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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21 한국도서관협회, '도서관문화' 2008. 05월분 원고 - 한 번의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6,144시간째 나는 몽골 국립도서관과 숨 쉬고 있다 (2)
  2. 2008/04/29 한국도서관협회, '도서관문화' 2008. 04월분 원고 - 한 번의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6,144시간째 나는 몽골 국립도서관과 숨 쉬고 있다 (1)
  3. 2008/02/22 한국도서관협회, '도서관 문화' 원고 청탁

※ 한국도서관협회, '도서관문화' 2008. 05월호,
사서가 들려주는 해외 도서관 이야기 ㅡ 몽골 국립도서관 / 김희근




한 번의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6,144시간째 나는 몽골 국립도서관과 숨 쉬고 있다 (2)


몽골 국립도서관 한국학 전담 사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한국해외봉사단  김희근




▒▒▒ 몽골 국립도서관 알아가기

몽골 국립도서관(The National Library of Mongolia)은 몽골 교육문화과학부(Ministry of Education Culture And Science)에 소속된 몽골의 국가대표 도서관이다. 또한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 최중심지에(정부청사가 있는 수흐바타르 광장에서 도보 5분 거리) 위치하고 있으며, 도서관의 규모나 사회적 위치 등으로 말미암아 여러 학문에 대한 자료와 정보, 더불어 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함은 물론이다. 따라서 1921년 과학학술연구원(Mongolian Academy of Science) 산하에 설립된 이래, 현 몽골어와 티베트어, 산스크리트어, 만주어, 러시아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외에도 인도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등 여러 언어로 쓰여진 각종 서적과 불교 경전들을 약 3백만권 정도 소장하여 이용자들에게 서비스하고 있다.
또한 2008년 1월 현재 사서직 56명과 일반직 34명으로 총 90여명이 근무하고 있는 몽골 국립도서관은 관장, 부관장 아래 자료기획과, 서고보존과, 열람서비스과, 정보기술교육과, 자료보수과, 시설관리과의 여섯 부서로 나뉘어져 각각의 부서에는 해당 업무를 총괄하는 부장 1인에 사서 혹은 일반직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더불어 열람실은 일반 열람실, 학술 열람실 외에 신문·잡지 열람실과 터키 열람실 등 4개의 열람실이 존재하며, 서고의 경운 몽골서고(2개), 서양서고, 동양서고, 티베트서고, 필사 및 불교경전서고의 여섯 개의 나뉘어져 폐가식으로 운영되어지고 있다.

하나. 숨겨진 놀라운 보물창고, 몽골 국립도서관

몽골 국립도서관은 몽골인들의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값진 각종 서적들을 2층의 박물관(Museum of Rare and Valuable Books)에 별도로 보관하고 있는데, 한국에선 박물관 등지에서 볼만한 자료이겠지만 몽골에선 박물관이 아닌 국가대표 도서관 내의 박물관에 이를 소장, 또 보관 및 전시를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박물관을 대표하는 소장 자료로는 티베트어와 몽골어로 완벽하게 보존 되어있는 고대 인도의 철학, 의학, 예술, 음악, 과학의 다섯 학문을 망라한 간조르(Kanjur) 109권과 단조르(Tanjur) 226권이다. 이와 더불어 기원전에 살았던 고대 인도의 철학자 나가르조나이가 읽었다는 종려나무 잎사귀 위에 란즈 문지(Lanz Script)로 쓰여진 자담바(Jadamba; Eight Thousand Verses), 또 몽골인들의 소중한 문자기념물인 오이고르(Uighur), 두르블징(Square), 가릭(Galig; transliteration), 소욤보(Soyomb), 그 외에 선명한 문자로 선조들에 의해 기록되어진 여러 책들과 경전들을 언급할 수가 있다.
특히 티베트에도 남아 있지 않은 수많은 경전들이 이곳에 소장 되어있어 많은 불교 학자 및 수도승들은 매해 자신의 연구와 수도(修道)를 위해 이곳을 찾기도 하며, 더불어 이러한 값진 자료의 영구적 보존과 연구 및 활용을 위해 2005년부턴 미국과 함께 티베트 서적들과 경전을 DB화 하는 Asian Classics Input Project(ACIP)를, 2006년부턴 인도와 함께 간조르와 단조르를 DB화 하는 The Kanjur and Tanjur Digitization Project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박물관에 소장된 자료는 아니지만, 동양서고에 있는 수백권의 만주서적들 또한 그 값진 소장가치로 이를 보기위해 몽골을 찾는 학자가 연신 끊이지 않을 정도로 한여름의 성수기가 되면 도서관은 분주해진다.

