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ICA MONGOLIA/KOICA/사서/몽골'에 해당되는 글 84건

  1. 2010/10/03 고마운 초대. 행복한 가정으로의 방문 : Tuvshintungalag(틉신통가락; 틉셔; 통가) 사서와의 인연
  2. 2010/09/12 몽골 국립도서관 '한국학정보센터 : Window on KOREA' 설치 동영상 (1)
  3. 2010/09/07 [모니카(Mongolia KOICA) 일인인터뷰] 몽골 국립도서관의 한국학 전담 사서, 김희근 단원
  4. 2009/08/05 몽골 국립도서관 신축.이전 관련 세미나 : Planning the future of the Mongolian National Library (2009.07.07)
  5. 2009/08/05 END에서 AND로 (2009.07.19.)
  6. 2009/08/05 몽골 국립도서관의 '오바마 자서전 출판 행사', 그리고 제3의 귀(耳)와 눈(見)
  7. 2009/07/13 만남과 헤어짐의 일상다반사. 그래도 Bayartai(안녕히가세요) (2)
  8. 2009/05/19 KOICA 계약 연장 승인(2009.04.22)
  9. 2009/05/12 as busy as a bee (2)
  10. 2009/05/08 DTTC design exhibition 2009 (Spring) (1)
고마운 초대. 행복한 가정으로의 방문
- Tuvshintungalag(틉신통가락; 틉셔; 통가) 사서와의 인연 -


2007년 8월 말, 한달 남짓한 KOICA 몽골사무소의 현지적응훈련이 끝나갈때쯤 일주일 정도를 기관측 사람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기관으로 출근도 하는 등 OJT(On the Job Training) 기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때 나는 사진 속에 있는 열람서비스과의 Tuvshintungalag 사서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되었으니..

치안에 문제가 있는 15구역에서 홈스테이를 했었기에 Tuvshintungalag 사서는 노심초사 나의 안전에 대해 상당히 예민할 정도로 신경을 썼었고, 거실을 포함한 2개의 룸들 중 룸 하나를 나에게 내어주고는 자신을 포함한 자신의 여동생과 여동생의 친구, 그 친구의 갓난아이까지 가족 전체가 한 방에서 일주일간 지내는 등 정말이지 내가 몸들바를 모를 정도로 편의를 바주었었다.
그러다 홈스테이가 끝나갈때쯤 알게 된 것이, 사실 그녀는 그집에 살지 않았었고, 나를 위해 자신의 여동생에게 부탁을 해 일주일간 그녀의 집에서 지냈던 것이었다. Tuvshintungalag 사서가 살던 곳은 몽골의 전통가옥인 게르(Ger). 사실상 몽골인들의 대다수는 어런소츠(대략 아파트쯤으로 보도록 하자) 등의 건물에서 살지를 않고,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나 나무로 만든 하샤라는 집에서 생활을 하는데, 그녀 또한 상하수도 시설도 없고 전기도 간신히 들어오던 곳에서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몽골은 동거문화가 자유로우며, 결혼 전 동거가 흠이 되지 않는 곳이다). 따라서 나는 항상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너무나도 고마운 마음에 연신 어찌할 바를 몰라 했었는데, 미리 언질을 해놓지는 않지만 나중에 KOICA 측에서 홈스테이 비용을 주기때문에 괜찮다고는 한들, 사실상 내 마음은 편해질래야 편해질 수가 없었다. 이렇듯 나 하나 때문에 가족 전체가 불편한건 아닌지 늘상 신경이 쓰였고 마음 또한 불편했었지만, 한사코 괜찮다고 하는 나를 편하게 지내라며 방을 내어주던 그들에게 내가 불편하다고해서 아직 몽골 생활에 익숙치 않은 내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것도 이들에겐 꽤나 큰 걱정거리가 되겠고, 이들이 늘상 괜찮다고 하는대도 끝까지 거절을 하는건 후한 손님접대의 문화가 있는 몽골에서 과연 결례인가 아닌가라는 문제를 두고 생각해보았을때 그들에게 있어선 '우리의 손님접대가 후하지 않아서 그런것이다'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싶어 어찌되었든 이곳에서 가족들과 즐겁게 잘 지내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동기 단원들의 송별식을 제외하고는 홈스테이 기간 모두를 Tuvshintungalag 사서의 집에서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했다. 아직 양고기에 익숙치 않았던 내가 군말 없이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너거태슐(양고기 외 야채 등을 넣고 끓인 국)을 네그릇씩이나 비워가면서 말이다.

그러다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국립중앙도서관의 '(아시아)문화동반자사업'에 지원하게 된 Tuvshintungalag 사서를 도와주게 되면서 더욱더 친해지게 되었는데, 그녀의 한국어 학습을 위해 해외인력송출센터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던 원대한 단원에게 부탁을 해 한국으로 가기전 잠깐이나마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녀가 한국에 가 있는 약 1여년 가까이를 이메일을 주소 받으며 그녀의 연수를 도와주게 되었다.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된 '틉셔(Tuvshintungalag)-희그네(희근이)-대한박샤(대한 선생님)'의 라인. Tuvshintungalag 사서가 몽골로 돌아오고, 또 그녀의 딸인 턱토를 출산하게 되고, 더불어 원대한 단원의 귀국이 초읽기가 되면서 정식으로 초대를 받게 된 그녀의 집. 우리가 좋아한다는 감자 호쇼르(몽골의 전통 음식인 튀김 만두. 원래는 살짝 양념된 양고기가 들어간다)며 몽골의 전통 음식, 또 고비 알타이의 지역명물인 백포도주까지 한상 거하게 차려놓고는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이때 찍은 사진들을 이렇듯 바라보고 있노라면,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복한 미소들에 아직까지도 기분이 한껏 좋아지는데, 아직 사진을 찍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한껏 환한 웃음을 짓다가도 사진만 찍으면 굳어지는 그들 내외를 보며 원대한 단원과 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던 기억도 난다.

그야말로 고마운 초대, 행복한 가정으로의 방문.

이렇듯 이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하고, 또 소중한 추억들을 한껏 만들었기에 너무나 다행이라는, 행복하다는 생각을 아직까지도 하곤 한다.

