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ICA MONGOLIA/아, 몽골(Mongolia)!'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10/10/08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주몽골 북한대사관)
  2. 2010/10/08 항상 전기가 고픈 몽골, 이제는 일상
  3. 2010/10/05 UB 외곽 트래킹, 몽골 서민들의 생활
  4. 2009/06/17 Hentii(힌티) 여행 中
  5. 2009/05/08 A-SOUND. Release(2008) (1)
  6. 2009/04/04 몽골 전통 음식, 허르헉(Horhog)
  7. 2009/03/25 몽골을 가장 잘 아는 것? 바로, 론리 플래닛 몽골리아!
  8. 2008/12/17 2008.12.13.-14. KLPT(EPS-KLT) 시험 감독
  9. 2008/11/25 2007.08.07. 몽골 연세친선병원
  10. 2008/11/11 EBS <한몽 공동제작> 하늘의 땅, 몽골 (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주몽골 북한대사관)



예전엔 지금의 UN 몽골 본부가 북한 대사관이었다고 한다.
허나 몽골이 민주주의로 돌아서면서 이런저런 정치적인 영향으로 북한 대사관이 몽골에서 철회를 하였고, 그러다가 다시 몽골에 대사관을 설치하게 되면서 옮긴 자리가 바로 이곳이라고 들었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
몽골에 북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하거늘, 막상 이 이야기를 듣고 또 북한 대사관을 직접 보고나니 왠지모르게 모든 것들이 낯설게만 느껴졌었다. 조금은 분단의 현실을 잠시 더 느끼게 되었고 말이다.

2007.07. 현지훈련 당시, 팅기스 극장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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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KOICA MONGOLIA/아, 몽골(Mongolia)! | 2010/10/0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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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전기가 고픈 몽골, 이제는 일상

전기(전압)가 불안정한 몽골. 이렇듯 정전은 꽤나 잦다.
2년이란 시간이 참으로 무서운것이, 이젠 아무런 공고 없이 전기가 나가도 전혀 아무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정전이 되면 촛불을 키고, 또 하고있던 일들을 계속하되 최대한 빨리 마무리를 짓는다. 그 어떤 누구에게도 묻지도 않은채 그저 그려러니하고 마는 것이다. 씻어야 되면 랜턴으로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최대한 일찍 잠자리에 든다. 눈을 뜨면 밝은 아침이 와있길 기대하면서.
이렇듯 하루 이상 정전이되야 어찌된 일인지 경비아저씨나 관리인, 혹은 집주인에게 연락을 한다. 하지만 사실상 이러한 일상적인 정전 때문에 요란법석하게 연락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로 이렇듯 내가 인터넷을 하고 있는 것이,
1) 노트북 배터리의 잔량이 남아있었고,
2) 정전과 관계없는 무선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전용선을 이용한 인터넷을 사용했을땐 정전이 되면 자연스레 인터넷도 사용할 수가 없었는데, 무선 인터넷을 사용하니 정전이 되도 인터넷을 사용할 수가 있어 편하긴 편하다. 물론 속도는 매우 느리지만.

[사진1] 노트북 바탕화면. 나름 중립을 지키고자, 한 기관을 잊지 않고자
유엔거버넌스센터(UNPOG)쪽 활동도 열심히하고 싶은데, 오지라는 이 몽골에서 무언가 참여라는걸 한다는것 자체가 사실상 쉽지가 않다. 모든 활동이 국내(한국)에서 이뤄지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초기 '한국사에서 찾는 거버넌스의 사례'에 대한 리서치 활동만을-.- 한것 같다.
또한 무엇보다도 지금은 본격적인 KOICA 현장지원사업(프로젝트) 시작 직후인지라 KOICA에 대단한 집중을 해야만하기에(이쪽의 한국학정보센터 개관이 1년씩이나 미뤄진만큼 몹시도 시급한 상황인지라 확실한 우선순위를 정해야만 했었다) 지금은 KOICA에 전력질주를 할 때였다. 하지만 개관 후엔 한시름 덜 수 있으니까 그때를 고대하며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을 외치고 있다.
"확실하게 제대로 그리고 신속하게. 이제 그만 헤치워버리자."

