로 향했다. 바로 그 다음날이 개관식이었기 때문. 기관에서 해준다던 암막장치(커텐)가 개관식 전날 오후까지도 설치가 되지를 않았던지라 마지막으로 체크를 하러 늦은밤 부랴부랴 기관으로 향했던것.
아무도 없던 늦은 시간의 도서관, 모두가 퇴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암막 장치 작업을 직접 보고 계시던 경비 아저씨와 나의 코워커인 보양히식 사서를 보고 난 이내 울컥해버렸었다. 개관식 전날까지도 기관측에서 늦장을 부려 속이 상할만큼 상했다는 점과 그래도 이 늦은 시간까지도 이 일을 도와 작업을 해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에서 한껏 감동을 받아버린 것.
나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코워커인 보양히식 사서는 내가 어디에 있던, 무엇을 하던 평생 소중한 인연의 끈을 놓고싶지 않은 나의 지인들중 하나로, 몽골에선 같은 도서관의 동료이자 언니, 그리고 때로는 어머니같은 존재로 나를 진심으로 따뜻하게 잘 보살펴주었었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하던 사람이자 내가 하던 모든 일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지켜보았었던 사람이었기에 그 날 이미 내가 몇 일 내내 잠도 제대로 자지못했다는걸 알고 있었고,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몇 달 내내 항상 이곳저곳을 분주하게 다닐 수 밖에 없었다는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지라, 이렇듯 고집센 나를 억지로 달래고 달래 집으로 보내려 다독거리기 시작했다. 여기는 우리가 책임지고 볼테니 중요한 내일을 위해 집에서 잠을 자라고, 정말 오늘만큼은 쉬어야만한다며 나를 꼭 끌어 안고 달래는데, 어찌 내가 울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집으로 향하던 중에 알게된 한국 국립중앙도서관측에서 급하게 온 메일. 다시 무언가를 작업하고 체크해야만 하는 상황. 유숙소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우리 동갑내기 아라와 지혜, 준섭이의 부름에 잠시 응했지만, 이내 그들을 살포시 버리고 그곳에서 급한 일들을 처리해야만 하는 상황. 커피 한 잔에 힘을 내고, 그들의 말 한마디에 힘을 내고, 또 잠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정이 되어서야 집으로 향해 다음 날을 기다렸다.

드디어 내일이었다.
그렇다.
이곳 몽골에서 수년을 기다린 그 날이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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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KOICA MONGOLIA/몽골 국립도서관, 도서관계 | 2010/09/30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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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국립도서관 '한국학정보센터 : Window on KOREA' 설치 동영상
2008년 1월부터 2009년 11월 10일까지의 기록들.
몽골 국립도서관의 '한국학정보센터 : Window on KOREA' 설치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동영상으로 남긴 자료. 본 동영상은 한국학정보센터 프로젝트의 최대 후원자였던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으로 송부한 최종 결과보고서(자료물) 중 하나임.

o. 동영상 내용
한국학정보센터 : Window on KOREA의 룸 공사 및 인테리어
소장 자료 배송 및 검수, 정리 작업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의 관계자 내방 및 업무협의, 중간보고
BBK(러시아분류법, 도서관서적해제의 분류) 번역 및 소장 자료 분류
한국국제협력단(KOICA) 박대원 이사장(총재) 내방
대한민국 국회 해외원조사업 시찰 관련 박진, 홍정욱 의원 내방
서가 및 각종 가구 외 컴퓨터 외의 기자재, 사인시스템-현판의 설치 등
+ 중간에 박스를 들고 웃고 있는 나와, 몽골 국립도서관으로 파견된 두 명의 후임들, 그리고 작업을 도와준 KOICA 단원들과 몽골 국립도서관의 직원들, 고생이 많았던 가구공장의 사람들.

o. 프로젝트/후원기관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
주몽골 대한민국대사관
몽골 국립도서관
몽골 교육문화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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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KOICA MONGOLIA/KOICA/사서/몽골 | 2010/09/12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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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 국립도서관 '한국학정보센터 : Window on KOREA'의 개관식 및 완성된 자료실의 사진은 다음번에 업로드.

