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희곡이라 볼 수 있는 고도를 기다리며(Wating for Godot).
이 작품은 베케트에게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작품으로 부조리극의 대명사이다.
[사진] Depaul University의 The Theatre School,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Photo by Daniel Zacek
Waiting for Godot, 2000-2001 Season
ㅡ 고도를 기다리며의 첫 장면. 신발을 벗으려는 에스트라공과 그에게 말을 거는 블라디미르.
생각해보니, 난 이 희곡만 최소 3번 이상 꼼꼼히 정독한 것 같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작가가 어떠한 생각으로, 어떠한 것들을 고백하고자, 또 어떠한 것들을 이 세상에 표출해내고자 이 희곡을 썼는질 곰곰히 생각해보곤 했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말이다. 하지만, 늘상 알듯말듯 100% 그의 마음을 읽어내진 못한다.
본래 이 희곡에 대한 해석자체가 너무나도 각양각색으로 달라질 수 있기에 그러리라 생각하지만, 어쩌면 작가는 아무런 생각없이 그 희곡을 썼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게 되었다. 나 또한, 혹은 다른 사람들 또한, 무언가를 반드시 글 속에서 나타내고, 또 감동을 주고, 더불어 사람들로 하여금 진지하게 그 어떠한 것들을 생각하게끔(혹은 고민하게끔) 만들고자 치밀한 공상 속 음모이론을 항상 펴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정말 이 말 그대로라면, 그렇다면, 독자들이나 평론가들의 해석은 그 작가에게있어 상당한 아이러니함과 동시에 일종의 패배감으로도 자리를 잡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독자들과 평론가들은 그 작품의 확대해석 내지 잘못된 해석도 모자라 본 의미를 전혀 꿰뚫고있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작가가 A를 생각하고 그 작품을 썼다고 한들, 대중적으로 크게 지지를 받고, 또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의 해석이나 평론이 곧 A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본다. 오히려 B라고 해석한 그것이 작가가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선 더 옳다고, 훌륭하다고, 정말 그렇다고 평가되어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즉, 이를 A다 아니다로 말할 수 있는건, 또 그 작품 그 자체를 나타내고자 한 100% 그대로로 확실히 즐길 수 있는건 바로 작가 자신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웃음이 났다. 그리고 하나의 작품 속에서 작가가 나타내고자했던, 또 그러한 작가의 생각을 완벽히 읽어내는 것은 역시 무던히도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를 만날 수 있다면야 인터뷰를 통해서 그 작가의 의도나 생각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는 있겠지만, 작가가 이미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면, 그 죽은 작가를 무덤 속에서 일깨워 물어볼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한 일이지 아니한가. 이런 우리들을 무덤속에서 작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내 작품을 감히 그 따위로 해석하고, 평가를 내리다니!!! 당신은 엉덩이로 글을 읽었소?!"
ㅡ라고 말하며, 무덤을 박차고 나올 외곩수 작가들이 상상되어졌다.
역시 웃음이 났다. 그리고 그 웃음과 동시에 두려움도 같이 밀려왔다. 그동안 내가 배운, 그리고 내 나름대로 해석한 각각의 작품 속 해석들이 잘못된 오류 그 자체는 아닐까란 생각에 말이다. 이런 생각들이 밀려들자, 문득 지금부터라도 독심술을 연마해 그동안 내가 읽어온 작품들을 다시 읽어봐야 하는건 아닐까란 생각마저도 들었다. 나의 작품이 아닌 이상, 어렵더라도 그 작품의 본질을 꿰뚫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과 욕심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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