두울. 몽골 국립도서관, 이용자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사서가 가져야할 수많은 마음가짐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도서관을 처음 찾은 이용자를 떠올린다면, 물론 낯선 환경에 다소 어리둥절하겠지만 이내 적응하여 큰 불편함 없이 원하는 정보와 자료를 얻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내가 사서라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이용자라는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는데, 이것은 이곳에 파견되고 나서도 자꾸만 조급해지는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가장 큰 스스로의 안전장치였다.
도서관에서 지나가는 이용자가 나에게 다가와 물을 수 있는 것, 그리고 누군가가 내가 파견된 도서관에 대해 궁금해 한다면 간략하게 혹은 깊이 있게 내가 설명해 줄 수 있는 것 등. 이런 것들을 하나 둘 씩 떠올리다보면 조급해져가는 마음은 사라지고 '아, 그래. 일단 차근차근 알아가는 것이 우선이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서 일단 이용자들이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질문들을 생각했고, 또 직접 해당 사서들에게 물으면서 답을 채워 나갔다. 도서관에 대한 팜플렛이 있다고는 해도 이러한 내용을 담은 '이용안내책자'는 없었을 뿐더러 국립도서관의 홈페이지 또한 연신 구축중이었기에 해당 업무를 하는 사서들에게 직접 묻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를 들자면 계절과 평일, 주말에 따른 도서관 개관 및 폐관 시간, 그리고 목록카드와 컴퓨터를 이용한 자료의 검색방법, 열람실별 특이사항, 또 도서관 이용자증(대출증) 만들기, 마지막으로 그 외 사서의 각종 업무적인 세세한 질문 등 많은 사서들을 귀찮게 했다면 귀찮게 했을 것이다. 처음엔 나조차도 이러한 것들이 꽤 피곤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도서관의 업무상에 있어서나 직원들과의 관계상에 있어 꽤 큰 긍정적인 효과를 얻게 되었다. 더불어 최소 그 어떤 누구 앞에서나 자연스레 내가 속한 국립도서관에 대해 소개를 할 수 있을 만큼은 알게 되어, 내가 속한 기관을 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또 다른 이들에게도 작지만 큰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세엣. 개가식 시스템과 관외대출로의 전환

이미 앞선 지난호의 글에서 잠깐이나마 언급 했다시피 몽골 국립도서관은 모든 서고가 폐가식으로 운영되고 있고, 또 관내대출만을 허용한다. 하지만 국립도서관을 포함한 울란바타르의 공공도서관 세 곳은 현재 개가식 시스템 도입과 더불어 관외대출로의 전환을 앞두고 많은 변화와 각종 방법적인 문제들을 꾀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 예로 일부 서고를 개가식으로 운영하고 있다든지 혹은 전면 개가식으로의 전환 사업을 이미 시작했다든지 등을 손꼽을 수가 있는데, 이는 몽골 국립도서관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2010∼2011년경 쿠웨이트의 지원으로 도서관 신축 및 이전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기에 이때에 맞춰 도서관의 모든 폐가식 시스템을 개가식으로 전환하고, 관외대출 또한 허용할 계획으로 타 도서관에 비해 전환이 다소 늦다면 늦을 예정이다. 이렇듯 타 도서관에 비해 전환이 느려지게 된 이유는, 현재 국립도서관의 건물 자체가 폐가식 시스템에 걸맞게끔 좌·우측의 폐쇄된 공간을 기축으로 서고가 자리 잡고 있고, 오래된 건물의 높은 천장을 이용해 포화상태인 서고를 상부와 하부로 나누어 2층으로 만들어 놓았기에 천장까지 빼곡하게 솟아있는 수많은 서가들과 상부(2층)의 나무판자 바닥으로 하여금 이용자들의 서가접근 및 자료열람이 원활할래야 원활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각종 장비 구입과 더불어 관외대출을 앞둔 각종 전산화 시스템의 대상자료 확장 및 시스템의 보수, 또한 이에 따른 사서들의 재교육문제 등 이를 시급하게 추진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문제점들과 이에 대비해야할 것들이 많기에 다소 전환이 느리더라도 확실하게 대비하여 추진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행할 전문 인력이 극도로 부족하고, 또한 자금이 제한적이기에 아직도 풀어야할 문제는 여전히 많은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네엣. 사회주의와 그들의 민족성향, 외국인에겐 힘들다?