    2010/09/12 23:09

[모니카(Mongolia KOICA) 일인인터뷰] 2009.10.26.
몽골 국립도서관의 한국학 전담 사서, 김희근 단원

11월 12일. 몽골 국립도서관 한국 자료실이 개관합니다.
2008년 초부터 지금까지도 현재진행 중인, 우여곡절 한국 자료실 설치의 담당자,
김희근 단원을 만나볼까요?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A. 네, 안녕하세요. 앞선 소개에서처럼 몽골에서 가장 체류기간이 긴, KOICA 최고 고참 35기 사서분야 김희근 단원입니다.
몽골 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고요.


Q. KOICA 최고 고참이라. 이번 11월에 오실 50기 분들과는 자그마치 열 다섯 기수나 차이가 나네요. 언제 몽골에 오신 건가요?

A. 2007년 7월에 몽골에 입국했습니다. 지금 2년 3개월째 됐구요, 2010년 1월, 드디어 길고 긴 단원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합니다.


Q. 2010년 초겨울까지 치면, 몽골의 겨울을 무려 네 번이나 보시고 가시는 셈이네요. 우리 일반 단원들의 경우, 2년 근무가 일반적인데, 6개월 연장을 하셨어요. 연장하시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A. 제가 담당하고 있던 한국자료실 설치 사업이 마무리가 되지 않아서였어요.
일단 여기 도서관 내에서 제 업무를 바로 도맡아 처리를 할 인력이 없었고, 제 후임 파견도 확정이 되지 않은 상태였죠. KOICA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임기 정리를 할 참에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이하 국.중.도) 측에서 다시 연락이 왔구요, 무엇보다도 관장님과 부관장님께서 부탁을 몇 번이고 하셨었어요. 저 스스로도 마음이 영 편하지는 않았던 터라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 사업은 이곳에 꼭 필요한 것이었고, 지금 당장 마무리를 지어야 했으며, 마무리할 거라면 제가 맡아서 하는 게 최선이었기에 다른 대책이 나오질 않았어요. 이왕 여기까지 와서 지금껏 고생했던 거 그럼 한 번 더 가보자라고 마음 먹고 연장 신청을 했는데 결국 본부 승인이 나더군요.


Q. 이래저래 우여곡절이 많았던 일이네요. 이 한국자료실에 관해서는 조금 있다가 더 구체적으로 인터뷰할게요. 지금 계신 몽골 국립도서관은 어떤 곳인가요?

A. 제가 파견되어 있는 몽골 국립도서관(The National Library of Mongolia)은 1921년 설립되었어요. 현재는 몽골 교육문화과학부 문화예술과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국가대표 도서관이다 보니 소장하고 있는 자료의 수나 규모적인 면에선 단연 몽골 내에서 최고를 자랑합니다. 한국학자료 약 7천 여권을 포함하여 총 300만권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어요. 또한 쿠웨이트 정부의 지원으로 2015년경 도서관 건물을 신축하여 이전할 계획에 있으며, 이미 작년 6월경 공식적인 착공식이 있었답니다.



또한 몽골 국립도서관 2층에는 매우 진귀한 각종 고서(古書)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Museum of Rare and Valuable Books)'이 있어요. 이 박물관에는 몽골의 9가지 보물들과 금, 은으로 쓰여진 책들, 몽골 문자기념물 외 각종 고(古)역사서 등이 소장되어 있답니다.


Q. 기관에서는 어떤 업무들을 하고 계신가요?

A. 여러 가지가 있는데,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겠네요.

첫 번째로 한국학 전담사서로서 '관내 소장 한국학자료의 분류, 등록, 정리' 등의 업무가 있겠고,
두 번째로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 및 KOICA 현장지원사업으로 진행 중인 '한국자료실(한국학정보센터)의 설치' 사업입니다.
또한 마지막으로 한국학자료에 대한 '정보서비스' 및 특정이용자들을 위한 몽골 국립도서관 내의 각종 정보서비스 제공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관내 한국학과 관련된 모든 업무들을 총괄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Q. 우리 코이카 단원들 중에도 국립도서관을 이용하고 싶은데, 아직 방법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요. 어떻게 하면 이용할 수 있을까요?