[사진2] 정전이 되서 어두운 거실의 티테이블 한 켠
대부분 티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사용하거나 인터넷을 한다. TV를 좋아하지 않기에 TV는 전혀 시청하질 않고있는 상태. 참고로 이 티테이블은 침대 및 주방의 바(bar)와 더불어 내가 사랑하는 3대 장소 중 하나이다. 랭킹을 굳이 따지자면 2위. 역시 나에게 있어 침대에 대한 총애를 뛰어넘을 곳이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나는 (아침)수면욕이 대단한 사람이니까.

[사진3] 지난 8월 말, KOICA 정기평가때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들
작게 보이는 흑백 폴라로이드 사진. 이 사진의 필름이 단종 되었다고도 들었고, 그래서인지 비싸다고도 들었다. 찍을땐 몰랐는데 찍고나서 주위에서 무어라 무어라 나에게 말을 하니 갑자기 두 귀가 솔깃. 이럴때만 귀가 얇아지는것 같다.
그리고 작게 보이는 G-MOBILE 무선 인터넷 USB. 모 단원이 건강상의 문제로 SOS 메디컬 서비스를 이용, 한국에 일시귀국하게 되자 어찌어찌하다 요금은 내가 내고 당분간 빌려 쓰게 되었다. 모든 선 없이 인터넷을 하는 기분이란! 그런데 요금과 속도면에선 아니라는 생각이..

[사진4] 인스탁트 미니로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
한국에 가면 인스탁트 미니든 폴라로이드 사진기든 뭐든. 반드시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하나 사리라 다짐했다. DSLR과 새로운 똑딱이 디지털 카메라도 사고 싶고, 몽골에서는 로모를 구해서 로모를 사고 싶고. 정말이지 이래저래 물건 욕심만 늘고 있다. 꼭 필요하지 않는 이상 그다지 이런 것들에 집착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거늘.

2009.09.07. 전기가 없는 밤, 발로 사진을 찍고 한숨을 내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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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KOICA MONGOLIA/아, 몽골(Mongolia)! | 2010/10/0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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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 외곽 트래킹, 몽골 서민들의 생활

언젠가의 주말, KOICA 유숙소에 단원 몇명이 모여, 벼루고 벼루었던 UB의 외곽으로의 하이킹에 나섰었다.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걷다가 잠시 앉아서 쉬고, 또 준비한 과일들과 먹을거리들을 먹다가 또다시 걷고. 아마 한 5-6시간은 계속해 걷지 않았을까?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고 있는지, 또 우리가 서있는 이곳이 정확히 어디인지조차 모른채 말이다. 그리고 이쯤이면 걸을만큼 걸었다고 생각되었을때, 미크로(한국의 봉고차로, 몽골에선 마을버스식의 대중교통수단)를 타고 UB의 중심부로 돌아왔다. 몽골에서 최고의 중식집이라 소문난 곳에서 치룬 뒷풀이가 그날따라 또 어찌나 맛이 있던지.




사진은 도중에 만난 아이들과 그곳의 사람들. 그야말로 평범한 보통 시민들의 생활이다.
높은 고층빌딩이며 한국만큼 혹은 한국보다도 더 럭셔리한 곳들이 존재하기도 하는 울란바타르(Ulaanbaatar; UB, 몽골의 수도)지만, 이렇듯 한 30여분만 걸어나가도 시내 중심부와는 전혀 다른 풍경들과, 그야말로 지극히 평범하다 할 수 있는 보통 몽골 서민의 생활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 혹은 하샤라고 불리우는 나무집에 울타리를 쳐서 사는데, 겨울엔 난방이 되질 않으니 갈탄으로 불을 지펴 난방을 한다. 그러나 한 겨울 한파가 극심히 지속될땐 영하 40-50도까지도 떨어지는 곳이거늘 이런 식의 생활들이 과연 괜찮으련지 아직까지도 의문이라면 의문. 다행히 왠만해선 전기는 들어오지만 더러는 들어오지 않는 곳들도 있고, 또 도시 중심부 자체도 상하수도 시설이 미비하다보니 당연히 이런 외곽까지 상하수도 시설이 잘 갖춰져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고. 더불어 큰 도로를 제외하고는 마을 전체가 비포장 길이며, 마을에 하나 있을까말까한 우물물을 마을 사람 모두가 힘겹게 길러다 사용하는건 기본이다. 이런 환경의 격차가 같은 나라 같은 지역에 그것도 도보로 20-30분 이내 존재를 한다.
몽골은 그런곳이다. 이런 빡빡하고도 힘겨운 서민들의 생활을 잘 알기에 한편으론 마음이 무겁고도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이내 난 희망을 갖기로 했다. 언젠가는 이 사람들도 제대로 갖춰진 곳에서 살아갈 수가 있을것이다. 그만큼 몽골은 빨리 변화하고 있고, 그만큼 발전가능성이 있는 나라이니까 말이다.