1990년 몽골은 러시아 다음으로 사회주의에서 민주주의로의 사회체재 개혁을 일군 나라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계층 자체가 사회주의 체제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고, 또 그러한 분위기에 아직도 익숙하다보니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모든 사람들의 업무는 확실하게 구분되어져 있고, 또 자신이 맡은 업무 외에는 다른 직원에게 그 어떠한 것을 부탁한다거나 또 해준다거나 하는 일이 극히 드물다. 그렇기에 그 일을 맡은 사람이 자리에 없으면 이 일을 대신해서 해줄 사람도 당연히 없는 것이며, 또 그 사람이 휴가를 갔거나 휴직을 했을 경우에도 이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용자들에게선 불평·불만이 나오기도 하지만, 직원들로나 이용자들로나 이는 당연한 일로 치부되어 불평·불만도 한때에 그치고 만다. 더군다나 어지간해선 계약직 등의 대체 인력도 보충하질 않으니, 업무의 확실한 구분은 있지만 업무의 확실하고도 원활한 흐름은 꽤나 부족해 여름휴가 막바지쯤 기관에 첫 출근을 했던 나로썬 처음부터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업무의 딜레이를 한 달 가까이 직접 경험해야만 했다. 그리고 6월부터 시작된 직원들의 휴가는 서로 번갈아가며 9월 말까지 계속 되기에 10월이 지나고 나서야 그나마 안정궤도에 오를 수가 있었고, 그때는 이미 추운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였다.
더불어 유목민의 특성상 정확한 시간 약속을 잡거나 또 이를 꼭 지켜야한다는 생각이 크게는 없기에 모든 일에 있어 매우 느긋한데, 이 때문에 많은 외국인들은 그들과 함께 일을 하며 때때로 곤욕을 치루기도 한다. 누누이 들어왔던 이야기였지만, 이는 매우 중요한 순간과 업무에서도 마찬가지로 흘러가니, 같이 일하는 몽골인들도 때론 부끄러워하며 '몽골인과 같이 일하기 힘들죠?'라고 수줍게 말을 건낼 정도이다. 2번 3번씩 회의나 업무들이 미뤄지는 것은 기본이고 길게는 한 달, 두 달, 세 달까지도 간단한 일들이 처리가 안 된 채 미뤄지다 보니 처음엔 화가 나기도 했었던 일들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아, 이번에도?'라며 웃을 수 있을 만큼 지금은 여유가 생기기도 했다. 처음엔 이런 분위기를 바꿔보려고도 했지만 이 나라 사람들의 전반적인 성향이다보니 이내 불가능한 일이라 판단되었고, 그저 나 스스로가 이들을 이해를 하고 이런 분위기에 적응을 하여 유동성 있게 움직이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단지, 그래도 어떠한 점에선 '이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줘야 한다.'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내가 맡은 일들에 대해서는 마감 기한을 지키고, 또 약속을 반드시 지키도록 노력을 하였다. '저 사서와 일을 하면 일이 쉽고 재밌다, 이 일은 저렇게도 할 수기 있는 것이구나.'라고 스스로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게끔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도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섯. 사회주의의 긍정적인 면, 누구나 동등하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게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도 인생을 즐기며 재미나게 살길 원하는 사람들이기에 어떤 한 사람의 인생을 놓고 보면 참으로 즐겁지 아니할 수가 없다. 일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있어 일은 한 부분으로 생각하기에 오히려 느긋하고도 매우 안정되어 보이는 것. 물론 일에 대한 책임감과 약간의 의무감은 필요하겠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국 사람들은 이것이 필요 이상으로 지나친 것 같다. 나 역시 마찬가지라 몽골인들은 처음에 나를 무척이나 걱정했었고, 또 지금도 걱정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정신적으로나 심적으로 어떤 면에 있어서는 한국에 있을 때보다도 조금은 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더불어 물론 어느 정도의 선이 존재하기는 존재하지만, 한국만큼 사서직과 일반직, 특히 시설관리직에 있는 직원들과의 거리는 이곳에서 멀지가 않다. 각종 도서관 내의 파티나 행사에 모든 직원들은 똑같이 초대를 받으며, 가령 높은 직책에 있는 직원이라 할지라도 도서관 내의 모든 직원들과 동등하게 같은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또 스스럼없이 어울리기도 어울린다. 사실상 신분의 지위에 따라 차등대우가 되는 한국과는 달리 모든 구성원이 동등한 위치에서 동등한 권리로 있는 이곳은 나에게 있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고, 그야말로 사회주의자들의 소리 높여 외쳤을법한 사회주의의 꽤 큰 긍정적인 면 또한 직접 보고 느끼게 된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로 바뀌면서 빈부의 격차로 인해 계급 아닌 계급이 이곳에서도 점차 생겨나고 있지만, 이러한 점에 있어서만큼은 앞으로도 크게 바뀌지 않게 되길 개인적으론 무척이나 바라고 있다.


▒▒▒ '한국자료실 : Window on KOREA' 설치사업

지난 1월, 한 통의 E-Mail이 우리 도서관을 뒤흔들었다. 다름 아닌, 한국 국립중앙도서관의 '해외도서관 한국자료실 : Window on KOREA 설치 사업'에 2008년, 우리 도서관이 선정된 것. 덕분에 아킴(G. AKIM) 관장님과 뱜바수렝(D. Byambasuren) 부관장님을 비롯한 한국학 담당 사서인 나, 그리고 한국 국립중앙도서관과 특별한 인연을 맺은 바 있는 뽀양히식(D. Byunhishig) 사서는 너무나 큰 기쁨에 연일 함박웃음을 내지을 수밖에 없었다.
몽골에서 각종 문화적으로나 국가 개발 모델의 지향점으로나 앞 다투어 최대의 관심을 보이고 있는 나라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 바로 우리나라다. 따라서 몽골의 거의 모든 대학교에는 한국어학과가 설치되어 있음은 물론이요, 이 학과의 인기는 연일 최고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으며, 이 밖에도 한국에서 온 물건이라면 그 어떠한 것이든 최고의 품질과 디자인을 가진 것으로서 바로 동이 날 지경이니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몽골 내에서의 한류는 엄청난 것임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정작 몽골 내에서는 이러한 몽골인들의 관심과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그 어떠한 것들도 존재하지가 않았으니, 각 도서관 내의 그럴듯한 '한국자료실'은 물론이요, 한국 정부와 연계된 '한국 문화원' 또한 아직은 설치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다보니 몽골인들은 텔레비전의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만 단편적인 한국 문화를 접할 뿐, 한국의 역사나 다양한 각계각층의 문화, 그리고 그 밖의 전문적인 정보들은 접하기가 쉽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그 누구보다도 이곳 현장에서 몸소 느끼고 있었던 나였기에 다름 아닌 몽골 국가대표 도서관에 한국자료실이 설치되어진다는 것은 사서이자 한국인으로써 가히 대단한 소식이오, 또한 큰 기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하나의 완벽한 자료실이 만들어지기까지 투입되어지는 노력과 시간, 그리고 인력과 자금 등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할 터. 결국 길고 긴 고민 끝에 한국자료실에 대한 설치사업을 극대화하기위해 한국 국립중앙도서관의 한국자료실 설치사업을 진행함과 동시에 내가 속한 대한민국 정부 산하 해외원조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현장지원사업(이른바 프로젝트)을 MARC를 도입한 신(新)도서 프로그램 개발과 전산화 구축으로 그 방향을 잡고 이를 함께 진행해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로 하였다. 현재의 도서 프로그램인 'Catalogue'는 MARC가 적용되지 않아 서지의 반·출입이 자유롭지 못하고, 이용자들의 자료 검색과 활용을 넘어서 사서들의 DB 구축 또한 기초적이고도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불편함이 꽤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재는 폐가식 시스템에 관내대출만을 허용하고 있지만, 2010∼2011년경의 도서관 신축·이전 후에는 전면적인 개가식 시스템에 관외대출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기에 현재 국립도서관으로선 전산화 프로그램의 개발 및 보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도 시급한 문제라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한국자료실 설치사업에 대해 거는 기대는 다들 남다르며, 한국 영화진흥위원회 및 각종 기관에서의 기증 프로그램과 원조를 큰 힘으로 내실 있고도 확실한 한국학 전문 자료실의 위상을 이곳 몽골에 정립하기위해 분주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 지금, 몽골 국립도서관에서의 나의 하루는 숨 가쁘다

