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케트'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3/27 작가의 의도 vs 독자와 평론가의 각기 다른 작품해석
  2. 2008/03/26 고도를 기다리며(Wating for Godot)

가장 좋아하는 희곡이라 볼 수 있는 고도를 기다리며(Wating for Godot).
이 작품은 베케트에게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작품으로 부조리극의 대명사이다.

 

[사진] Depaul University의 The Theatre School,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Photo by Daniel Zacek
Waiting for Godot, 2000-2001 Season
ㅡ 고도를 기다리며의 첫 장면. 신발을 벗으려는 에스트라공과 그에게 말을 거는 블라디미르.

생각해보니, 난 이 희곡만 최소 3번 이상 꼼꼼히 정독한 것 같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작가가 어떠한 생각으로, 어떠한 것들을 고백하고자, 또 어떠한 것들을 이 세상에 표출해내고자 이 희곡을 썼는질 곰곰히 생각해보곤 했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말이다. 하지만, 늘상 알듯말듯 100% 그의 마음을 읽어내진 못한다.
본래 이 희곡에 대한 해석자체가 너무나도 각양각색으로 달라질 수 있기에 그러리라 생각하지만, 어쩌면 작가는 아무런 생각없이 그 희곡을 썼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게 되었다. 나 또한, 혹은 다른 사람들 또한, 무언가를 반드시 글 속에서 나타내고, 또 감동을 주고, 더불어 사람들로 하여금 진지하게 그 어떠한 것들을 생각하게끔(혹은 고민하게끔) 만들고자 치밀한 공상 속 음모이론을 항상 펴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정말 이 말 그대로라면, 그렇다면, 독자들이나 평론가들의 해석은 그 작가에게있어 상당한 아이러니함과 동시에 일종의 패배감으로도 자리를 잡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독자들과 평론가들은 그 작품의 확대해석 내지 잘못된 해석도 모자라 본 의미를 전혀 꿰뚫고있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작가가 A를 생각하고 그 작품을 썼다고 한들, 대중적으로 크게 지지를 받고, 또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의 해석이나 평론이 곧 A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본다. 오히려 B라고 해석한 그것이 작가가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선 더 옳다고, 훌륭하다고, 정말 그렇다고 평가되어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즉, 이를 A다 아니다로 말할 수 있는건, 또 그 작품 그 자체를 나타내고자 한 100% 그대로로 확실히 즐길 수 있는건 바로 작가 자신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웃음이 났다. 그리고 하나의 작품 속에서 작가가 나타내고자했던, 또 그러한 작가의 생각을 완벽히 읽어내는 것은 역시 무던히도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를 만날 수 있다면야 인터뷰를 통해서 그 작가의 의도나 생각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는 있겠지만, 작가가 이미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면, 그 죽은 작가를 무덤 속에서 일깨워 물어볼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한 일이지 아니한가. 이런 우리들을 무덤속에서 작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내 작품을 감히 그 따위로 해석하고, 평가를 내리다니!!! 당신은 엉덩이로 글을 읽었소?!"
ㅡ라고 말하며, 무덤을 박차고 나올 외곩수 작가들이 상상되어졌다.
역시 웃음이 났다. 그리고 그 웃음과 동시에 두려움도 같이 밀려왔다. 그동안 내가 배운, 그리고 내 나름대로 해석한 각각의 작품 속 해석들이 잘못된 오류 그 자체는 아닐까란 생각에 말이다. 이런 생각들이 밀려들자, 문득 지금부터라도 독심술을 연마해 그동안 내가 읽어온 작품들을 다시 읽어봐야 하는건 아닐까란 생각마저도 들었다. 나의 작품이 아닌 이상, 어렵더라도 그 작품의 본질을 꿰뚫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과 욕심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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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_ 글·생각·소식 | 2009/03/27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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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문학 수업에서 독문학을 전공하신 변 교수님은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Wating for Godot)'에 대해 나즈막히 말씀을 하셨다.
최근들어 왜 그때가 자꾸만 생각이 나는건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때와 같은 다소 나른한 날씨에 햇빛이 쏟아지는 바람부는 창가에 앉아 있노라면, 법과대에서 수업을 듣던 그때가 순간순간 떠오르며 잠깐동안은 마치 그때로 돌아간듯한 착각에 울컥한 기분이 들때도 있다. 점심시간 후의 수업이라 학생들은 나른함을 이겨내지 못해 잠을 청했었고, 나와 친구는 맨 앞자리에 앉아 펜을 굴려가며, 또 졸린 눈을 비벼가며 교수님의 이야기들을 가만히 듣다 문득 서로 마주보곤 빙그레 웃곤 했었다.