[추가] 트래킹을 하는 모습들, 그리고 이곳의 풍경.
도중에 KOICA가 진행한 프로젝트 사업물을 발견하여 반가운 마음에 기념사진도 찰칵.
다들 몽골에서 보낸 시간이 짧진 않아서인지 이런 곳에서의 목적지 없는 트래킹도 전혀 낯설거나 무섭진 않았다. 오히려 노래를 부르며 걷거나, 동네 아이들과 장난을 치기도.

2008.05. 몽골, 울란바타르(UB) 외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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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KOICA MONGOLIA/아, 몽골(Mongolia)! | 2010/10/0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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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Hentii(힌티) 여행 中, 한적한 도로에서

Chinggis Khaan(칭기스한)의 고향인 몽골의 동쪽, Hentii Aimag(힌티 아이막) 여행중에 한적한 도로에서.
원대한 단원, 또 한국에서 오신 원 단원의 친구분인 이광영 선생님, 그리고 안윤식 단원과 더불어 분위기 메이커였던 운전사 처거까지. 정말이지 꽤나 즐거웠던 여행이었다. 물론, 도중에 KOICA 사무소의 부탁으로 잠시 공적인 업무를 하기도 했었지만 이 마저도 좋은 경험이었다.
아무튼, 여행사진 및 여행기는 북서여행과 마찬가지로 언제 올릴지 미정. 참 쉽지가 않다.

2009.05.01.- 05.02. 1박2일간의 짧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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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OUND. Release(2008)
A-SOUND와 그들의 2008년 Release 앨범. 얼터너티브 모던락.



앨범 전체가 고르게 좋다. 사실 듣고선 살포시 놀랐으니.
9주간 앨범 판매가 1위였다는데, 공연 당시 인파만 봐도 초인기밴드.
Bujigchin은 신나서 좋고, Crying과 Shine on은 노곤하면서도 리듬감이 있어서 굳(good).
Shal demii는 사실 가사 없는 섹소폰의 째즈 버젼이 더 좋지만 앵콜 곡으로 이 곡을 몽골사람들은 열렬히 청했을 정도이니 이 곡이 제일 인기가 많은듯도.
Forever는 공연 당시 대형 전광판에 가사가 파스텔톤으로 떠오르며 나름 낭만적인 분위기였던지라 기억에 남고, 이 외에도 Uyanga나 Hey There 등도 귀에 잘 들어온다.


o. MV & Etc. in youtue

Crying♪  http://www.youtube.com/watch?v=HkbbXB1To70
Bujigchin(Dancer)♪  http://www.youtube.com/watch?v=fgSLpubZ9Rk
Shal demii(완전히 쓸데없는)♪  http://www.youtube.com/watch?v=R3pP6U0kMK8
30 jil hamt baihsan(30년을 함께 했어)♪  http://www.youtube.com/watch?v=1CbAz2uyUvo
Shine on♪  http://www.youtube.com/watch?v=1eR_TLN6JPc
Forever♪  http://www.youtube.com/watch?v=GW8oxnbhl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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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KOICA MONGOLIA/아, 몽골(Mongolia)! | 2009/05/08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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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댓글입니다

    2009/08/18 16:56

ㅇ. 2007.09.08. 몽골 교육문화과학부 문화예술과 야유회에서의 허르헉



몽골의 이런 야유회에서 결코 빠질 수가 없는 허르헉(Horhog).
허르헉은 양고기(혹은 염소고기)와 함께 당근, 감자 등의 야채, 그리고 돌을 넣어 물을 넣고 삶은 몽골의 전통 음식이다. 이렇듯 특별한 날에 해먹으며, 다소 보양식과도 같은 음식이라 할 수 있겠다.