이제는 3년전 처음 만났던 그때와는 다르게 Tuvshintungalag은 한 남자의 부인이 되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또한 내가 남기고 온 몽골 국립도서관 한국학정보센터의 현지 담당 사서가 되어 새로운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다시 그녀를 만났을때, 과연 우리는 서로 어떤 모습일까?
아직까지도 주고 받는 소소한 일상 속의 이메일들. 그녀와 내가 주고 받은 이메일에서 이미 지나간 조금은 잊혀졌던 옛 추억도 잠시 되살려 보며, 잊지 않고 연락을 해주는게 그저 고맙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 소소한 이메일들이 1년 2년 3년 그리고 10년쯤 쌓이면, 이것도 하나의 멋진 스토리이자 깊은 인연이란게 되겠지?

"저도 보고싶습니다. 그리고 고마워요, 통가. 멋진 한국학 사서로써의 모습을 기대할께요."



Sain baina uu
higen shi ajil sain uu
sonin yu bna daa sanaj bn auu higen shi manaihan namar bolohoor soyolin ajiltni odor geed hodoo yawdag bas zondoo humuus yawdag duuldag ter maani boloh geed margaash hodoo yawan chi sain yu bna daa mongol helee martaagui biz dee martaj bolohgui shuu bi chamaig ih sanaj bna aa
bid tsomooroo sain bgaa Za daraa uulziya hairtai shuu baka
- Sep 10, 2010


안녕하세요
희근씨 하고 있는 일은 잘 되고 있나요?
새로운 소식은 있어요? 희근씨 우리는 가을이 오면 '문화예술인들의 날' 행사로 지방(유원지)에 가곤해요(참고: 몽골 교육문화과학부 산하 문화예술과 소속의 도서관, 박물관, 국립극장 등의 소속인들이 모두 함께하는 문화체육행사). 많은 사람들이 가구요, 우리들(몽골 국립도서관 사람들) 또한 내일 이 행사에 참가한답니다. 희근씨는 잘 지내요? 몽골어는 잊지 않았지요?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많이 보고 싶어요.
턱토와 저는 잘 지내요. 그럼 다음번에 만나요. 사랑합니다. 안녕.
- 2010년 9월 10일




[사진] 2009.8.22. 울란바타르, 바양 호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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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국립도서관 '한국학정보센터 : Window on KOREA' 설치 동영상
2008년 1월부터 2009년 11월 10일까지의 기록들.
몽골 국립도서관의 '한국학정보센터 : Window on KOREA' 설치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동영상으로 남긴 자료. 본 동영상은 한국학정보센터 프로젝트의 최대 후원자였던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으로 송부한 최종 결과보고서(자료물) 중 하나임.

o. 동영상 내용
한국학정보센터 : Window on KOREA의 룸 공사 및 인테리어
소장 자료 배송 및 검수, 정리 작업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의 관계자 내방 및 업무협의, 중간보고
BBK(러시아분류법, 도서관서적해제의 분류) 번역 및 소장 자료 분류
한국국제협력단(KOICA) 박대원 이사장(총재) 내방
대한민국 국회 해외원조사업 시찰 관련 박진, 홍정욱 의원 내방
서가 및 각종 가구 외 컴퓨터 외의 기자재, 사인시스템-현판의 설치 등
+ 중간에 박스를 들고 웃고 있는 나와, 몽골 국립도서관으로 파견된 두 명의 후임들, 그리고 작업을 도와준 KOICA 단원들과 몽골 국립도서관의 직원들, 고생이 많았던 가구공장의 사람들.

o. 프로젝트/후원기관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
주몽골 대한민국대사관
몽골 국립도서관
몽골 교육문화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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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KOICA MONGOLIA/KOICA/사서/몽골 | 2010/09/12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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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 국립도서관 '한국학정보센터 : Window on KOREA'의 개관식 및 완성된 자료실의 사진은 다음번에 업로드.

    2010/09/12 23:09

[모니카(Mongolia KOICA) 일인인터뷰] 2009.10.26.
몽골 국립도서관의 한국학 전담 사서, 김희근 단원

11월 12일. 몽골 국립도서관 한국 자료실이 개관합니다.
2008년 초부터 지금까지도 현재진행 중인, 우여곡절 한국 자료실 설치의 담당자,
김희근 단원을 만나볼까요?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A. 네, 안녕하세요. 앞선 소개에서처럼 몽골에서 가장 체류기간이 긴, KOICA 최고 고참 35기 사서분야 김희근 단원입니다.
몽골 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고요.


Q. KOICA 최고 고참이라. 이번 11월에 오실 50기 분들과는 자그마치 열 다섯 기수나 차이가 나네요. 언제 몽골에 오신 건가요?

A. 2007년 7월에 몽골에 입국했습니다. 지금 2년 3개월째 됐구요, 2010년 1월, 드디어 길고 긴 단원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합니다.


Q. 2010년 초겨울까지 치면, 몽골의 겨울을 무려 네 번이나 보시고 가시는 셈이네요. 우리 일반 단원들의 경우, 2년 근무가 일반적인데, 6개월 연장을 하셨어요. 연장하시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A. 제가 담당하고 있던 한국자료실 설치 사업이 마무리가 되지 않아서였어요.
일단 여기 도서관 내에서 제 업무를 바로 도맡아 처리를 할 인력이 없었고, 제 후임 파견도 확정이 되지 않은 상태였죠. KOICA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임기 정리를 할 참에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이하 국.중.도) 측에서 다시 연락이 왔구요, 무엇보다도 관장님과 부관장님께서 부탁을 몇 번이고 하셨었어요. 저 스스로도 마음이 영 편하지는 않았던 터라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 사업은 이곳에 꼭 필요한 것이었고, 지금 당장 마무리를 지어야 했으며, 마무리할 거라면 제가 맡아서 하는 게 최선이었기에 다른 대책이 나오질 않았어요. 이왕 여기까지 와서 지금껏 고생했던 거 그럼 한 번 더 가보자라고 마음 먹고 연장 신청을 했는데 결국 본부 승인이 나더군요.