몽골에는 이런 말이 있다.
"두려우면 하지 말고, (일단) 하면 두려워 마라!"
개인적으론 이 말을 처음 소리 내서 읽었을 때,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지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었다. 맑은 날이 있다면 궂은 날도 있는 법. 궂은 날씨 속에 이런 말을 되뇌이게 된 이유도 있겠고, 또 그때의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었기에 그런 감정에 나도 몰래 휩싸이게 된 것 일수도 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또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어려움이 있고, 또 그만큼 많은 기쁨이 함께 한다. 행복은 두 배로, 슬픔도 두 배로 그들과 함께 느끼는 감정이 참으로 크고도 큰 것이다.
이제 나는 2년이란 시간 중에서 절반에 다다르고 있고, 그렇기에 내가 무언가를 이룬 것보다도 이제야 내가 속한 기관을 제대로 이해하며 본격적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나는 결코 내가 그 일을 다 끝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이곳의 모두와 함께 하는 일이고, 내가 이곳을 떠난 뒤에도 그들에게 남겨져 있을 그 무언가가 존재할 것이기에, 결국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이곳을 떠난 후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큰 포부만이 전부였던 때도 있었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꼭 번듯하게 일궈내야지만 이곳에 온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고, 이런 연유로 나는 하루하루 무언가에 쫓기듯 너무나도 조급하게만 모든 것들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이 보낸 휴대폰의 짤막한 문자메시지 하나에서, 또 밤늦은 야근과 주말 출근으로 지쳐있는 나에게 건네주는 쿠키 몇 조각과 시원한 음료수에서 내가 이곳에 온 진정한 의미를 찾곤 한다. 그들과 나는 어떤 진실 된 소통이란 것을 하고 있고, 또 서로를 이해해가면서 이렇듯 함께 하고 있지 않은가.
이곳에 오기까지 또 지금처럼 많은 일들을 하게 되기까지. 이 모든 것들은 나에게 있어 결코 쉬운 결정들이 아니었고, 그렇기에 많은 두려움을 느껴야만 했다. 또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도 어떠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지금, '현재'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불어 지금, 몽골 국립도서관에서의 나의 하루는 숨 가쁘지 아니한가. 그렇기에 나는 지금 내딛는 한 발자국에서 두려움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바로 그것이 내가 이곳에 온 이유이자 최선의 방법이기에.

:: Category_ 도서관·문헌정보학 외/도서관학/정보학/사서 | 2008/05/2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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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도서관협회, '도서관문화' 2008. 04월호
사서가 들려주는 해외 도서관 이야기 ㅡ 몽골 국립도서관 / 김희근




한 번의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6,144시간째 나는 몽골 국립도서관과 숨 쉬고 있다 (1)

몽골 국립도서관 한국학 전담 사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한국해외봉사단  김희근