허르헉은 이런 찜통에 만드는데, 불을 때울땐 대부분 마른 소똥이나 말똥을 이용한다.
어요나와 함께 허르헉에 쓸 땔감을 주으러 갔다가 이를 알고 다소 당황했지만, 완전히 마른 소똥과 말똥은 의외로 냄새가 나지 않고 질퍽하지도 않아 손으로 집기에도 괜찮았었다. 마치 흙에 마른 풀을 넣어 반죽하여 굳힌것 같았다는.



완성된 허르헉. 허르헉은 대게 고기, 야채, 그리고 국으로 나뉜다.
나는 양고기를 잘 먹지 못해 걱정을 하였으나, 의외로 허르헉은 생각보단 먹을만 했다. 그야말로 고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는.



허르헉을 먹을땐 허르헉 안에 넣었던 돌들을 두 손으로 감싸며 연신 주무르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처음엔 매우 뜨겁지만 조금 식으면 마치 따뜻한 손난로를 가지고 있는듯한데, 온돌 문화를 가진 우리나라여서 그런지 나에겐 그다지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이것이 몸에 참 좋다고 하는데, 아마 혈액순환을 돕는 것이기에 그런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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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KOICA MONGOLIA/아, 몽골(Mongolia)! | 2009/04/04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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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을 가장 잘 아는 것?
바로, 론리 플래닛 몽골리아(Lonely Planet Mongolia)!

 
 

[사진] 론리 플래닛, 몽골리아. 좌측부터 2001년판, 2005년판, 2008년판.

몽골 북서여행을 준비하던 당시, 우리는 '몽골을 제일 잘 아는건 바로 론리 플래닛이다!'는 말을 듣고선, 그저 이를 웃어 넘겼었다. 이미 이곳의 사정을 잘 알기에 알듯도 싶었지만, 그래도 역시 반신반의했었달까?
그런데 막상 4,800km에 이르는 대장정을 시작하자, 우리는(나, 김상희, 신은애, 유재성 단원) 이내 이 말을 곧 진리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또한 지금은 소리 높이 이야기한다.

"몽골을 제일 잘 아는건 바로 론리 플래닛이에요!"라고.