Q. 이래저래 우여곡절이 많았던 일이네요. 이 한국자료실에 관해서는 조금 있다가 더 구체적으로 인터뷰할게요. 지금 계신 몽골 국립도서관은 어떤 곳인가요?

A. 제가 파견되어 있는 몽골 국립도서관(The National Library of Mongolia)은 1921년 설립되었어요. 현재는 몽골 교육문화과학부 문화예술과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국가대표 도서관이다 보니 소장하고 있는 자료의 수나 규모적인 면에선 단연 몽골 내에서 최고를 자랑합니다. 한국학자료 약 7천 여권을 포함하여 총 300만권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어요. 또한 쿠웨이트 정부의 지원으로 2015년경 도서관 건물을 신축하여 이전할 계획에 있으며, 이미 작년 6월경 공식적인 착공식이 있었답니다.



또한 몽골 국립도서관 2층에는 매우 진귀한 각종 고서(古書)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Museum of Rare and Valuable Books)'이 있어요. 이 박물관에는 몽골의 9가지 보물들과 금, 은으로 쓰여진 책들, 몽골 문자기념물 외 각종 고(古)역사서 등이 소장되어 있답니다.


Q. 기관에서는 어떤 업무들을 하고 계신가요?

A. 여러 가지가 있는데,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겠네요.

첫 번째로 한국학 전담사서로서 '관내 소장 한국학자료의 분류, 등록, 정리' 등의 업무가 있겠고,
두 번째로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 및 KOICA 현장지원사업으로 진행 중인 '한국자료실(한국학정보센터)의 설치' 사업입니다.
또한 마지막으로 한국학자료에 대한 '정보서비스' 및 특정이용자들을 위한 몽골 국립도서관 내의 각종 정보서비스 제공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관내 한국학과 관련된 모든 업무들을 총괄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Q. 우리 코이카 단원들 중에도 국립도서관을 이용하고 싶은데, 아직 방법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요. 어떻게 하면 이용할 수 있을까요?

A. 몽골 국립도서관의 자료열람이나 열람실을 이용하기 위해선 이 곳의 대출증을 소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대출증은 외국인 기준으로, 몽골에 거주하고 있음과 동시에 확실한 신분보장이 되는 분들만이 발급을 받으실 수가 있습니다. 발급 받으러 오실 때, 다음의 서류와 신분증을 챙겨오시면 됩니다.

o 여권, 증명사진 1장, KOICA 단원증
o 4천T (2천T은 카드 발급비, 2천T은 1년 이용료 : 1년 후 갱신 필요)


Q. 몽골의 도서관들은 한국도서관과는 어떤 점이 다른지도 궁금해지는데요, 질문 몇 가지 드릴게요.

질문 하나: 몽골 도서관에서는 컴퓨터로 도서관에 소장된 자료들을 검색할 수 있다?, 없다?
A. 정답은 '없다'입니다.
몽골에는 아직 '도서전산화'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당연히 웹(인터넷)을 통한 검색도 불가능하며, 현재 가동 중인 도서프로그램 또한 아주 기초적인 것들만을 겨우 지원하는 수준이라 이제는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목록카드'란 것을 비치해 동시 사용 중 입니다. 사서들의 업무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수작업일 수 밖에 없어 매우 고되죠. 도서관에 소장된 자료들의 서지 정보를 등록하는 등록대장마저 아직 필사로 쓰여지고 있거든요.

질문 둘: 몽골 도서관에서는 이용자가 서가에 가서 책을 직접 꺼내볼 수 있다?, 없다?
A. 정답은 '없다'입니다.
이를 '폐가식 시스템'이라고 하는데요, 이용자가 실물자료가 비치된 서가에 접근 할 수 없는 시스템을 말해요. 쉽게 말해 서가와 열람실이 따로 분리되어 운영되는 것이죠. 특히 국립도서관의 경우, 학술자료에 비중이 실려 있고 값비싼 고서나 귀중본 등이 많기에 자료의 분실이나 훼손에 무척 민감한 편입니다. 개가식시스템으로(폐가식시스템의 반대) 전환을 하고 싶어도 분실도난시스템 등 이에 들어가는 비용이라든가 당장 문제시 되는 것들이 많아 잠정 보류상태입니다. 하지만 도서관 신축-이전 시 전면적인 개가식시스템이 도입 되어질 예정이며, 현재 설치중인 한국자료실은 시범모델로 몽골 국립도서관에서 첫 번째 개가식시스템으로 운영될 것입니다.


Q. 한국 자료실이 몽골 국립도서관에서의 첫 번째 개가식 시스템이 된다니 기대되네요. 우리나라 도서관과 다른 점들 때문에 업무도 한층 더 많으셨을 것 같아요. 기관 업무 외에 취미 활동은 어떤 것을 하셨나요?

A. 말씀하셨듯 기관 일에 매여있느라,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
개인적인 시간을 쪼개서 한 것이라곤 몽골어 과외, 몽골 비칙(몽골 전통문자) 과외, 그리고 기타(Guitar) 교습이 전부네요. 하지만 기타는 한 수업 5번 정도에 연습도 제대로 하질 않아 말도 안 되는 실력입니다. 따라서 이건 자신 있게 했다고는 절대 말 못하겠고, 대신에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압도적이고도 저 스스로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건, 바로 '여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흡스골, 고비, 다르항, 에르덴트, 그리고 힌티에 그 유명한 4,500km가 넘는 몽골 북서여행까지. 지금 생각해보니 참 열심히도 다닌 것 같네요.



또 원체 이것저것 호기심이 많은 데다 무언가를 보러 다니는 걸 좋아해서 오페라든, 발레든, 전통공연이든, 째즈 혹은 락 콘서트든 여유가 되는 한 공연을 많이 찾아 다닌 것 같습니다.




Q. 여행이나 공연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 더 특별해지는 것 같은데, 혹시 애인이 있으신가요?

A. 난감한 질문이네요.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한국에 있는 친구와 '누가 먼저 솔로 탈출을 하나.'를 두고 내기를 하고 있습니다. 비록 전 지금 삼천포로 퐁당 빠져버렸습니다만.


Q. 하하. 내년 봄이 오기 전에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좋으세요?

A. 예전엔 느낌이 통하고, 믿을 수 있고, 제가 존경할 수 있는 그런 어른스러운 사람이 좋았어요. 물론 지금도 그런 사람이 좋긴 한데, 그래도 최근엔 함께 있으면 즐겁고 마음이 설레는, 또 따뜻해지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네요.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곧잘 만나는 편이기는 한데, 의외로 제가 친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에게 꽤나 무관심한 편이에요. 남자든 여자든 시간을 내서 몇 번이고 만나며, 또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그래서인지 적극적으로 몇 번이고 대시를 하는 사람에게 반응을 보이고 관심을 보입니다. 'ter yo ve?(쟤 뭐야?)'라는 느낌이랄까?