▒▒▒ 인생의 목표, 삶의 가치관. 그래서 난 몽골로 떠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뚜렷한 인생 목표와 더불어 삶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자 노력을 한다. 하지만 누군가 당신에게 ‘당신의 인생 목표는 무엇입니까?’ 내지 ‘당신의 삶의 가치관은 어떤 것인가요?’라고 불현듯 물어 온다면, 아마 열중에 일곱 여덟은 대답하길 망설이고 말 것이다. 갑작스런 물음에 조금은 당황했을법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사서(Librarian)’라는 직업의 외형적인 면보다도 스스로가 정한 인생의 목표나 삶의 가치관을 따르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나만의 지향점을 따라 한 걸음 두 걸음씩 길을 걸어 오다보니 지금의 이곳에 다다르게 되었고, 또 이러한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옳다고도 생각하고는 있지만, 역시 아직은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혹은 그렇지가 않다고 단정 지어 말하긴 힘들다. 하지만 나는, ‘장차 무엇이 되고 싶다, 어떠한 직업을 갖고 싶다’라고 말하기보다는 ‘나는 인생을 이렇게 살고 싶기에 난 이것을 할 것이다’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희망하고 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인생과 삶에 대한 선택에 있어 느끼는 만족감과 행복감일테니까‥.
돌이켜 지난날들을 생각해보면, 나는 대학시절 좋은 학점이나 그럴싸한 복수전공, 그리고 장학금은 물론이고 교내 수상과 더불어 국회도서관에서의 외부 수상, 또 각종 학생회에서의 여러 임원직 외에도 전공을 연계한 400여 시간이 넘는 자원봉사와 연수활동까지. 늘 분주하다면 분주했고, 또 항상 열심히였다면 열심히였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단지 그뿐이었을 뿐 어떠한 인생 상의 목표나 뚜렷한 삶의 가치관 따위는 가지고 있진 않았던 것 같다. 그렇기에 정작 내가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을 때 느낀 것은 안타깝게도 회의감과 허탈감 그 자체였다. 이렇듯 그동안 미뤄두기만 했던 나만의 해답을 찾고자 무던히도 노력은 했지만, 역시 그 어떠한 물음일지라도 그에 따른 답을 찾는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인 터. 결국 나는 나만의 해답을 찾기 못한 채 더듬더듬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게 되었고, 진학의 여유 시간 동안 한 기관에서 목차 DB 팀장으로 일을 하며 작지만 아주 중요한 삶의 보석들을 기억해내고야 말았으니, 그건 바로 대학시절 내가 수백시간동안 꾸준히 해온 도서관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한없이 따스하고도 소중한 추억들이었다.
그리고 내 인생의 목표와 삶의 가치관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나만의 해답은, ‘남을 위해, 공익을 위해 그 누구보다도 내가 잘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선사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매우 추상적이고도 나지막한 웃음이 나올 말들이지만, 나 자신만을 위한 어떠한 일을 했을 때보다도 모두를 위한 어떠한 일을 성취해냈을 때 느끼는 만족감과 행복감, 그리고 또 모두와 함께 나누는 그 기쁨은 더할 나위 없이 늘 완벽한 순간들로 나를 감동시키곤 했었다. 그래서인지 이런 나만의 해답을 찾게 되었을 때 난 크게 놀라지도 않았으며, 단지 이제 알게 되었고, 또 찾게 되었으니 그저 앞으로 나아가면 될 뿐이라고 간단히 결론을 내렸지만, 어떠한 방법으로나 어떠한 나만의 달란트로, 그리고 또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선 전혀 알 수가 없는 의문 투성이었기에 조금은 혼란스럽다면 혼란스러웠던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일에 대한 매너리즘과 무료함, 또 ‘이것은 내 인생의 지향점이 아니다.’라는 확신이 확고히 들었을 때, 내가 기억해낸 건 이미 서류전형을 통과한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한국해외봉사단(Korea Overseas Volunteer)’이었다. 그리고 2007년 5월, 개인적인 사정으로 도중에 포기의사를 밝히기도 했던 KOICA의 첫 도전에서 끝내 최종까지 합격을 하게 되었고, 또한 나의 바람대로 국가대표 도서관인 ‘몽골 국립도서관(The National Library of Mongolia)’으로 파견되게 되었다.