사실상 몽골은 큰 도시를 제외하곤 포장된 도로가 없다. 또한, 표지판도 없으며, 그야말로 황량한 초원과 민둥산이 드넓게 펼쳐져있을 뿐이다. 그런데 운전사들은 아무것도 없는 초원과 민둥산 속에서 길을 찾아 솜에서 솜으로, 아이막에서 아이막으로 이동을 한다. 이런 몇 줄의 글로서는 다소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실제로 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저 운전사가 대단한 능력자로 생각되어져 한없이 위대하게 보일 뿐이다.
허나 땅이 넓기에 몽골 사람들도 몽골 땅 전역을 잘 모르며, 자신이 태어난 고향과 지금 살고 있는 도시를 제외하곤 어디 한군데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어디 먼 곳으로 장기간의 여행을 떠난다는건 대단한 일로 치부되고, 또 운전사라해도 몽골 전역을 다 모른다고 봐야하기에 운전사들은 자기는 어디 지역 전문의 운전사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더불어 분명 론리 플래닛에는 이 산의 이름과 역사와 관광 명소가 나와있거늘, 그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 어느누구하나 이를 아는 사람이 없는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야말로 론리 플래닛은 오지 여행자들의 충실한 가이드이자 바이블과도 같은 서적인 것. 더군다나 바얀울기로 접어들게되면 언어권이 바뀌기에(그쪽은 카작어를 사용한다), 아예 몽골어 자체가 통하지 않기도 한다. 몽골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의외로 적으며, 시골로 갈 수록 이는 더 극심하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도 우리를 안내하는 것은 다름아닌 론리 플래닛이니, 여행하는 21박 22일 내내 론리 플래닛의 책장이 뚫어질 정도로 열심히 보기도 보았고, 또 아주 요기나게 잘 썼다고 봐야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일단 몽골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론리 플래닛부터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몽골에 대한 간략한 역사에서부터 민족 소개라던가 각 주요 도시라던가 여러가지 정보가 세세하게 잘 기록되어져 있다. 단순한 여행서라고 보기에는 매우 아까운 느낌. 또 단어나 어휘, 문장 자체도 쉽게 되어있기에 영어로 되어 있어도 읽는데 큰 지장은 없고, 각 명칭과 정보의 정확성과 더불어 단순한 지도도 생각보다는 유용하니, 몽골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진은 그야말로 멋진 작품 사진들이 실려 실제와는 다소 갭이 있을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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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KOICA MONGOLIA/아, 몽골(Mongolia)! | 2009/03/2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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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부터 2일간 몽골내 KLPT(Korean Language Proficiency Test, 외국인고용허가제 세계한국말인증시험) 본부 감독관으로 잠깐 다른 일을 하였다.
KLPT는 쉽게 말해, 유학을 전제로 하는 TOPIK(Test of Proficiency in Korean, 한국어능력시험)과는 다르게, 한국에 일을 하기 위해 출국하고자 하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시험이라고 보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따라서 TOPIK에 비해선 문제 난이도도 쉽고, 작문 등의 쓰기 시험도 없으며, 말이 한국어능력시험이지 드릴 등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기계의 용도 등을 묻는 등 확실히 한국내 노동자를 뽑기 위함 시험임은 확실하다.
2년인가 3년만에 몽골에서 다시 치루는 시험인지라 시험을 응시한 몽골인의 수는 약 1만여명에 가까웠고, 시험 장소도 5-6군데로 나뉘어 이틀간 치뤄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소속된 곳은 이틀간 약 1천명의 응시생들이 시험을 치를 2번 학교.
교실에 감독을 들어가는 2명의 감독관은 현지 몽골인 선생님들이, 그리고 본부에서 이를 전체적으로 감독하며 시험지 배부 및 답안지 확인을 맡은건 본부 감독관들이었다. 고로, 우리는 시험지 및 답안지 배포 및 회수와 더불어 본부측에서 각 교실로의 감독을 중점적으로 맡았다. 워낙에 TOPIK과는 다르게 KLPT가 컨닝도 심하고, 또 생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어 컨닝을 잡아내는 것도 마음을 굳게 먹고 잡아내야한다고 들었었다(보복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 시험에 따라 한국으로 일을 하러 갈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사실 걱정을 꽤 했는데, 다행이 응시생들을 직접 맞닿뜨리는 교실감독이 아니라, 별도로 마련된 본부에서 그때그때마다 교실로의 시험지, 답안지 배포 및 회수, 또한 교실 감독관들을 관리하는 일이 주된 업무였던지라 큰 트러블은 없었다.
그런데 정말 어느정도로 컨닝이 심한지, 각 교실에서 감독을 맡고 있는 감독관들중 절반은 응시자가 컨닝을 하든 대화를 하든 신경을 쓰지조차 않고 있었다. 최소 본부 감독관이 교실로 순회를 돌면, 이전에 컨닝을 하고 있었더라도 하지 않는 척이라도 해야되는게 아닌가. 그러나 컨닝은 계속됐고, 응시생들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또한 내가 들어서기가 무섭게 몽골인 감독관들은 당황해하며 내가 몽골어를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나지막하게 한국인 감독관이 왔으니 컨닝하지 말라고 응시자들에게 이야기하느라 바빴었다. 그리고선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우리 교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좀 어이가 없었는데, 이중 가장 어이가 없었고 또 화가 났던 일은, 내가 교실로 들어가 교실을 한바퀴 돌며 응시생들을 보고 있는데 옆 사람과 이야기를 계속해 나누던 두 명의 응시생들이었다. 각 줄마다 A형 B형으로 시험지가 다르거늘, 똑같은 문제를 찾아 펴놓고는 이게 맞네 저게 맞네 둘이서 싸우고 있었던. 그야말로 황당하면서도 어이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다가가 싸늘하게 물었다.

"지금 뭐하고 계신 겁니까?"