A. 몽골 국립도서관의 자료열람이나 열람실을 이용하기 위해선 이 곳의 대출증을 소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대출증은 외국인 기준으로, 몽골에 거주하고 있음과 동시에 확실한 신분보장이 되는 분들만이 발급을 받으실 수가 있습니다. 발급 받으러 오실 때, 다음의 서류와 신분증을 챙겨오시면 됩니다.

o 여권, 증명사진 1장, KOICA 단원증
o 4천T (2천T은 카드 발급비, 2천T은 1년 이용료 : 1년 후 갱신 필요)


Q. 몽골의 도서관들은 한국도서관과는 어떤 점이 다른지도 궁금해지는데요, 질문 몇 가지 드릴게요.

질문 하나: 몽골 도서관에서는 컴퓨터로 도서관에 소장된 자료들을 검색할 수 있다?, 없다?
A. 정답은 '없다'입니다.
몽골에는 아직 '도서전산화'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당연히 웹(인터넷)을 통한 검색도 불가능하며, 현재 가동 중인 도서프로그램 또한 아주 기초적인 것들만을 겨우 지원하는 수준이라 이제는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목록카드'란 것을 비치해 동시 사용 중 입니다. 사서들의 업무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수작업일 수 밖에 없어 매우 고되죠. 도서관에 소장된 자료들의 서지 정보를 등록하는 등록대장마저 아직 필사로 쓰여지고 있거든요.

질문 둘: 몽골 도서관에서는 이용자가 서가에 가서 책을 직접 꺼내볼 수 있다?, 없다?
A. 정답은 '없다'입니다.
이를 '폐가식 시스템'이라고 하는데요, 이용자가 실물자료가 비치된 서가에 접근 할 수 없는 시스템을 말해요. 쉽게 말해 서가와 열람실이 따로 분리되어 운영되는 것이죠. 특히 국립도서관의 경우, 학술자료에 비중이 실려 있고 값비싼 고서나 귀중본 등이 많기에 자료의 분실이나 훼손에 무척 민감한 편입니다. 개가식시스템으로(폐가식시스템의 반대) 전환을 하고 싶어도 분실도난시스템 등 이에 들어가는 비용이라든가 당장 문제시 되는 것들이 많아 잠정 보류상태입니다. 하지만 도서관 신축-이전 시 전면적인 개가식시스템이 도입 되어질 예정이며, 현재 설치중인 한국자료실은 시범모델로 몽골 국립도서관에서 첫 번째 개가식시스템으로 운영될 것입니다.


Q. 한국 자료실이 몽골 국립도서관에서의 첫 번째 개가식 시스템이 된다니 기대되네요. 우리나라 도서관과 다른 점들 때문에 업무도 한층 더 많으셨을 것 같아요. 기관 업무 외에 취미 활동은 어떤 것을 하셨나요?

A. 말씀하셨듯 기관 일에 매여있느라,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
개인적인 시간을 쪼개서 한 것이라곤 몽골어 과외, 몽골 비칙(몽골 전통문자) 과외, 그리고 기타(Guitar) 교습이 전부네요. 하지만 기타는 한 수업 5번 정도에 연습도 제대로 하질 않아 말도 안 되는 실력입니다. 따라서 이건 자신 있게 했다고는 절대 말 못하겠고, 대신에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압도적이고도 저 스스로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건, 바로 '여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흡스골, 고비, 다르항, 에르덴트, 그리고 힌티에 그 유명한 4,500km가 넘는 몽골 북서여행까지. 지금 생각해보니 참 열심히도 다닌 것 같네요.



또 원체 이것저것 호기심이 많은 데다 무언가를 보러 다니는 걸 좋아해서 오페라든, 발레든, 전통공연이든, 째즈 혹은 락 콘서트든 여유가 되는 한 공연을 많이 찾아 다닌 것 같습니다.




Q. 여행이나 공연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 더 특별해지는 것 같은데, 혹시 애인이 있으신가요?

A. 난감한 질문이네요.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한국에 있는 친구와 '누가 먼저 솔로 탈출을 하나.'를 두고 내기를 하고 있습니다. 비록 전 지금 삼천포로 퐁당 빠져버렸습니다만.