▒▒▒ 몽골이란 낯선 나라. 개발도상국(제3국)의 정보에 목마르다

흔히들 ‘몽골(Mongolia)’이라 말하면, 푸르디 푸른 하늘에 드넓은 초원, 그리고 그곳에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Ger)와 유목민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내가 자정을 지나 울란바타르(Ulaanbaatar)의 칭기스 국제공항(Chinggis National Airport)에 첫 발을 내딛으며 생각한 것은, 왠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다’라는 확신 아닌 확신이었다.
입국 다음 날, 내가 정식으로 마주한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는 오래되고 낮은 건물들이 즐비했지만 전형적인 도시의 모습 그 자체였고,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거리의 건축물이나 생활방식, 또 사람들의 성향 자체도 서구적인 성격이 매우 강한, 이른바 ‘아시아 속은 작은 유럽’이었다.
한국의 유네스코 평화센터(UNESCO Peace Center)에서 이미 5주간의 국내훈련을 통해 기초적인 현지어와 현지 사정에 대해 어느정도 학습을 받은 상태였지만, 몽골에 도착해 7주간의 현지적응훈련을 다시금 거치며 느낀 것은, 생각보다 몽골이란 나라에 대해 최신의, 그리고 정확하고도 다양한 정보가 아직까진 국내에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선진국이 아닌 개발도상국으로 떠나는 많은 KOICA 단원들은 미국의 CIA 등지에서 국외 자료를 찾아 헤매며 제3국의 현지 최신소식들을 접해야만 했었는데, 이것은 현지에 도착해서도 사실상 다를 바가 없었다. 특히나 몽골에는 KOICA 단원이자 사서분야론 내가 첫 파견이었던지라 이곳의 도서관계 현황을 알기엔 더더욱 어려웠었고, 외국의 각종 사이트와 자료들을 훑어보아도 최신의 핫 이슈는 불구하고 오히려 잘못된 정보가 올려져있곤 하였으니,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더욱더 미궁 속으로만 빠져들 뿐이었다. 더불어 UNV(UN 봉사단)나 Peace Corp.(미국의 평화봉사단), VSO(UK 봉사단), JAICA(일본 봉사단) 등에서 사서직 파견 봉사단원이 있나 조금은 기대도 해봤지만 이 역시 아직까지 소재가 파악된 바가 없어 지금까지도 많은 현지의 전문적 정보수집과 정보교류다운 교류 또한 없는 실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곳에서 개발도상국에 대한 각 분야의 전문화되고도 정확한, 그리고 최신의 정보는 평균 수준 이상으로 국내에 지속적으로 들어와야 할 필요성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또한 당연히 이에 대한 연구나 각계의 관심도 필요할 것이며, 이러한 자료들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체계적 관리 시스템 또한 필요할 것이다. 선진국과의 국가적 협력 관계를 우선시 하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개발도상국과의 국가적 협력 관계와 정부차원의 각종 지원 및 상호 협력 관계 구축 또한 국제적 우호증진 차원에서나 미래의 국가적 이익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선진국 그 이상의 결실이 있을 것을 확신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Peace Corp.이나 JAICA 등은 자국의 해외봉사단원을 통해 제3국의 각 분야별 정보를 수집하여 적극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찾을 수가 있는데, 이는 KOICA 또한 마찬가지라고 볼 수가 있다. 하지만 봉사단 파견에서부터 해외원조 사업에 사실상 늦게 뛰어든 우리나라로썬 아직까지 현지의 봉사단을 적극 활용하기엔 많은 어려움들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첫째로는 본부와 각 현지 사무소의 파견단원 관리인력 부족을 들 수가 있겠고, 둘째론 6개월 마다 제출하는 반기보고서 외에는 현지의 정보 등을 단원들이 직접 업데이트 하고 공유할 웹커뮤니티 등의 공식적 정보공유의 장이 구축 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가 있다. 따라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 또한 다른 국가에 파견된 단원 외에도 한국에 있는 잠재적 정보 희망자들에게 제공되고 있지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이러한 개발도상국, 즉 제3국의 정보수집과 활용에 있어 큰 관심을 표하는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사서의 정보수집에 있어 이제는 단순한 인쇄자료만이 아닌 각종 전자자료와 인터넷에서의 웹기반 자료 또한 매우 크게 자리를 잡은지 오래지만, 정작 그만한 정보검색 환경이 구축되어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정부차원에서의 확실한 지원도 없다는 점을 들 수가 있다. 사서로썬 이용자들의 다양하고도 공신력 있는 각종 정보에 대한 요구와 수요를 충분히 만족시켜주어야 하는데, 바로 개발도상국(제3국)에 관련한 각 전문적 파트에 있어선 그 입맛을 맞춰주기가 힘든 것이 현 실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해외봉사단원들의 각 분야별 최신 현지정보를 수집, 검증 후 지속적이고도 발 빠른 업데이트가 이루어져 국·내외의 잠재적 정보 수요자들에게 서비스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몽골의 안타까운 도서관·출판문화, 그리고 정보 활용 교육의 필요성