화가 나, 다가가서 살벌한 표정으로 말하자 대답이 없는 그 둘. 이야기하고 있었냐며 다시금 내가 표정이 좋지 않자 그나마 바른 자세로 앉는다. 그리고 내가 교실을 떠날때까지 어찌나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던지 그들의 눈빛만 보면 내가 무슨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인것만 같았으리라. 하지만 시험 결과의 등수대로 합격자와 불합격자를 나누기에(즉 상대평가), 그런 사람들로 인해 다른 사람이 떨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최소 내가 있는 자리에선 공정해야만 했다.
이 교실을 나선 나는, 너무나 화가 나서 다른 본부 감독관들에게도 지금 컨닝이 성행하고 있다고 문자 메세지를 돌렸다. 이윽고 다른 감독관들도 일제히 교실을 순회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참 가관이었다. 복도에서 감독하는 몽골인 감독관이 각 층별로 몇명씩 따로 있었는데, 우리 본부 감독관들이 각 층별로 불시에 교실들을 순회하기 시작하자, 앞의 교실에 가서 한국 감독관이 지금 순회중이니 조심하라고 미리 알려주질 않나. 시험 종료 후 10분이 지났는대도 교실 감독관이 답안지를 가지고 본부로 내려오지 않아 교실로 찾아가니 아직까지도 마킹을 하고 있는 응시자가 있질않나. 정말이지 나중에 우리 본부 감독관들은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시험은 이틀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전날(13일날) 시험을 보지 못한 응시생들이 몰려와 수험료를 돌려줘야하는거 아니냐는둥 그야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었다. 그나마 다행인게 내가 있었던 2번 학교 같은 경우는 물론 진득허니 계속 항의를 하며 본부에서 뻐팅기고 1시간 반정도 버틴 몽골인도 있었지만, 어찌어찌 몽골 해외인력송출센터 본부(MOU)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그쪽으로 문의를 하라며 그때그때마다 사람들을 돌려보냈었다. 사실상 응시생들의 수험을 등록한건 한국특이 아니라 몽골의 해외인력송출센터였으니까. 그런데 UB 대학의 경우, 신문에 응시장소가 잘못 기재되어 나간대다 항의를 하러 찾아온 사람들을 그때그때 즉시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아 수백명의 몽골인들이 학교 밖에서 집단 농성을 피우는듯 다소 살벌했다면 살벌했었고, 또 TV에서 취재를 나도는둥 그야말로 다른 시험장에 비해 조금은 위험했었다고 한다.

확실한건 KLPT보다는 TOPIK이 감독하기가 수월하다는 것.
역시 생계가 달린 문제여서 그런지 작은 것 하나하나가 KLPT는 다 민감하게 반응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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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2007.08.07. 연세친선병원
원래 알레르기가 있으나, 태어나서 이렇게 심한 알레르기는 처음이었던.

o. 몽골에서 병원 가기

1. 몽골 연세친선병원
1) 등록 : 병원을 처음 찾았으면, 일정 금액을 내고 환자 등록을 하여 카드를 발급 받아야한다(작년 기준 2천 T)
2) 접수계에서 접수 후, 진료비 납입 : 한국인 의사의 경우, 진료비가 몽골인 의사보다 비싸다(작년 기준 3천T)
3) 의사의 진료 : 순서표가 없기에 의사의 진료소 밖에서 대기중인 환자들에게 가장 나중에 온 사람이 누군지 확인해야한다
4) 처방전 외 : 의사가 처방전을 내리면 1층의 약국이나, 밖의 약국의 찾아 약을 사면 된다

2. 몽골 울란바타르 송도병원
1) 최근에 개원한 한국 송도병원의 해외 지점
2) 역시 항문외과 외 몇몇 분야에 한국인 의사가 진료를 담당
3) 서비스나 시설면에선 단원 으뜸 : 내시경 등은 최신식 기기임
4) 그렇기에 몽골 내 가장 비싼 병원으로, 진료비 등은 한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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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KOICA MONGOLIA/아, 몽골(Mongolia)! | 2008/11/25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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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EBS <한몽 공동제작> 하늘의 땅, 몽골