Q.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 것 같으세요?

A. 음_ 이상주의자에 완벽주의자요.
현실을 직시하고 있거늘, 아이러니하게도 추구하는 것은 이상적인 그 무엇입니다. 그래서 늘 딜레마에 빠져있어요.
그리고 완벽주의.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제가 참 평상시엔 바보스러움 그 자체라 도대체가 답이 안 나오는데, 그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하면 돌변을 해서 무섭고도 어렵고, 매우 깐깐하며 실수를 용서치 않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듯한 그런 사람이 되어버리곤 합니다. 만족스러운 결과물들이 나오기까지 제 자신을 극한까지 밀어붙이기에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어버리네요.


Q. 한국자료실 설치 사업도 완벽하게 잘 해내고 계실 것 같아서 개관일이 손꼽아 기다려지네요. 그런데, 한국자료실 설치 사업이 어떻게 해서 진행되었는지 알고 싶네요.



A.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의 해외도서관 한국자료실 설치 사업으로 시작'
일단 시작은 국.중.도의 '해외도서관 한국자료실 설치 사업'으로 시작했어요. 2008년 러시아 국립도서관, 중국 상해도서관과 함께 저희 몽골 국립도서관이 국.중.도의 해외사업으로 선정되었죠. 그런데 사실상 몽골이 개발도상국인데다 몽골 국립도서관의 연간 예산은 한국으로 따지자면 가히 비참한 수준이거든요. 국.중.도의 지원만으론 사실상 제대로 된 한국자료실 개관이 힘들었습니다.

'KOICA의 현장지원사업까지 투입'
그래서 KOICA의 현장지원사업(프로젝트)을 이곳에 투입하기로 마음먹게 된 거죠. 두 프로젝트를 통합해서 진행하려고 했는데, 양측의 의견조율이 잘 안 되서 각각 진행하게 되었구요.

'프로젝트가 다른 곳으로 넘어갈 뻔, 한국의 외환 위기'
그러다 갑작스레 저희 기관과 국.중.도.도 모르게 '어린이의 책 왕궁(어린이 도서관)'으로 프로젝트가 넘어갈 뻔한 알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죠. 그렇게 마음고생 서너 달. 그리고 KOICA 프로젝트의 본부 승인을 기다리고 있던 중에, 한국의 외환위기가 왔어요. 전세계 KOICA의 모든 사업이 순식간에 올 스톱(딜레이)된 거죠. 그렇게 또 마음고생을 수개월 해야만 했습니다. KOICA 사업이 재기되기를 무작정 기다릴 수가 없어 기관 측에 이야기를 했는데도 나중에 되든 안 되든 사업이 재기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정말 그야말로 조용히 기다리시더군요. 그러다 사업이 다시 재개되고, 연장을 하게 되고, 드디어 프로젝트도 본부 승인을 받아 자금이 입금되면서 본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이제 한국 자료실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A. 개관을 앞두고 있는 한국자료실은 해외에서 한국에 대해 알고자 하는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기 위해서 만들어졌어요. 곧, 한국학을 전공하는 몽골 내 학생, 교원, 석학 외 기타 현지인들 및 재외동포 등이 수여대상자이구요. 몽골의 경우, 정부산하 한국문화원이 아직 설치되지 않은지라 본 사업의 중요도나 필요성 자체가 조금 더 높아졌구요.



한국자료실은 39 제곱미터로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모든 룸들이 과포화상태였기 때문에 이전에 인터넷 및 연속간행물열람실로 쓰이던 공간을 억지로 빼내서 준 것이거든요. 공간은 작은데 소장될 자료의 수는 많아 높은 천장을 이용해 서가를 높게 제작하고 서가 계단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주어진 공간 내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얻어내고자 했죠.
한국자료실에 소장되는 자료들은 전 주제영역에서 약 3,500 여권 이상의 신간도서들로, 금액으로는 약 5천 5백만원 정도가 됩니다. 이와는 별도로 동양서고에 기존의 한국학 자료들이 있구요. 이 자료들은 80%가 1950년대 북한자료들로 한국학 자료에 속해지되 별도로 동양서고에 보관되어질 예정입니다.
결론적으로 한국자료실에 총 투여되어지는 금액을 대충 계산해보자면, 약 9천만원. 거의 1억원에 가까워집니다. 다소 부담스럽네요.


Q. 이제 3개월 후면 가시게 될 텐데, 한국에서도 이 쪽으로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A. 사실 다른 곳을 몇 번 기웃거렸었어요. 그때마다 이 '도서관계'란 늪에서 너무나 좋은 일들이 밀려들어와 벗어나지를 못했었어요. 딱히 이 쪽 일을 평생 해야겠다는 의욕이 크지가 않아서 아직까지 고민이 되고는 있지만, 말로는 잘 표현하지 못하는 그 무언가가 이곳에 저를 잡아두고 있다고 느끼고는 있습니다. 그래서 걱정과 고민을 함께 안고, '이 길이 제가 갈 길이구나.'라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버렸네요.



단지, 지금의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사업을 제 전공과 접목하여 앞으로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도 있어요. 하지만 GO 소속이든 NGO 소속이든 도서관이나 독서교육 쪽으로의 여러 사업 자체가 황폐함 그 자체인지라 의욕이 생기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아직까진 실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다른 가능성들도 있죠. 동아시아학 주제전문사서나 한국학 주제전문사서로 나갈 수도 있고, 일반 사서직으로 취업을 할 수도 있고. 하지만 일단 귀국 후엔 계획대로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유엔거버넌스센터(UNPOG; United Nations Project Office on Governance)의 청년홍보위원 1기로 지난 6월 선발이 되었는데, 해외 거주에 이쪽의 한국자료실 개관 프로젝트로 UNPOG 활동에는 참여를 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쪽이 마무리가 되는대로 남은 임기 동안 그쪽의 활동도 잘 해내고 싶습니다.