세계 각국의 많은 나라들을 살펴보면, 도서관이나 책. 그리고 그에 대한 각종 문화와 예술 등이 잘 발달되고, 또 잘 장려된 나라일수록 선진국 내지는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할 확률이 높은 것임엔 틀림이 없다. 몽골 또한 이를 여실히 잘 보여주고 있으니, 그 일예로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몽골엔 ‘서점(Book Store)’이란 것이 존재하지가 않았다고 한다. 최근 1-2년 사이에 작은 서점들이 하나 둘씩 들어서긴 시작했지만, 몽골 전역에서 가장 큰 서점은 한국의 동네 책방보다도 조금 더 큰 수준이요, 당연히 책의 종류도 다양하지가 않다. 출판사 또한 근래에 들어서야 규모가 커지고 조금은 출판사다워졌지, 이전엔 그저 복사하여 제본하는 수준이 출판의 전부였으며, 이렇게라도 책을 출판해내는 출판사도 아예 몇 군데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저자들은 책을 써냈어도 출판을 할 곳이 없고, 또 저자료는 커녕 자비로 자신의 책을 출판하여 스스로 판매까지도 떠맡아야 하니, 출판문화가 활성화될래야 활성화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학문이나 정보, 또는 문화의 주요한 구심점으로서 책과 출판문화가 장려되었다기 보다는 단순한 개인의 업적과 만족감을 위해 출판이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양질의 내용을 담은 우량의 서적들도 꽤나 그럴싸한 책다운 모습을 갖춰 출판되긴 하였지만 사실상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였고, 역시 다양하고도 전문적인 양질의 자료는 독자들의 수요만큼 많은 출판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더불어 다량의 책들을 접하고, 이들을 풀어낼 소위 엘리트 계층은 대다수가 사회주의 시절의 러시아 유학파들로 당연히 어느정도 러시아어에 능통하다보니 몽골의 학문보다는 현저히 앞선 러시아의 각종 학문들을 적극 수용하게 되었고, 사실상 몽골의 서적들보다도 러시아 서적들의 수요가 그만큼 압도적이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또한 그들이 출판해 내는 책들 또한 단순한 번역작업을 통한 번역서가 많을 뿐, 자신만의 학설을 내세우거나 연구를 통한 나름의 지식과 학문을 담은 몽골순수학문 분야의 책은 거의 존재하지가 않았다고 봐야한다. 그렇다보니 몽골 내의 출판량은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었고, 또 출판이 된 자료들마저도 위에서 언급했듯 유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니, 이곳에선 많은 책을 보고, 또 사고, 더불어 파는 것에는 매우 서투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한 권의 책을 사려면 서점을 일일이 돌아다니던지(혹은 길거리에 책을 늘어놓고 파는 헌책상인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필요한 책을 부탁하기도 한다. 또한 이는 아직도 몽골 현지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출판사에 직접 문의를 하던지(그러나 책이 있을 확률이 거의 없다), 아니면 저자에게 직접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서 책을 구입해야만 했다. 또한 최근에 들어서야 정찰된 가격으로 책을 출판하지, 1년 전만 하더라도 특별한 정찰 가격이 없어, 특히 저자에게서 직접 책을 구입하게 되면 가격 흥정을 두곤 곤욕을 치뤘다고들 한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들로 몽골의 출판문화나 도서관문화를 가늠해 봤을 때 이곳의 안타까운 여러가지 현황 등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이 글을 읽는 모두가 대략은 가늠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을 한다.
따라서 이런 사회의 분위기와 현실로 이 나라 사람들에게 책은 매우 귀한 것으로 치부된다. 물론 도서전산화시스템으로의 전환상 문제가 더 큰 이유기는 하겠지만, 울란바타르에 있는 세 개의 공공도서관은 아직도 관내 대출만을 허용하고 있고, 또 몽골의 국가대표 도서관인 몽골 국립도서관은 철저한 폐가식 시스템으로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이용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는 정보검색능력이나 기타 각종 책이나 자료를 다루는 기술이 서툴러, 대학의 강사로 파견되어 있는 단원의 이야기로는 한국에서의 일상적인 과제(Report) 제출은 꿈도 꾸질 못한다고 한다. 스스로 책이나 논문을 보며 공부할 수 있는 여건 자체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도 않고, 조금씩 갖추어지고는 있다고 해도 이용자 자체의 정보활용능력이 현저히 뒤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학업에 대한 열의가 대단히 높은 이곳 몽골에서 나는 굉장한 안타까움과 아이러니 아닌 아이러니함을 느껴야만했다. 진정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정도 갖춰진 도서관(정보시설)과 더불어 정보 활용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인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또 몸소 직접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실정으로 ‘도서관(Library)' 또한 교육과 이에 따른 사회의 주요 문화 기관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울란바타르에는 세 개의 공공도서관이 있는데, 이 외 지방에도 도서관이 존재하기는 하나 그나마 도서관다운 도서관으로 갖춰져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울란바타르의 세 도서관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첫 번째가 바로 국가대표 도서관인 ‘몽골 국립도서관(The National Library of Mongolia)'이고,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의 책 왕궁(The Book Palace of Children)', 또 청소년과 대학생을 위한 ‘나착더르지* 울란바타르 시립 중앙 도서관(The Natsagdorj Central Library of Ulaanbaatar)’을 들 수가 있다.**
 
* 나착더르지(Natsagdorj) : 몽골을 대표하는 문호.
* ‘몽골 국립도서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호에서 풀어내도록 하겠다. 더불어 울란바타르에 있는 이 세 도서관의 명칭은 여러 번 바뀌어 하나의 도서관이라도 현재 여러 개의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음을 밝혀둔다. 그 예로, 국립도서관의 경우 이전엔 ’몽골 국립중앙도서관(The State Central Library of Mongolia)'이란 명칭으로 몽골인들에겐 흔히들 ‘중앙도서관'이라 불리워졌는데(지금도 마찬가지다), 현 공식적인 기관 명칭은 ’몽골 국립도서관(The National Library of Mongolia)'으로 사실상 몽골어에 있어선 어휘 자체가 틀림을 알린다.