제1부 초원의 전설, 토올
제2부 자연과 인간의 매개자, 버
제3부 아름다운 동행, 야탁과 가야금
제4부 꿈꾸는 초원, 바다흐 가족의 외출

KBI와 EBS가 공동기획하고 문화관광부가 제작을 지원한 한몽 공동제작 프로그램이 3월 3일(월)부터 4일 동안 방영된다.
몽골 편은 한국과 몽골의 문화적 이해를 도모하고 한국의 이미지 고양을 통해 한류의 지속 확산을 도모하기 위해 몽골 UBS, Arena Studio와 함께 한 쌍방향 공동제작 프로그램으로, 몽골의 전통문화와 삶, 한국과의 교류와 변화들을 짚어본다.
몽골 사람들은 한국을 솔롱고스, 몽골어로 “무지개의 나라”라고 부르며 형제국이라고 여긴다. 최근에는 아시아 각처로 전해진 한류(韓流)의 흐름 속에서 한국을 더욱 친근하게 여기고 있다. 많은 몽골 사람들이 한국을 배우고, 한국에서 일하기를 꿈꾸며 한국을 동경하는 것이다. 일찍이 몽골반점, 우랄-알타이 어족 등의 공통점을 갖고 있었고, 칭기즈칸이 세운 원 제국에서는 한반도 문화를 ‘고려양(高麗樣)’이라 해 칭송했을 만큼 한국과 몽골은 역사적으로도 여러 문화적 연대감을 갖고 있다.
오늘날 몽골은 한반도의 7배에 달할 만큼 국토가 넓고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자원이 풍부하지만 인구는 283만 명에 불과한 나라로 많은 성장 가능성을 가진 나라로 지목되고 있다. 한국과 몽골 양국이 함께 성장하기 위해서는 늘어나는 경제 교류와 함께 서로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4부작으로 제작된 본 프로그램에서는 몽골의 전통문화와 삶, 한국과의 교류와 변화들을 짚어보고, 이를 통해 한국과 몽골 양국의 한층 발전된 미래를 제시해본다.




<한몽 공동제작> 하늘의 땅, 몽골 - 1부 초원의 전설, 토올

2008년 3월 3일(월) 저녁 11시 10분 방송

한국 방송 사상 최초로 공개되는 몽골의 대서사시가, 토올

토올은 문자가 없던 때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오랑카이 족의 대장편 서사시가이다. 몽골의 전설 속 영웅들과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노래로 가사에는 몽골인들의 삶과 역사가 그대로 살아 있다. 토올을 전문적으로 부르는 토올치만이 부를 수 있는 토올. 7만 줄(약 A4 3500페이지 분량)이 넘는 가사를 전부 외워서 한 사람이 3~4일 동안 부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신기하게 느껴진다. 토올치들은 이렇게 긴 서사시가를 책도 없이 스승으로부터 전해들은 것만으로 암기하여 부를 수 있었을까? 토올은 세계적으로 주목할 만한 문화유산이고, 몽골 정부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기록이 없어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기록도 없이 구전으로 전승해온 천 년이 넘는 역사의 비밀, 대서사시가 토올을 한국 방송 사상 최초로 촬영, 그 비밀을 파헤쳐본다.

몽골 유일의 토올 전승 집안, 발땅더리찌의 가계


토올은 오늘날 몽골에서도 한정된 지역에만 남아 서몽골 알타이 산맥 주변의 오랑카이 족을 중심으로 이어져왔다. 단 하나의 기록도 없이 순전히 구전만으로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진 토올은 그 자체로 신비감을 갖고 있다. 현재는 서몽골에서도 가계로 토올을 전수받은 이는 발땅더리찌가 유일하다. 목을 틔우기 위해 피가 나도록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 했던 토올치들의 고된 훈련방법은 이제 그의 조카 칭돌락에게로 이어졌다. 몽골 최고 토올치였던 아버지와 큰아버지에게서 토올을 전수받은 발땅더리찌가 아버지 아위르메드의 또 다른 제자 세세르와 함께 토올 연행을 떠난다. 지난 6월 세상을 떠난 토올치이자 큰아버지 오르트나승의 영전에 인사를 올리고 오랑카이 족의 고향 알타이 산맥 깊숙이 토올의 본류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이 여정을 따라 오랑카이 족 토올치 집안의 토올 전승기를 추적해본다.