Q. 활동하시면서 가장 기뻤을 때는 언제인가요?

A. 아마 지금이 아닌가 싶습니다. 2년간 항상 분주했지만, 결과물들이 보이지 않아서 잔뜩 의기소침해져 있었거든요. 이제서야 하나씩 나오는 결과물들에 참 뿌듯하네요.
그리고 다행히 전 기관 사람들과도 사이가 좋은 편인데, 이런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쳐있을 때 힘내라고 따뜻하게 말씀해주셔서 고맙고, 그저 고맙다고 항상 말씀해주셔서 고맙고, 하물며 끼니 꼭 챙겨 먹으라며 화내고 잔소리 해주시는 것 또한 너무나 고맙습니다.


Q. 프로젝트 사업 때문에 연장을 하셨지만, 기본적으로 몽골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그것도 어려웠을 것 같아요. 몽골의 어떤 점이 좋으신가요?

A. 알고 보면 이국적인 것들이 참 많아요. 전통적인 문화나, 각 소수부족들의 문화적 차이라던가, 라마교나 샤머니즘도 그렇고 이래저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 의외로 꽤 많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이런 곳이 또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 그대로의 자연으로 존재하고 있는 곳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한 나라에서 각각의 지역이 전혀 다른 맛으로 찾아온다는 것도 재밌고 무척이나 신기하고 신선합니다. 고비의 모래사막이 있는가 하면 바다와도 같은 흡스골이 있고, 또 동쪽마을 힌티의 드넓은 평원이 있는가 하면 서쪽마을 알타이 산맥의 드높은 만년설 타운복드가 있고 말입니다.


Q. 사서 분야이시면, 책을 굉장히 좋아하고 많이 읽으실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실제로는 어떠신가요?

A. 당연히 책을 좋아하죠. 도서관에 있거나 서점에 있으면 가슴이 설레는 걸요.
하지만 의외로 사서들은 책 읽을 시간이 없답니다.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보이지 않는 일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한 권이 책이 도서관 서가에 꽂히기까지는 예산편성에서부터 자료선정, 구입, 분류, 목록, 라벨링, 배가, 기타 등등 수많은 작업들을 거치고 또 거쳐야만 합니다.

어렸을 땐 책을 많이 읽었었는데, 대신 독서편식이 너무나 심했어요. 시나 소설 같은 문학류만 집어 들었었거든요. 차차 나아져서, 요즘엔 꽤나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읽게 되었네요.
단지 차이가 있다면, 예전엔 그야말로 책을 많이만 읽어댔다면 최근엔 한 권을 읽어도 양서를 가려서 읽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뭐, 좋은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구별한다는 것 자체가 웃길 수도 있습니다만, 분명히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책들과 독이 되는 책, 또 시간낭비가 되는 책들은 존재한다고 봐요. 그래서 베스트셀러보다는 스테디셀러에, 또 고전에, 그리고 한 주제분야에 있어 대단한 폭풍우를 몰고 오는 다소 시끄러운 책에 저는 더 열광하는 편입니다.


Q. 보신 책들 가운데, 한 권만 추천해주세요.

A. 올해 읽은 책들 가운데 제 개인적으로 가장 센세이션 했던 책은 장하준 박사의 '나쁜 사마리아인들(Bad Samaritans)'이었습니다. 저희 도서관 한국자료실에 소장된 책이니 나중에 기회가 되신다면 한번 읽어보세요.


Q.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해 주세요.

A. 한국자료실 개관과 관련해서, 코이카 단원들에게 몇 가지 홍보하고 싶어요.
몽골 국립도서관의 한국자료실은 오는 11월 12일 개관합니다. 12시에 개관식 행사가 있으니, 많이들 와주세요. 환영합니다.*<:) (참고로 한국 국립중앙도서관과 더불어 KOICA, 대한민국대사관, 몽골 교육문화과학부 관계자 외에도 몽골 내 각 한국어과 교원 등이 함께합니다)
또한, 자료를 정리하는 데 있어 적잖은 일손들을 필요로 합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책 한 권이 서가에 꽂히기까지는 수 많은 손을 거치고 또 거쳐야만 한답니다. 어려운 일들은 아니니, 그저 도서관에 놀러 온다고 생각하시고 살포시 와주셔서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
몽골 KOICA 단원들의 커뮤니티, '모니카'에서 진행했던 단원 일인인터뷰 전문.
http://club.cyworld.com/koicamongo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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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몽골 국립도서관 신축.이전 관련 세미나 : Planning the future of the Mongolian National Library



'Planning the future of the Mongolian National Library'란 주제로 세미나가 있었다.
사실상 몽골 국립도서관의 도서관마스터플랜과 관련한 자리였는데, 5시간 동안 영어와 몽골어로 모든 세미나가 진행 되었고, 외국의 여러 관계자 외 몽골 국립도서관의 담당자, 몽골 교육문화과학부의 도서관정책 담당자 외 주요 인사가 함께 한 자리였다.
나는 이 세미나를 통해 (내 개인적으론)영어란 존재 자체를 많이 잊었음을 다시금 확인했고, 몽골어 또한 이전과 비교했을때 확연히 더이상은 늘지 않았음을 다시금 확인하고야 말았다. 더불어 가장 중요한 도서관에 대한 시각 또한 내가 원하는 정도의 깊이나 넓고도 다양한 사고까지는 아직 다다르지 못했다는 것을 깨우칠 수 있는 자리였다.
elFL에서 온 Monika와 David, 싱가폴 국립도서관의 Johnson씨의 프리젠테이션으로 그들의 도서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알 수 있었다고나 할까. 뭐랄까. 한국인이 바라보는 도서관과 서양에서 바라보는 도서관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첫째로, 한국의 경우 국가대표 도서관을 중심으로 도서관계의 정책이나 운영 등이 굵직하게 정해지는데 반해,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각 해당 도서관의 자율성이 커서 그다지 국가대표 도서관의 정책이나 운영방안 등에 각 지방의 도서관들이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중앙집권적인 운영이나 정책의 발현은 소규모 도서관들을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David는 말했는데, 그의 발언에 나는 개개인의 자율성과 개성, 그리고 각각의 특성 등을 능동적으로 발휘하길 바라는 지방분권적 사고의 도서관운영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할 방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직은 개발도상국이자 자립을 할 수 없는 열악한 상태의 지방 도서관들 사이에서 어떠한 것이 과연 이 몽골 국립도서관에 어울리는 정책이고 운영방안일 것인지는 정말이지 심도있게 생각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자율성을 논하기도 힘들 정도의 열악한 지방 도서관들이거늘 이를 어찌할 것인가.

