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문학 수업에서 독문학을 전공하신 변 교수님은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Wating for Godot)'에 대해 나즈막히 말씀을 하셨다.
최근들어 왜 그때가 자꾸만 생각이 나는건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때와 같은 다소 나른한 날씨에 햇빛이 쏟아지는 바람부는 창가에 앉아 있노라면, 법과대에서 수업을 듣던 그때가 순간순간 떠오르며 잠깐동안은 마치 그때로 돌아간듯한 착각에 울컥한 기분이 들때도 있다. 점심시간 후의 수업이라 학생들은 나른함을 이겨내지 못해 잠을 청했었고, 나와 친구는 맨 앞자리에 앉아 펜을 굴려가며, 또 졸린 눈을 비벼가며 교수님의 이야기들을 가만히 듣다 문득 서로 마주보곤 빙그레 웃곤 했었다.
아마 내 인생상에서 가장 행복했던때라 그런것일까?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뒤돌아보면, 나는 그 어느때보다도 내가 대학을 다니던 그때가 내 인생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였던것 같다.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었고, 충분히 내가 무언가를 선택할 수가 있었고, 또 충분히 나의 실수도 눈감아질 수가 있었다.
마실 수 있을만큼 술도 마셔봤고, 자지 않을 수 있을 만큼 몇 일 밤낮을 지새어도 봤고, 또 크게 웃어 볼 수 있을만큼 웃어도 보았고, 반대로 크게 화를 낼 수 있을만큼 화도 내 보았다. 눈물을 글썽이며 이젠 한계라고 생각할만큼 공부를 했던 순간도 있었고, 어쩜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정도로 지독히도 게으름을 피운 순간 또한 있었다. 이런 나에겐, 그때의 나에겐 알 수는 없지만 '희망'이란 것이 있었고,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때 나또한 느낄 수가 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난 후, 지금 이 순간을 뒤돌아보면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반짝거림이 그때만큼 느껴지지 않으니, 조금은 울적해진다.
늦은밤 술자리에서 불현듯 문자를 보내 안부를 묻는 동기들.
함께하던 때가 그리워, 왠지모를 정이란 것에 그리워 한참을 반갑게 문자를 주고 받지만, 마지막 문자를 보내고 마지막 문자를 받을때면 한없이 가슴 한 켠이 뻥 뚫린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도 역시 어쩔 수가 없다.
한없이 높게만 바라보았던 예비역 선배들이 이젠 내 동기들이라니, 또 벌써 졸업이라니. 이것 참, 믿기지가 않는다면 다들 큰 소리로 웃으며 나에게 야유를 보내겠지? 하지만 난 아직 내 동기들이 그저 마냥 어린 대학 새내기인것만 같은데 말이다.
아무튼. 한국으로 돌아가면, 학교에 찾아갈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본관의 카페에서 블루베리 머핀. 호두 머핀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리모델링한 중앙도서관으로 가서 이곳저곳을 샅샅히 훑어보다 선배님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그리곤 학생회관에 있는 학교의 명물 패스트푸드 점에서 스파게티와 치킨 버거, 또 피자를 먹는거다. 또 나를 한껏 우울하게 만들었던 사범대에 잠깐 들려 다시금 복수전공의 악몽들을 조금 떠올리다가 단대로 향해 아직도 운동권일 사회대일지 각가지의 pc(자보)도 보고, 더불어 학회실로 들어가 구석에서 우리 동기들의 '먹.부'도 찾아 읽어보고. 그리고나서 조교실로 찾아가 시시껄렁한 농담들을 조교선배와 주고 받다가 건너편 연구동을 바라보며 누구 교수님 집에 가셨네, 아직 계시네 술이나 한 잔 할까 이야기도 해보고... 마지막엔 늦은 밤 학교 근처의 단골인 전통술집에서 늘 시켜 먹던 안주를 시켜 새벽까지 사람들과 이야기 꽃을 피우다 먼 곳에서 오신 선배님들까지 만나는 것.
아, 이건 정말이지 모두 꿈같은 이야기려나.
그런데 웃음이 난다.
옛생각에 조금은 울적해졌다가 다시 기분이 나아지는 나를 보고 있노라니 웃음이 난다.
내가 늘상 중얼거리는, '난 고도(Godot)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
문득 어쩌면 내가 고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더더욱 웃음이 났다. 이런 생각이 들자, '아차,'하는 생각에 '역시, 나는 아직 어리석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사람들이 기다리는, 그리고 나또한 기다리는 그런 고도는 어쩌면 내 자신 일수도 있었는데, 나는 왜 지금껏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자신이 그렇게도 애타게 기다리던 고도였거늘, 스스로가 스스로를 못알아 본 베케트의 희곡 속 주인공처럼 나또한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다시금 나의 어리석음을 조금 꾸짖고, 또 나름대로의 운명론을 중얼거려 보았다.
어쩌면 이런 나를 스스로 깨우치고자 그때의 생각이 이리도 많이 났던 것이고,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지금 바로 내 발 아래 펼쳐져있는거라고. 단지, 내 스스로가 준비되어 다가오길 나는 그동안 기다렸을뿐, 내가 아닌 고도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특별한 무언가가 인생상에 존재한다고는 믿는다. 반대로 나아가도 끊임없이 나에게로 돌아오는 부메랑과도 같은 것들이 적어도 나에겐 있었고, 또 톱니바퀴처럼 무언가가 딱 들어맞지가 않아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었던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역시 불가능이란 없다고, 운명이 존재한다고한들 이를 거스를 능력 또한 우리 인간들에게 있다고 생각을 한다. 단지 그렇게하기까지 크나 큰 고통과, 시련과, 또 이겨내야할 장벽들이 더욱 많은 것이다. 그래서 인생을 쉽게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또 시련 끝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혹은 성공도 실패도 아닌 평범한 수준에서 그만그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는것이라고 적어도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한다.
명심해야 할 것은, 자신이 원하던 모습의 고도(Godot)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지금의 나는 몹시 망설여지고, 또 조금은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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