아마 내 인생상에서 가장 행복했던때라 그런것일까?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뒤돌아보면, 나는 그 어느때보다도 내가 대학을 다니던 그때가 내 인생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였던것 같다.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었고, 충분히 내가 무언가를 선택할 수가 있었고, 또 충분히 나의 실수도 눈감아질 수가 있었다.
마실 수 있을만큼 술도 마셔봤고, 자지 않을 수 있을 만큼 몇 일 밤낮을 지새어도 봤고, 또 크게 웃어 볼 수 있을만큼 웃어도 보았고, 반대로 크게 화를 낼 수 있을만큼 화도 내 보았다. 눈물을 글썽이며 이젠 한계라고 생각할만큼 공부를 했던 순간도 있었고, 어쩜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정도로 지독히도 게으름을 피운 순간 또한 있었다. 이런 나에겐, 그때의 나에겐 알 수는 없지만 '희망'이란 것이 있었고,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때 나또한 느낄 수가 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난 후, 지금 이 순간을 뒤돌아보면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반짝거림이 그때만큼 느껴지지 않으니, 조금은 울적해진다.

늦은밤 술자리에서 불현듯 문자를 보내 안부를 묻는 동기들.
함께하던 때가 그리워, 왠지모를 정이란 것에 그리워 한참을 반갑게 문자를 주고 받지만, 마지막 문자를 보내고 마지막 문자를 받을때면 한없이 가슴 한 켠이 뻥 뚫린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도 역시 어쩔 수가 없다.
한없이 높게만 바라보았던 예비역 선배들이 이젠 내 동기들이라니, 또 벌써 졸업이라니. 이것 참, 믿기지가 않는다면 다들 큰 소리로 웃으며 나에게 야유를 보내겠지? 하지만 난 아직 내 동기들이 그저 마냥 어린 대학 새내기인것만 같은데 말이다.

아무튼. 한국으로 돌아가면, 학교에 찾아갈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본관의 카페에서 블루베리 머핀. 호두 머핀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리모델링한 중앙도서관으로 가서 이곳저곳을 샅샅히 훑어보다 선배님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그리곤 학생회관에 있는 학교의 명물 패스트푸드 점에서 스파게티와 치킨 버거, 또 피자를 먹는거다. 또 나를 한껏 우울하게 만들었던 사범대에 잠깐 들려 다시금 복수전공의 악몽들을 조금 떠올리다가 단대로 향해 아직도 운동권일 사회대일지 각가지의 pc(자보)도 보고, 더불어 학회실로 들어가 구석에서 우리 동기들의 '먹.부'도 찾아 읽어보고. 그리고나서 조교실로 찾아가 시시껄렁한 농담들을 조교선배와 주고 받다가 건너편 연구동을 바라보며 누구 교수님 집에 가셨네, 아직 계시네 술이나 한 잔 할까 이야기도 해보고... 마지막엔 늦은 밤 학교 근처의 단골인 전통술집에서 늘 시켜 먹던 안주를 시켜 새벽까지 사람들과 이야기 꽃을 피우다 먼 곳에서 오신 선배님들까지 만나는 것.
아, 이건 정말이지 모두 꿈같은 이야기려나.

그런데 웃음이 난다.
옛생각에 조금은 울적해졌다가 다시 기분이 나아지는 나를 보고 있노라니 웃음이 난다.

내가 늘상 중얼거리는, '난 고도(Godot)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
문득 어쩌면 내가 고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더더욱 웃음이 났다. 이런 생각이 들자, '아차,'하는 생각에 '역시, 나는 아직 어리석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사람들이 기다리는, 그리고 나또한 기다리는 그런 고도는 어쩌면 내 자신 일수도 있었는데, 나는 왜 지금껏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자신이 그렇게도 애타게 기다리던 고도였거늘, 스스로가 스스로를 못알아 본 베케트의 희곡 속 주인공처럼 나또한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다시금 나의 어리석음을 조금 꾸짖고, 또 나름대로의 운명론을 중얼거려 보았다.

어쩌면 이런 나를 스스로 깨우치고자 그때의 생각이 이리도 많이 났던 것이고,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지금 바로 내 발 아래 펼쳐져있는거라고. 단지, 내 스스로가 준비되어 다가오길 나는 그동안 기다렸을뿐, 내가 아닌 고도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특별한 무언가가 인생상에 존재한다고는 믿는다. 반대로 나아가도 끊임없이 나에게로 돌아오는 부메랑과도 같은 것들이 적어도 나에겐 있었고, 또 톱니바퀴처럼 무언가가 딱 들어맞지가 않아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었던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역시 불가능이란 없다고, 운명이 존재한다고한들 이를 거스를 능력 또한 우리 인간들에게 있다고 생각을 한다. 단지 그렇게하기까지 크나 큰 고통과, 시련과, 또 이겨내야할 장벽들이 더욱 많은 것이다. 그래서 인생을 쉽게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또 시련 끝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혹은 성공도 실패도 아닌 평범한 수준에서 그만그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는것이라고 적어도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한다.
명심해야 할 것은, 자신이 원하던 모습의 고도(Godot)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지금의  나는 몹시 망설여지고, 또 조금은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Category_ 글·생각·소식 | 2008/03/26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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