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이 서가에 꽂히기까지 거쳐야되는 그 과정들을 다들 아는지?
당시 나는 한국 국립중앙도서관과 KOICA, KOFIC 등 굵직한 세건의 프로젝트들을 총괄하고 있었고, 하물며 자료 한 권 한 권의 정리까지도 모두 다 떠맡아야만했던 상황이었다. 진정 너무나도 바빠서 9시까지의 야근과 주말근무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고, 다친 다리를 절뚝거리며 하루에도 서너건의 외근을 다녀야만했었다.
1) 자료 하나당 날인(스탬핑)만 3번
2) 자료 등록 점검에
3) 자료 분류
4) 등록번호(바코드) 라벨 부착
5) 등록번호 라벨 위 키퍼(보호 필름) 부착
6) 분류 색띠 부착
7) 청구기호 라벨 부착
8) 다시 이 위에키퍼 부착
9) 감응테이프(도서 분실방지택) 부착
10) 서가에 배가
이런 작업들을 해야하는 자료가 최소 3,500개 이상.
도서관 사서들과 KOICA 단원 외 도서관과 책에 애착이 있는 한인분이 모여 작업의 작업을 계속.
바쁜 선임덕에 후임들도 바쁘고, 바쁜 친구를 둔 덕에 측근들 마저도 바빴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렵사리 시간을 내어 도와주신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많이 지체가 되었었던 사업인지라 개인적으론 마음 고생이 수년간 극심했었는데, 개관식 직전에도 아니나다를까 사건이 터져 나를 마지막까지도 넉다운 시켰었으니, 다름이 아닌 전 세계적인 조류독감으로 인한 대공황상태.
몽골도 예외일수는 없어 마을과 마을, 도시와 도시로의 이동이 엄격하게 금지되었었고, 9시 이후의 모든 고급 레스토랑 및 일반 음식점 외 주류판매점 등도 문을 닫아야만 했다. 하물며 모든 몽골 내 극장들을 포함하여 일정 수 이상의 사람들이 모이는 각종 단체모임 외 회의, 집회 등도 전면적으로 금지. 초중고교의 휴교령은 당연히 말 할 필요가 없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도서관만큼은 정부측으로부터 휴관령이 떨어지지가 않았었는데, 아니나다를까 개관식을 약 4-5일 앞두고 임시폐쇄령이 떨어져 모두를 패닉상태로 만들었었다.
성대하게 준비했던 한국학정보센터의 개관식. 그러나 맙소사, 그야말로 아예 취소될 위기. 이 일로 아킴 관장님과 뱜바수렝 부관장님께서 몽골 교육문화과학부에 얼마나 전화를 하시고 또 직접 찾아가 사정 설명을 하셨는지, 나또한 다급히 한국 국립중앙도서관측에 이 소식을 전하며 얼마나 가슴을 졸였었는지 아마 모두들 상상도 못할거다.
우여곡절 끝에 예정대로 개관식은 진행하되, 소규모로 진행하라는 몽골 교육문화과학부의 명령(권유도 아닌 명령이었다). 이에 모두가 합의를 한 뒤, 이윽고 몽골행 비행기에 탑승하신 용감한 한국 국립중앙도서관의 모철민 관장님, 문시영 부장님, 강지태 선생님. 조류독감으로 몽골 전역이 폐쇄되고 있는 마당에 몽골로 오셨으니 오시기전에 얼마나 걱정을 하셨을지.
입국 당일 주몽골 대한민국대사관의 정일 대사님, 임희순 영사님 외 몽골 국립도서관의 뱜바수렝 부관장님, 해외교류담당 뭉흐치멕과 함께 칭기스한 국제공항으로 마중을 나갔었고, 곧장 숙소인 바양골 호텔로 모셔드린 뒤 아킴 관장님과의 저녁 만찬으로 분주한 첫 날을 보냈었다.