오랑카이 족 토올치들의 고향, 알타이 산맥의 뭉크하이르캉

발땅더리찌와 아버지 아위르메드의 또 다른 제자 세세르와 함께 뭉크하이르캉으로 긴 여정을 시작한다. 오랑카이 족의 “영원한 산”으로 불리는 뭉크하이르캉은 4,204m에 달하며 만년설에 뒤덮여 있어서 풍광만으로도 신성한 느낌을 준다. 알타이 산맥에 있는 13명의 신에게 허락을 구하고, 뭉크하이르캉의 영험한 기운을 받아 정성껏 토올을 부르는 토올치들. 32년 만에 고향을 찾은 세세르와 대대로 토올을 이어온 발땅더리찌의 정성이 한데 어우러져 만년설이 펼쳐진 대자연을 감동시킨다. 이들이 토올을 부르자, 알타이의 산신들이 화답이라도 하듯,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몽골에서 비는, 건조하고 가문 대지를 적시는 길조로 통한다.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대대로 오랑카이 족의 역사와 전설을 전해주는 교과서와 같은 토올, 서몽골 알타이 산맥에 올려퍼지는 토올은 이들뿐만 인류 모두에게도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동고비 사막 한가운데 있는 작은 마을에 9년제 의무교육 기관인 초중등학교가 있다. 바다흐 씨의 두 아이가 현재 다니고 있는 이 학교의 학생들은 대부분 유목민 자녀들이다. 그런데 학부모들의 교육열은 보통이 아니다. 3년 전 이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텔레비전이 등장한 이후, 학부모들은 가축을 많이 갖는 것보다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 더 유망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교육 환경이 비교적 좋은 이 학교에 자식을 보내기 위해 게르를 싸들고 학교 옆으로 이사를 오는가하면, 평생 살던 초원을 버리고 손주 뒷바라지를 위해 학교옆 작은 집에 갇혀 지내는 조부모들까지 생겨났다. 교육을 통해 새로운 삶을 꿈꾸는 몽골인들의 변화상을 짚어본다.

[출처] http://cafe.naver.com/northroot/3990  (2008.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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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am200.net BlogIcon 청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이거 찾아보면 있겠다. 한 번 봐야지. 재미있겠는데!

    2008/11/12 11:13
  2. Favicon of http://ngnm.tistory.com BlogIcon 근사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보고싶다. 이거말고도 다큐멘터리 꽤 많더라. 그리고 '몽골'이란 영화는 내가 네 usb에 넣어서 보내줄께.

    2008/11/14 22:39
  3. Favicon of http://mhnn.tistory.com BlogIcon 몽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님 블로그 잘 읽고 있습니다. 저도 몽골 가서 언론계통으로 일하고자 하는데 능력이 안되서 몽골정보만 수집중입니다..공부좀 하려구요...ㅋㅋ...

    위 내용의 동영상을 못보셨다면 아래 주소로 오시라고 댓글 답니다.

    몽골국립도서관에서 사서하시느라 수고하시구요..참고로 11월 14일치 야근타도의 타당성에 대한 글 잘 읽었습니다. 님께선 죽을 맛이셨을 것이지만 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야근만은 반드시 타도하세요.^^

    그런데 몽골 인터넷환경 열악하다고 그러던데 인터넷상으론 동영상 못보나여? 갠적으로 제가 궁금해서요..

    제 블로그에 님 블로그 링크해놨습니다.

    http://mhnn.tistory.com/entry/동영상하늘의-땅-몽골-4부작

    2008/12/06 23:57
    • Favicon of http://ngnm.tistory.com BlogIcon 근사서 2008/12/08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댓글 읽고선 잠시 블로그에 들렸었는데, 몽골에 관한 정보가 정말 많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또 알려주신 주소로 가니, 역시나 몽골에선 동영상이 그저 정지 상태.:') 1년전에 비하면 인터넷 환경이 눈에 띄게 좋아지긴 하였으나, 그래도 아직까지 불안정하고 느린건 어쩔 수가 없나봅니다. 쉽게 말해, 몽골에선 간단한 웹서핑 정도가 가능합니다. 뭐 이것도 수도인 UB의 이야기이지, UB를 제외한 다른 곳은(물론 인터넷이 되는 다른 대도시) 그것 마저 힘겨울때가 있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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