둘째로, Johnson의 프리젠테이션에서는 도서관의 각 이용자층에 대한 연구를 담고 있었는데, 매우 원론적인 이야기여서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기는 했으나 그의 프리젠테이션 자료물 자체가(ppt) 매우 심플하고도 단번에 이해가 잘 되게끔 만들어져 있었기에(디자인은 별도로 하고 내용적인 면이 쉽고도 좋았다) 편하게 접근할 수가 있었다.
각 이용자들의 성별, 나이, 특정한 직업군 등에 따른 서비스의 세분화와 자료실 및 열람실의 세분화 등에 대한 내용이었거늘, 이를 듣고 있노라니 과연 내가 속한 몽골 국립도서관은 어떠한 전략과 어떠한 중점적인 기능으로 다가서련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과연 몽골 국립도서관은 어떠한 정책으로, 어떠한 세부적인 마스터플랜으로 새로운 건물을 신축하고 시스템을 변화하여 적용시킬 것인가. 정말이지 6년 후가 기다려지는 순간이었다.

2009.07.07.-09. 세미나
2009.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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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간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무어라 말을 시작해야할지 사실은 잘 모르겠다.
2년간, 아니 2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함께 해왔던 같은 기수들이 드디어 KOICA 단원 활동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을 했고, 나는 2년 동안 살던 집에서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다. 밖에는 폭우로 인해 구름이 잔뜩 낀 날씨였고, 나는 당장 내일 오전 이사를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부랴부랴 이삿짐을 꾸리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었다. 그런데 물건 하나하나를 집을때마다 그동안 있었던 작고 큰 일들이 순간 순간 내 머리를 스쳐가며 옛 기억을 되살리자 알 수 없는 가슴 뭉클함에 쓴 미소를 내지을 수 밖에 없었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참 슬픈 일들도, 기뻤던 일들도 아직은 내 기억 속에 남아는 있구나.

그렇게 거의 밤을 새다시피하며 몇 시간만에 이삿짐을 다 꾸리고 해가 뜨자 이사를 했다.
토요일 아침부터 우리집을 찾아 이사를 도와준 단원들이 어찌나 고맙던지, 또 이사를 하는걸 알고서는 기관에서 차량을 대준 사실이 어찌나 고맙던지 이는 이루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이렇게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난 2년간 몽골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지낸 동기들을 한국으로 떠나 보냈다.
잘 울지 않는 나인데 공항에서 왜이리 눈물이 나던지 두 눈을 계속해 비벼댔던 생각이 난다. 단 한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큰 언니가 두 눈에 가득 눈물을 고인채 크게 웃으며 돌아설때는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붇받쳐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야 말았다.

하지만 잘 알고 있다.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또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그들과 같지만 다른 모습으로 이곳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것 또한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남은 시간을 결코 헛되게 보내지 않겠다고. 지금보다도 더 열심히 그 남은 시간들을 알차게 메꾸겠다고 말이다.
나를 응원해준 동기들, 그리고 나를 응원해줄 여러 사람들. 그들에게 떳떳하고 싶고, 이곳 사람들에게도 확실하고도 제대로 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그 무언가를 하나 나누어 주고 떠나고 싶다.

2년. END지만, 다시금 AND이다. 난 잘 해낼 수 있고, 잘 해낼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기운을 내자. 이제 그만 일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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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몽골 국립도서관, '오바마 자서전 출판 행사'

다음은 지난 2009년 4월 27일에 있었던 '오바마 자서전 출판 행사' 당시의 모습이다.
이렇듯 자주는 아니지만, 몽골 국립도서관(The National Library of Mongolia, MYHC)에서는 각종 출판 행사를 갖기도 한다.



각 방송국 및 신문사, 그리고 정계 외에도 여러 유수의 석학들이 함께했던 자리였다.
정확한 행사 시작 시간이 끊임없이 바뀌자 나마저도 시간에 맞춰 갈 수가 없었었다. 점심식사 후 부랴부랴 갔을땐 이미 행사가 끝날때쯤. 그러나 이곳의 굉장했던 열기 만큼은 나또한 느낄 수가 있었다.



오바마 자서전 출판 행사상의 현수막.
이렇게나 빨리 몽골어로 번역이 되어 출판되다니 사실 놀라웠다. 그만큼 몽골 현지 내에서도 미국과 더불어 오바마 미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일거라 생각한다.

오바마 미(美)대통령은 인성적으로나 리더로써의 능력 등등 여러가지 면에서 보통 그 이상을 뛰어 넘는 대단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바마 대통령 그 자체에 대한 높은 평가보다도 드디어 부시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에 더 큰 기쁨이 서려있기에, 이 사실 자체에 더욱더 큰 미소와 환호성을 연신 내지르고 있다. 드디어 '새로운 시대가 왔노라'며 말이다. 허나 아마도 모두가 이와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는 무척이나 클거라 생각을 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대단한 반미주의자나 반부시세력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단지 반부시세력이라고 말하기엔 그에 대한 적대적인 행동이나 언성을 심각할정도로 크게 높이지는 않아서 그렇지, 부시 전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군사적 회의감이나 비판의 목소리가 아예 없는 사람은 또 아니다. 오히려 부정적인 시각으로 봐왔고, 또 문제가 있었다고 확신하는 사람중 한 사람일테니 말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꽤 되었기 때문인지, TV에서의 국제뉴스나 해외토픽 등에서도 반부시세력들의 여러 모습이 비춰진건 사실상 매우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왠지모르게 나는 미국민들의 반부시세력은 소수의 이야기일거라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적어도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 앞에서는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을거라며 말이다.
허나, 언젠가 버지니아 출신의 한 미국인 영어회화 강사가 짖궂은 개그 모션을 취하며 내질렀던 한 마디에 이런 생각은 송두리째 바뀌고야 말았다. 그녀는 한손으로 주먹을 쥔채 자신의 얼굴을 밀쳐내듯 때리며,

"Bush? Push!"