Q. 하하. 내년 봄이 오기 전에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좋으세요?

A. 예전엔 느낌이 통하고, 믿을 수 있고, 제가 존경할 수 있는 그런 어른스러운 사람이 좋았어요. 물론 지금도 그런 사람이 좋긴 한데, 그래도 최근엔 함께 있으면 즐겁고 마음이 설레는, 또 따뜻해지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네요.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곧잘 만나는 편이기는 한데, 의외로 제가 친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에게 꽤나 무관심한 편이에요. 남자든 여자든 시간을 내서 몇 번이고 만나며, 또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그래서인지 적극적으로 몇 번이고 대시를 하는 사람에게 반응을 보이고 관심을 보입니다. 'ter yo ve?(쟤 뭐야?)'라는 느낌이랄까?




Q.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 것 같으세요?

A. 음_ 이상주의자에 완벽주의자요.
현실을 직시하고 있거늘, 아이러니하게도 추구하는 것은 이상적인 그 무엇입니다. 그래서 늘 딜레마에 빠져있어요.
그리고 완벽주의.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제가 참 평상시엔 바보스러움 그 자체라 도대체가 답이 안 나오는데, 그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하면 돌변을 해서 무섭고도 어렵고, 매우 깐깐하며 실수를 용서치 않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듯한 그런 사람이 되어버리곤 합니다. 만족스러운 결과물들이 나오기까지 제 자신을 극한까지 밀어붙이기에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어버리네요.


Q. 한국자료실 설치 사업도 완벽하게 잘 해내고 계실 것 같아서 개관일이 손꼽아 기다려지네요. 그런데, 한국자료실 설치 사업이 어떻게 해서 진행되었는지 알고 싶네요.



A.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의 해외도서관 한국자료실 설치 사업으로 시작'
일단 시작은 국.중.도의 '해외도서관 한국자료실 설치 사업'으로 시작했어요. 2008년 러시아 국립도서관, 중국 상해도서관과 함께 저희 몽골 국립도서관이 국.중.도의 해외사업으로 선정되었죠. 그런데 사실상 몽골이 개발도상국인데다 몽골 국립도서관의 연간 예산은 한국으로 따지자면 가히 비참한 수준이거든요. 국.중.도의 지원만으론 사실상 제대로 된 한국자료실 개관이 힘들었습니다.

'KOICA의 현장지원사업까지 투입'
그래서 KOICA의 현장지원사업(프로젝트)을 이곳에 투입하기로 마음먹게 된 거죠. 두 프로젝트를 통합해서 진행하려고 했는데, 양측의 의견조율이 잘 안 되서 각각 진행하게 되었구요.

'프로젝트가 다른 곳으로 넘어갈 뻔, 한국의 외환 위기'
그러다 갑작스레 저희 기관과 국.중.도.도 모르게 '어린이의 책 왕궁(어린이 도서관)'으로 프로젝트가 넘어갈 뻔한 알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죠. 그렇게 마음고생 서너 달. 그리고 KOICA 프로젝트의 본부 승인을 기다리고 있던 중에, 한국의 외환위기가 왔어요. 전세계 KOICA의 모든 사업이 순식간에 올 스톱(딜레이)된 거죠. 그렇게 또 마음고생을 수개월 해야만 했습니다. KOICA 사업이 재기되기를 무작정 기다릴 수가 없어 기관 측에 이야기를 했는데도 나중에 되든 안 되든 사업이 재기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정말 그야말로 조용히 기다리시더군요. 그러다 사업이 다시 재개되고, 연장을 하게 되고, 드디어 프로젝트도 본부 승인을 받아 자금이 입금되면서 본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이제 한국 자료실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A. 개관을 앞두고 있는 한국자료실은 해외에서 한국에 대해 알고자 하는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기 위해서 만들어졌어요. 곧, 한국학을 전공하는 몽골 내 학생, 교원, 석학 외 기타 현지인들 및 재외동포 등이 수여대상자이구요. 몽골의 경우, 정부산하 한국문화원이 아직 설치되지 않은지라 본 사업의 중요도나 필요성 자체가 조금 더 높아졌구요.