한-몽 통역에 메달렸던 나와, 영-몽 통역에 메달렸던 뭉흐치멕. 뭉흐치멕과 일로 부딪히는건 사실상 처음이었는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꽤나 프로근성이 있어 같이 하는 내내 큰 도움과 의지가 되었었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챙겨가며 힘들지만 즐겁게 임했었는데 둘이서 2년이 넘게 나누지 못한 온갖 잡담들을 그 몇 일 내내 다 나누었던것 같다. 비록 최고급 레스토랑에서의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제대로 먹지를 못했었지만, 또 모두와 같이 있는 시간만큼은 온통 모두의 대화에 귀를 귀울여 몇 시간이고 최고의 초집중상태로 있어야했기에 피곤하기도 굉장히 피곤했었지만 그래도 어찌되었든 쓰러지지 않을만큼 참을만은 했었다. 아니, 참아야만 했었다.
특히 나의 경운, 지금 이 순간을 위해 2년이란 시간이 넘게 이곳에서 그 얼마나 깨지고 인내하며 버티고 또 버티었던건지 다시 생각조차 하기가 싫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렇듯 나 스스로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건, 나는 오랜시간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수십번을 생각해도 지금 이곳에 지금 이 시기에 반드시 해야만하는 사업이었고, 또 여러 기관들로부터 서포트를 약속 받아 가능성이 무한대인 상태였었고, 그만큼 오랜기간 공을 들여 준비를 하며 확신의 확신을 거듭했었던 일들이었기에 중도포기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이상하리만큼 수차례 일들이 꼬여 힘든 고비가 있기는 있었지만 끝까지 나를 믿고 지지해준 분들이 있었기에 나에게도 굉장히 절실했었고, 그만큼 지독히도 이 사업에 집착 아닌 집착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과의 믿음과 스스로가 가진 그 확신이라는 것. 난생 처음으로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무기이고, 또 그 어떠한 일의 크나 큰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몸소 체험했었다.
아무튼 밤 9시가 넘자 손님들을 호텔로 다시 모셔다드리며 나는 다시금 도서관으로 향했다. 바로 그 다음날이 개관식이었기 때문. 기관에서 해준다던 암막장치(커텐)가 개관식 전날 오후까지도 설치가 되지를 않았던지라 마지막으로 체크를 하러 늦은밤 부랴부랴 기관으로 향했던것.
아무도 없던 늦은 시간의 도서관, 모두가 퇴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암막 장치 작업을 직접 보고 계시던 경비 아저씨와 나의 코워커인 보양히식 사서를 보고 난 이내 울컥해버렸었다. 개관식 전날까지도 기관측에서 늦장을 부려 속이 상할만큼 상했다는 점과 그래도 이 늦은 시간까지도 이 일을 도와 작업을 해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에서 한껏 감동을 받아버린 것.
나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코워커인 보양히식 사서는 내가 어디에 있던, 무엇을 하던 평생 소중한 인연의 끈을 놓고싶지 않은 나의 지인들중 하나로, 몽골에선 같은 도서관의 동료이자 언니, 그리고 때로는 어머니같은 존재로 나를 진심으로 따뜻하게 잘 보살펴주었었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하던 사람이자 내가 하던 모든 일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지켜보았었던 사람이었기에 그 날 이미 내가 몇 일 내내 잠도 제대로 자지못했다는걸 알고 있었고,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몇 달 내내 항상 이곳저곳을 분주하게 다닐 수 밖에 없었다는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지라, 이렇듯 고집센 나를 억지로 달래고 달래 집으로 보내려 다독거리기 시작했다. 여기는 우리가 책임지고 볼테니 중요한 내일을 위해 집에서 잠을 자라고, 정말 오늘만큼은 쉬어야만한다며 나를 꼭 끌어 안고 달래는데, 어찌 내가 울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집으로 향하던 중에 알게된 한국 국립중앙도서관측에서 급하게 온 메일. 다시 무언가를 작업하고 체크해야만 하는 상황. 유숙소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우리 동갑내기 아라와 지혜, 준섭이의 부름에 잠시 응했지만, 이내 그들을 살포시 버리고 그곳에서 급한 일들을 처리해야만 하는 상황. 커피 한 잔에 힘을 내고, 그들의 말 한마디에 힘을 내고, 또 잠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정이 되어서야 집으로 향해 다음 날을 기다렸다.
드디어 내일이었다.
그렇다.
이곳 몽골에서 수년을 기다린 그 날이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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