라고 온 강의실의 학생들이 당황하여 웃을만큼 반대 의사표현을 강하게 했었다.
자신이 속한 국가의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것. 그리고 이를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에게 표현하는 것. 나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그때에도 그렇게 생각을 했었고, 외국인과 살을 맞대고 해외에서 지내고 있는 지금 또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마 지금의 한국 정세가 그리 조용하지도, 또 평온하지도 않기에 그런 것일까?
해외에 있기에 한국 내의 정보를 빨리 전해들을 수가 없어, 또 나름의 한계란 것이 있어, 한국에 있는 것보다야 사실상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은 사실이라면 사실이다. 그러나 대략적인 사건.사고, 또 핫이슈인 몇몇의 소식들은 알고 있기에 아주 또 모르는 것은 아니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왜 나는 마치 내가 제3국의 중립국에 있는듯 마냥 나의 일이 아닌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마는 것일까? 아마도 직접 살을 맞대지 않고 있기에 생생한 체감을 하지 못하여 그러한 것이리라 생각하지만, 자꾸만 시간이 흐를수록 모국에 대한 관심이 옅어져만 가는 나 자신을 보며 큰 반성을 하곤 한다. 정치라는 것이 사실상 소수의 놀이로만 비춰질 수가 있긴 하지만, 찬찬히 그 본질을 꿰뚫어보면 모두의 관심과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른바 참여필요적 생산 활동 그 자체이지 아니한가.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해외에 있기에 내가 느끼는 어떠한 장점도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제3국에 있음으로서 매우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여, 그 어떠한 판단을 내릴 수가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한국인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을 벗어나, 보다 더 큰 시각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위치이고, 또 분위기를 탈래야 쉽사리 탈 수가 없는 상황이기에 머리는 이상하리만큼 더 차가워질 수밖에 없다. 다들 궁금하지 않은가?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은 과연 어떠할 것인지, 또 나와 같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은 어떠할 것인지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무엇보다도 이러한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로 인해 한국을, 대한민국을 보다 색다르게 보고 듣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배우게 되며, 깨닫게 된다. 순간순간 나 마저도 제3자의 입장이 되어가면서, 또 제3의 귀와 눈을 가져가게 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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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KOICA MONGOLIA/KOICA/사서/몽골 | 2009/08/0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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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 와서 이전보다도 훨씬 더 익숙해진 것이 있다면, 바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지는 일이 일상다반사와도 같아 차츰 아무렇지도 않게 변해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뭐랄까. 그 아무렇지도 않음이 그래도 조금은 다른 순간이 있다고는 할까? 굳이 표현해보자면 정도의 차이? 뭐 그쯤으로도 해석이 가능할테고 말이다.

오늘 00:20분 비행기로 떠나보낸 KOICA KOV 34기 그들과 '친했다' 내지 '친하지 않았다', 혹은 '특별했다'라고 말하기엔 다소 난해하다면 난해한 관계이기는 하지만, 2년이란 시간을 고스란히 같이 보낸 바로 앞-뒤 기수라는 점과, 그래도 이런저런 추억 아닌 추억들이 꽤 있다는 점에선 어제 오늘 상당히 미묘한 기분을 자아내기엔 충분했을거라 생각을 한다.
자주 만났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가끔씩 연락하는 문자메세지와 전화에서 이제는 더이상 그들에게 연락이 오지는 않을거라는 점, 그리고 나또한 핸드폰에 저장된 그 번호로 다시는 연락을 할 일이 없을거라는 점이 참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오면서도 복잡미묘한 기분이 되어버리자, 2년이란 시간이 이렇게도 대단한 것들이었는지 새삼스레 놀라게 되었다.
물론 이 인연이란 것들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지 혹은 그렇지 않을지 지금으로선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2년이란 시간을 함께 보낸것도 작은 인연이라 생각하며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웃음. 미소. 악수. 그리고 안녕이라는, 잘 가라는, 혹은 잘 있으라는 서로에 대한 말들.
조금 더 그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 나 자신이 조금은 미안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한국에서도 모두들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Za, Bayart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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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KOICA MONGOLIA/KOICA/사서/몽골 | 2009/07/13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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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91662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발견한 곳. 도메인 주소가 바뀐거 같은데.. 암튼 반갑고 신기하다. 잘있지? 희근네.자꾸만 몽골 생각이 나는 요즘이다.. 그곳이 참 좋은 곳이었음을 알고 있었는데.. 있을때는 왜 그렇게 누리지 못했는지. 무엇이 그토록 맘을 조급하게 만들고, 힘들게 했던건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남는 시간들인것 같아. 초반에 정말 일이 없어서 이력서와 졸업증명서를 들고서 기관장들을 만나며 구직활동 아닌 구직활동을 벌여야 했던 시간들.. 지쳐버린 뒤로는 포기해버렸지만, 2년이 아쉽게 다가오는건 더 노력하지 않았다는 얘기인것만 같아서 씁쓸하네. 지난주 월요일에 국내복무마저 끝낸 지금, koica는 예전 일이고 몽골은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어. 아직 koica에 속한 신분이었을적엔 그래도, 적어도 몽골은 나에게 현재의 일이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추억이 되어버린것 같아 조금은 쓸쓸하다.. 한국생활은 조금 힘드네. 시간의 흐름을 마음이 쫓아오지 못하고 있어서 여전히 내 마음은 몽골에, 울란 구석구석에 남아있는데 말이다. 아직 몽골에 있는 네녀석이 조금은 부럽구나. 건강하렴. canaj bna..

    2009/09/16 01:42
    • Favicon of http://www.ulaan.net BlogIcon 근사서 2010/07/02 1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이 너무 늦었어요. 확인은 과연 하시련지.
      아무튼, 다시 만난 몽골은 어떠세요? 저는 뭐랄까. 한국으로 귀국하고 나선 몽골을 추억할 기력도, 정신도, 그 어떤 무엇 하나도 초반엔 전혀 남아있질 않았던거 같아요. 하지만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고 또 생활이 조금씩 안정되고 나니, 그때 보낸 시간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가 조금은 생기더군요.
      결론적으론 제가 각오했던 것보다도 그곳에서의 생활은 저에게 있어 많이 힘들었어요. 아시다시피 많이 넘어지고 깨지고 울기도 또 많이 울었었는데, 그럴때마다 한 번 두 번씩 그 고비를 참으며 버티다보니 어느덧 2년 6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더라구요. 할 수 있는 만큼 해봤고, 가 볼 수 있는 만큼 가봐서인지 전 더이상 몽골에서 보낸 시간들에 대해선 그 어떠한 후회나 미련따위는 없어요. 하지만, 오라버니와 마찬가지로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아련함이랄까. 알 수 없는 그런 애틋함 내지 애정 같은, 조금은 몽골에 대한 그런 묘하고도 비밀스런 감정은 저또한 갖게 되었습니다. 이건 그때 당시 같이했었던 우리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느낄 수 있는 감정일거라 생각을 해요.
      몽골에서 활동하시는 내내 마음 고생 많이 하셨었지요? 굳이 다 말하시지 않아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생활하시게 된 만큼 이번엔 미련이나 후회따위 남지 않도록 잘 생활하시다 오셨으면 좋겠어요. 힘든 일이 있어도 꿋꿋하게 버텨내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세요. 한국에서 응원하고 있을테니까요.