한국자료실은 39 제곱미터로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모든 룸들이 과포화상태였기 때문에 이전에 인터넷 및 연속간행물열람실로 쓰이던 공간을 억지로 빼내서 준 것이거든요. 공간은 작은데 소장될 자료의 수는 많아 높은 천장을 이용해 서가를 높게 제작하고 서가 계단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주어진 공간 내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얻어내고자 했죠.
한국자료실에 소장되는 자료들은 전 주제영역에서 약 3,500 여권 이상의 신간도서들로, 금액으로는 약 5천 5백만원 정도가 됩니다. 이와는 별도로 동양서고에 기존의 한국학 자료들이 있구요. 이 자료들은 80%가 1950년대 북한자료들로 한국학 자료에 속해지되 별도로 동양서고에 보관되어질 예정입니다.
결론적으로 한국자료실에 총 투여되어지는 금액을 대충 계산해보자면, 약 9천만원. 거의 1억원에 가까워집니다. 다소 부담스럽네요.


Q. 이제 3개월 후면 가시게 될 텐데, 한국에서도 이 쪽으로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A. 사실 다른 곳을 몇 번 기웃거렸었어요. 그때마다 이 '도서관계'란 늪에서 너무나 좋은 일들이 밀려들어와 벗어나지를 못했었어요. 딱히 이 쪽 일을 평생 해야겠다는 의욕이 크지가 않아서 아직까지 고민이 되고는 있지만, 말로는 잘 표현하지 못하는 그 무언가가 이곳에 저를 잡아두고 있다고 느끼고는 있습니다. 그래서 걱정과 고민을 함께 안고, '이 길이 제가 갈 길이구나.'라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버렸네요.



단지, 지금의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사업을 제 전공과 접목하여 앞으로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도 있어요. 하지만 GO 소속이든 NGO 소속이든 도서관이나 독서교육 쪽으로의 여러 사업 자체가 황폐함 그 자체인지라 의욕이 생기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아직까진 실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다른 가능성들도 있죠. 동아시아학 주제전문사서나 한국학 주제전문사서로 나갈 수도 있고, 일반 사서직으로 취업을 할 수도 있고. 하지만 일단 귀국 후엔 계획대로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유엔거버넌스센터(UNPOG; United Nations Project Office on Governance)의 청년홍보위원 1기로 지난 6월 선발이 되었는데, 해외 거주에 이쪽의 한국자료실 개관 프로젝트로 UNPOG 활동에는 참여를 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쪽이 마무리가 되는대로 남은 임기 동안 그쪽의 활동도 잘 해내고 싶습니다.


Q. 활동하시면서 가장 기뻤을 때는 언제인가요?

A. 아마 지금이 아닌가 싶습니다. 2년간 항상 분주했지만, 결과물들이 보이지 않아서 잔뜩 의기소침해져 있었거든요. 이제서야 하나씩 나오는 결과물들에 참 뿌듯하네요.
그리고 다행히 전 기관 사람들과도 사이가 좋은 편인데, 이런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쳐있을 때 힘내라고 따뜻하게 말씀해주셔서 고맙고, 그저 고맙다고 항상 말씀해주셔서 고맙고, 하물며 끼니 꼭 챙겨 먹으라며 화내고 잔소리 해주시는 것 또한 너무나 고맙습니다.


Q. 프로젝트 사업 때문에 연장을 하셨지만, 기본적으로 몽골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그것도 어려웠을 것 같아요. 몽골의 어떤 점이 좋으신가요?

A. 알고 보면 이국적인 것들이 참 많아요. 전통적인 문화나, 각 소수부족들의 문화적 차이라던가, 라마교나 샤머니즘도 그렇고 이래저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 의외로 꽤 많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이런 곳이 또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 그대로의 자연으로 존재하고 있는 곳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한 나라에서 각각의 지역이 전혀 다른 맛으로 찾아온다는 것도 재밌고 무척이나 신기하고 신선합니다. 고비의 모래사막이 있는가 하면 바다와도 같은 흡스골이 있고, 또 동쪽마을 힌티의 드넓은 평원이 있는가 하면 서쪽마을 알타이 산맥의 드높은 만년설 타운복드가 있고 말입니다.