▒▒▒ 몽골에서의 사서(Librarian)란, 그리고 공식적인 사서교육기관

이곳 몽골에도 사서를 길러내는 교육기관이 존재하긴 존재한다. 이전엔 몽골 국립교육대학교(The National University of Education)에서 단순한 연수기관인 ‘사서교육부’를 설립하여 사서들을 길러내었지만, 지금은 문화대학교(The Culture University)의 ‘문화학과(Dept. of Culture)’에서 사서를 비롯한 문화매니저, 큐레이터 등을 길러내고 있다. 이들은 4년 동안 관련 학문을 모두 이수한 뒤, 졸업 후 자신의 적성에 맞춰 진로를 결정하는데, 보통 사서로 적을 두는 사람은 1년에 10~15명이 채 되지가 않는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사서로써 취업에 성공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몽골에는 도서관의 수도 극히 적을뿐더러 한국의 사서직계와는 조금 다른 것이, 이곳엔 특별히 사서자격증이란 것도 없으며, 사서라도 자격 등급의 구분 또한 없고, 오히려 외국어에 능통한 유학파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더 크기 때문에 사서가 되길 희망하는 소수의 전공자라고 한들 그들이 설 위치는 더욱 좁을 수 밖 없는 것이다.
그 예로, 몽골 국립도서관의 직원 채용은 제한경쟁으로서 특정 전공과목의 필기시험을 치르지는 않으며(국립이기에 당연히 직원의 신분은 공무원이다), 대체로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해 직원을 선발한다. 그때 눈여겨보는 자격 요건은, 자료의 수서와 목록 등 전형적이고도 일반적인 전통적 사서의 업무는 도서관학을 전공을 한 사람으로 자료기획과에 우선 배치되고, 각종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은 실물자료가 배치되는 서고보존과에, 그리고 그 외의 전공을 한 사람들은 열람서비스과나 시설관리과 등지에 배치가 되는 형식이다.
따라서 도서관학이나 정보학 등 한국에서 말하는 정통(正統)의 문헌정보학과 출신의 사서는 극히 드물거나 없다고 보아야 무방할 것이다. 문화대학교의 문화학과에선 문헌정보학만을 체계적으로 가르치지도 않을뿐더러 정보학의 경우는 학문이 들어오지가 않아 아예 용어 자체가 없는 것들이 즐비하고, 이젠 도서관계의 핫 이슈라고도 말하기 힘들 RFID나 Meta Data, Dublin Core 등을 모르는 것은 당연지사요, 전자도서관(Digital Library)이나 기록보존(Archives) 등에 대해서도 확실한 개념이 서 있는 것도 결코 아니니, 최신의 도서관 시스템을 따라갈래야 따라갈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 사서들의 경우, 각종 언어적인 면에선 꽤나 뛰어나기에 신기해할 만큼 낯선 외국의 자료가 들어와도 스스럼없이 자료를 이해하고 처리하며, 또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40세 이상의 중견 사서들은 사회주의 시절 러시아 유학을 떠났었던 지식인들로 당연히 러시아어에 유창할 수밖에 없는데, 영어·중국어·만주어·터키어·티벳어 등 각 나라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서가 있기는 하지만 도서관 내의 대다수가 러시아어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은 조금 아쉬운 점이기는 하다. 따라서 자료에 대한 이해는 빠르지만, 일반적인 사서의 업무나 최신의 업무 방식 등엔 매우 미숙하며, 전문적인 도서관 경영에서도 사실상 조금은 시대에 뒤쳐져 있고, 또 오래된 러시아의 도서관 경영 방침을 아직까지도 고수하고 있는 등 매우 보수적이라면 보수적이라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그들에게 사서가 된 이유를 물으면 누구든 스스럼없이 말하기를, ‘책이 좋아서.’ 내지는 ‘여성이 하기에는 매우 좋은 직업이기에.’라는 대답이 월등히 많은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렇듯 이곳의 사서들은 절대 다수가 여성 직원이요, 또 그들은 사서인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사람들도 사서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지식’을 다룬다는 점에서 일단 인텔리로써의 이미지를 떠올리긴 하지만, 사실상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서들의 세세한 업무 등에 대해선 잘 모르는 실정이라 때로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일로 치부되어 느긋하게 일하며 쉽게 돈을 받는 직업 등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렇기에 한국이 아닌 이곳에서도 사서로써의 보다 더 큰 전문성과 또 이를 이용자들이 몸소 체감할 수 있는 더 높은 양질의 정보서비스를 제공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고로 다시 말하자면, 단순히 자료와 정보를 ‘건네주는 사람’이 아닌, 자신이 요구한 자료나 정보를 ‘이미 구축하여’, 그들의 ‘정보요구에 대한 깊이 있는 상담과 조언’까지도 해줄 수 있는 보다 ‘확실한 정보전문가’로서의 변화와 재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 Category_ 도서관·문헌정보학 외/도서관학/정보학/사서 | 2008/04/2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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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새 해야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 정신을 못차리고 있긴하다.

1) 기관에 제출해야할 정책보고서 둘에
2) 밀리고 밀린 기존의 업무 여럿
3) 한국 국립중앙도서관의 한국자료실 설치 사업과
4) KOICA의 단원 활동사업지원(프로젝트)까지

아래 글에서도 말했듯 가만히 있노라면 왠지모르게 눈물이 날 정도이다.
그런데 어제 부소장님께서 찾으신다하여 연락을 드렸더니, 한국도서관협회의 기관지인 '도서관 문화'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왔다고 했다. 몽골에서 사서로써 자원봉사를 하면서 느낀 점 등을 간단한 체험기 형식으로 써줄 수 있겠냐면서.
사실 반가웠다. 나또한 한국에 있었을땐 해외에 사서로 취업을 하신 분들, 그리고 KOICA나 UNV 등으로 자원봉사를 나가신 분들, 또 그 외 유학을 가신 분들의 이야기 등을 너무나 듣고 싶어했었으니까. 그런데 의외로 제아무리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다고 한들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란 쉽지가 않았었다. 그래서 사소하고도 소소한 일상들이지만 지금 이렇듯 내가 블로그며 싸이월드를 간간히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물론 바빠서 힘에 겨운건 사실이지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도 많고, 또 궁금증에 목이 말라하는 이들을 위하여 흔쾌히 글을 쓰기로 했다.
아무튼, 원고가 실리면 공개를 할 생각. 4월호부터 5월호까지 총 2회에 걸쳐 실을 예정인데, 생각하면.. 역시 부끄러워진다. 무서운건 교수님들이 이 글을 보게되실거란 것? 어떤 말씀들을 하실 것인지.
더불어 KOICA에 제출한 반기보고서나 그 외 몽골 국립도서관측에 제출한 문서(보고서) 등을 이곳에 올리고는 싶지만, 다시한번 생각해볼 문제라 여겨져 미루고만 있다. 공개할 수 있는건 나름 판단 후 공개할 예정. 물론, 언제나 그렇듯 언제 올린다는 기약은 없겠지만.
:: Category_ KOICA MONGOLIA/KOICA/사서/몽골 | 2008/02/2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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