ㅇ 파견기간 : 2007.7.19. - 2009.7.18. (2년)
ㅇ 연장기간 : 2009.7.19. - 2010.1.18. (6개월)


올해 7월, 활동 종료를 앞두고 있었거늘 도무지 일이 끝나지 않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그리하여 사실 연장 이야기는 올해 초부터 계속해 나오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물론 연장의 필요성을 나 스스로가 많이 느끼고는 있었지만, 후임이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무엇보다도 내 개인적으론 더 나이를 먹기 전에 대학원에 진학하고자 하는 욕심이 컸던지라, 한편으론 한국에 빨리 귀국하고픈 마음이 조금은 더 컸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기관측에선 KOICA를 통한 후임의 부재와 더불어, 기관측의 현지 후임도 확정이 되지 않은터라 이래저래 더욱더 나의 연장을 원하게 되었고, 그간 쭉 진행해오던 사업 또한 마무리가 되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나의 연장은 기관측에서 보자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렇듯 몇 달동안 부담 백배로 관장님과 부관장님을 맞닿드려야 했으니, 나는 그저 한숨만 내리 쉴 뿐이었다. 사실 기관측의 요청에도 타당성이 있었으니 대놓고 거절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기관측의 요청은 최대 연장기한인 1년 연장. 그러나 나는 도무지 1년까지는 있을 자신이 없어 6개월만 더 있기로 마음을 먹었고, 지금 진행중인 한국자료실 관련 사업들을 어느정도 마무리 짓고, 또 운영도 좀 하다가 여력이 되면 교육도 하고, 인수인계도 확실히 하고. 물론 6개월이란 시간 동안 하기엔 빠듯한 일정이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한 업무의 진행도 개인적으론 이곳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과감히 6개월이라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연장 기간에 대한 후회는 없다.

그간 내가 해왔던 방식과 방법이 있었다면, 또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의 방식과 방법도 있을거라 생각한다. 어떤것이 옳고 그르고는 없다. 단지 상황이나 일에 맞추어 봤을때 보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이게 더 낫다라는 것은 있을 수가 있겠지만.
단지, 나는 내가 이곳에 더 있게 되면 내가 한 것들이 전부가 되어버릴까봐, 내가 한 방법들이 전부가 되어버릴까봐 두려운 것이 없지않아 있는것은 사실이다. 더불어 나 스스로도 나를 필요로 하는 이곳에 조금은 쉽게 안주해버릴까봐 두려운 것 또한 사실이라면 사실이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다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들을, 학업들을 진행해 나가고자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제는 지금 이곳에서의 일들을 정리할 때라면서.
그래, 난 남은 기간동안 내가 이곳에서 이루고자했던 것들을, 그리고 이곳에서 내가 꽃피워야할 것들을 활짝 피워, 달디 단 열매를 한가득 맺고야 말겠다. 이제는 지난 2여년 가까운 시간들을, 그 고난과 고통과 또 온갖 노력들을 비로소 꽃 피울때가 아닌가. 나의 그 결실이 이제는 맺어질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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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근황을 말하자면, 단 한 마디. 바로, "as busy as a bee!"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한국에서 온 외장하드 속 드라마나 영화도 제대로 보고있지 못하니까. 본다고쳐도 보다가 어느순간 난 정신을 잃은채 깊은 잠을 자고 있다고나 할까. ㅡ 그것도 몇 주째 이러고 있다.



딜레이 되었던 프로젝트도 다시 시작하게 되어 바쁜데, 거진 10개월만에 프로젝트 계획서를 다시 보려니 가격 변동이 생각보다 심해 많은 시간을 잡아 먹고야 말았다. 결국엔 가격조사부터 부분적으로 다시. 그리고 계속해 하고 있는 일들도 그렇고 그야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 정말이지 내 몸이 세개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해본다.

한 명의 김희근은 북한자료를 정리하고,
다른 한 명의 김희근은 남한자료를 정리하고,
또 다른 한 명의 김희근은 프로젝트를 하는거다.

일들이 너무 많은대다 정신도 없어 하나를 끝내고 다른 하나를 하고 싶은데, 사실 모든 일들이 맞물려 있기에 그리할 수가 없다. 동시에 진행을 해야되니 그야말로 나에게는 .......다. 난 시작한 것을 딱 끝내놓고(시작했으면 곧장 끝내야한다), 또다른 것들을 시작하는 타입이기에 지금의 진행 방식은 도무지 마음에 들지가 않는다.
그래도 웃으며 기운을 내려한다. 지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갈게 아니라면 조금만 더 참자고, 이제 이 고비만 넘기면 된다고 무수히도 끝없는 최면을 나 스스로에게 건다. 그리고 출국 전날과 당일 아버지와 함께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정말이지 난 지금의 이 모습으론 한국에 돌아갈 수가 없다. 나 스스로에게 다짐했고, 그 누구보다도 반대하셨던 아버지께 한 다짐이 있지 아니한가. 더불어, 이곳에서도 날 믿고 응원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고 싶다. 적어도 내가 다짐했고 약속했던 그 모든 것들이 옳은 이상은 반드시.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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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KOICA MONGOLIA/KOICA/사서/몽골 | 2009/05/1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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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는 참 대단해. 곧은 의지를 가졌어.

    2009/05/13 18:30

DTTC design exhibition 2009 (Spring)
http://juroweb.com/exhibition2009/



워커 홀릭 한정화 단원의 DTTC design exhibition 2009 (Spring) 온라인판.
KOICA Day엔 각 분야별 단원 및 그들의 대략적인 활동들이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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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KOICA MONGOLIA/KOICA/사서/몽골 | 2009/05/08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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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고 많았소.

    2009/05/08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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