Q. 사서 분야이시면, 책을 굉장히 좋아하고 많이 읽으실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실제로는 어떠신가요?

A. 당연히 책을 좋아하죠. 도서관에 있거나 서점에 있으면 가슴이 설레는 걸요.
하지만 의외로 사서들은 책 읽을 시간이 없답니다.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보이지 않는 일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한 권이 책이 도서관 서가에 꽂히기까지는 예산편성에서부터 자료선정, 구입, 분류, 목록, 라벨링, 배가, 기타 등등 수많은 작업들을 거치고 또 거쳐야만 합니다.

어렸을 땐 책을 많이 읽었었는데, 대신 독서편식이 너무나 심했어요. 시나 소설 같은 문학류만 집어 들었었거든요. 차차 나아져서, 요즘엔 꽤나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읽게 되었네요.
단지 차이가 있다면, 예전엔 그야말로 책을 많이만 읽어댔다면 최근엔 한 권을 읽어도 양서를 가려서 읽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뭐, 좋은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구별한다는 것 자체가 웃길 수도 있습니다만, 분명히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책들과 독이 되는 책, 또 시간낭비가 되는 책들은 존재한다고 봐요. 그래서 베스트셀러보다는 스테디셀러에, 또 고전에, 그리고 한 주제분야에 있어 대단한 폭풍우를 몰고 오는 다소 시끄러운 책에 저는 더 열광하는 편입니다.


Q. 보신 책들 가운데, 한 권만 추천해주세요.

A. 올해 읽은 책들 가운데 제 개인적으로 가장 센세이션 했던 책은 장하준 박사의 '나쁜 사마리아인들(Bad Samaritans)'이었습니다. 저희 도서관 한국자료실에 소장된 책이니 나중에 기회가 되신다면 한번 읽어보세요.


Q.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해 주세요.

A. 한국자료실 개관과 관련해서, 코이카 단원들에게 몇 가지 홍보하고 싶어요.
몽골 국립도서관의 한국자료실은 오는 11월 12일 개관합니다. 12시에 개관식 행사가 있으니, 많이들 와주세요. 환영합니다.*<:) (참고로 한국 국립중앙도서관과 더불어 KOICA, 대한민국대사관, 몽골 교육문화과학부 관계자 외에도 몽골 내 각 한국어과 교원 등이 함께합니다)
또한, 자료를 정리하는 데 있어 적잖은 일손들을 필요로 합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책 한 권이 서가에 꽂히기까지는 수 많은 손을 거치고 또 거쳐야만 한답니다. 어려운 일들은 아니니, 그저 도서관에 놀러 온다고 생각하시고 살포시 와주셔서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
몽골 KOICA 단원들의 커뮤니티, '모니카'에서 진행했던 단원 일인인터뷰 전문.
http://club.cyworld.com/koicamongo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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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KOICA MONGOLIA/KOICA/사서/몽골 | 2010/09/0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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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몽골 국립도서관 신축.이전 관련 세미나 : Planning the future of the Mongolian National Library



'Planning the future of the Mongolian National Library'란 주제로 세미나가 있었다.
사실상 몽골 국립도서관의 도서관마스터플랜과 관련한 자리였는데, 5시간 동안 영어와 몽골어로 모든 세미나가 진행 되었고, 외국의 여러 관계자 외 몽골 국립도서관의 담당자, 몽골 교육문화과학부의 도서관정책 담당자 외 주요 인사가 함께 한 자리였다.
나는 이 세미나를 통해 (내 개인적으론)영어란 존재 자체를 많이 잊었음을 다시금 확인했고, 몽골어 또한 이전과 비교했을때 확연히 더이상은 늘지 않았음을 다시금 확인하고야 말았다. 더불어 가장 중요한 도서관에 대한 시각 또한 내가 원하는 정도의 깊이나 넓고도 다양한 사고까지는 아직 다다르지 못했다는 것을 깨우칠 수 있는 자리였다.
elFL에서 온 Monika와 David, 싱가폴 국립도서관의 Johnson씨의 프리젠테이션으로 그들의 도서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알 수 있었다고나 할까. 뭐랄까. 한국인이 바라보는 도서관과 서양에서 바라보는 도서관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첫째로, 한국의 경우 국가대표 도서관을 중심으로 도서관계의 정책이나 운영 등이 굵직하게 정해지는데 반해,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각 해당 도서관의 자율성이 커서 그다지 국가대표 도서관의 정책이나 운영방안 등에 각 지방의 도서관들이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중앙집권적인 운영이나 정책의 발현은 소규모 도서관들을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David는 말했는데, 그의 발언에 나는 개개인의 자율성과 개성, 그리고 각각의 특성 등을 능동적으로 발휘하길 바라는 지방분권적 사고의 도서관운영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할 방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직은 개발도상국이자 자립을 할 수 없는 열악한 상태의 지방 도서관들 사이에서 어떠한 것이 과연 이 몽골 국립도서관에 어울리는 정책이고 운영방안일 것인지는 정말이지 심도있게 생각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자율성을 논하기도 힘들 정도의 열악한 지방 도서관들이거늘 이를 어찌할 것인가.

둘째로, Johnson의 프리젠테이션에서는 도서관의 각 이용자층에 대한 연구를 담고 있었는데, 매우 원론적인 이야기여서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기는 했으나 그의 프리젠테이션 자료물 자체가(ppt) 매우 심플하고도 단번에 이해가 잘 되게끔 만들어져 있었기에(디자인은 별도로 하고 내용적인 면이 쉽고도 좋았다) 편하게 접근할 수가 있었다.
각 이용자들의 성별, 나이, 특정한 직업군 등에 따른 서비스의 세분화와 자료실 및 열람실의 세분화 등에 대한 내용이었거늘, 이를 듣고 있노라니 과연 내가 속한 몽골 국립도서관은 어떠한 전략과 어떠한 중점적인 기능으로 다가서련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과연 몽골 국립도서관은 어떠한 정책으로, 어떠한 세부적인 마스터플랜으로 새로운 건물을 신축하고 시스템을 변화하여 적용시킬 것인가. 정말이지 6년 후가 기다려지는 순간이었다.

2009.07.07.-09. 세미나
2009.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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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KOICA MONGOLIA/KOICA/사서/몽골 | 2009/08/0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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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간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무어라 말을 시작해야할지 사실은 잘 모르겠다.
2년간, 아니 2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함께 해왔던 같은 기수들이 드디어 KOICA 단원 활동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을 했고, 나는 2년 동안 살던 집에서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다. 밖에는 폭우로 인해 구름이 잔뜩 낀 날씨였고, 나는 당장 내일 오전 이사를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부랴부랴 이삿짐을 꾸리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었다. 그런데 물건 하나하나를 집을때마다 그동안 있었던 작고 큰 일들이 순간 순간 내 머리를 스쳐가며 옛 기억을 되살리자 알 수 없는 가슴 뭉클함에 쓴 미소를 내지을 수 밖에 없었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참 슬픈 일들도, 기뻤던 일들도 아직은 내 기억 속에 남아는 있구나.

그렇게 거의 밤을 새다시피하며 몇 시간만에 이삿짐을 다 꾸리고 해가 뜨자 이사를 했다.
토요일 아침부터 우리집을 찾아 이사를 도와준 단원들이 어찌나 고맙던지, 또 이사를 하는걸 알고서는 기관에서 차량을 대준 사실이 어찌나 고맙던지 이는 이루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이렇게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난 2년간 몽골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지낸 동기들을 한국으로 떠나 보냈다.
잘 울지 않는 나인데 공항에서 왜이리 눈물이 나던지 두 눈을 계속해 비벼댔던 생각이 난다. 단 한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큰 언니가 두 눈에 가득 눈물을 고인채 크게 웃으며 돌아설때는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붇받쳐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야 말았다.

하지만 잘 알고 있다.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또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그들과 같지만 다른 모습으로 이곳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것 또한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남은 시간을 결코 헛되게 보내지 않겠다고. 지금보다도 더 열심히 그 남은 시간들을 알차게 메꾸겠다고 말이다.
나를 응원해준 동기들, 그리고 나를 응원해줄 여러 사람들. 그들에게 떳떳하고 싶고, 이곳 사람들에게도 확실하고도 제대로 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그 무언가를 하나 나누어 주고 떠나고 싶다.

2년. END지만, 다시금 AND이다. 난 잘 해낼 수 있고, 잘 해낼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기운을 내자. 이제 그만 일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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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KOICA MONGOLIA/KOICA/사서/몽골 | 2009/08/0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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