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카트슨 사람들(Delicatessen, 1991)
장 피에르 주네 감독/ 도미니크 피뇽 외 출연
장 피에르 주네(Jean-Pierre Jeunet)와 마르크 카로(Marc Caro)의 1991년도 작, '델리카트슨 사람들(원제: Delicatessen)'은 우리시대 인간의 일그러진 모습을 단편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있다.
'맛있는 것'이라는 제목을 인간 그 자체로 치부시킴으로써 미래 사회의 우울함과 모순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서 '맛있는 것'이란 인간. 더 나아가 인간의 탐욕과 무지, 비도덕적인 모습,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그들의 모순 된 군중심리와 흑백논리까지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것들이 일명 '델리카트슨(맛있는 것)'이 될 수 밖에 없었을까?
영화의 배경은 이러하다. 핵전쟁이 끝난 미래의 어느 변두리 소도시. 전쟁으로 말미암아 식량자체를 구한다는 것이 곤욕이다. 즉, 그들의 주식인 고기라는 것 자체를 구할 수가 없게된 것. 고로 마을로 들어서는 낯선 사람을 저녁 식사에 올리는 것 빼고는 그들에겐 더 이상의 방법이 남아있질 않다.
전직 서커스 광대 출신의 뤼종은 일자리를 찾아 헤메다 이 낯선 도시의 푸줏간에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푸줏간은 바로 이 마을의 식량 배급소이자 마을 사람들의 주식 꺼리인 인육을 다듬는 일종의 모순 된 공간. 푸줏간의 주인인 클라베는 이 마을의 최고 권력자로서 클라베의 말은 곧 법일 정도로 실질적인 그의 권력은 대단하다.
이러한 공간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다분히 '엽기적'이다. 생김새부터 어딘가 우스광스러운 등장인물들과 약간은 비틀린 공간, 그리고 왜곡된 시선. 사건 전개의 기묘함과 더불어 코믹하다고 큰 소리 내어 웃기엔 약간은 아이러니한 장면들. 이런 것들이 절묘하게 교차되고, 편집되며, 또 진행되어 일그러지고 기묘한 컬트색채의 이 영화, '델리카트슨 사람들'이 만들어진다.
어찌되었든, 푸줏간으로 찾아든 뤼종 또한 마을 사람들의 식량.
그러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푸줏간의 주인 클라베의 딸 줄리는 뤼종에세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감정을 더 키우고 키워나가 이윽고 뤼종을 탈출시킬 결심까지 하게 된 줄리.
이젠 굶주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는 마을 사람들의 한계에 끝내 마을 사람들과 연적의 관계인 지하 세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만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바로 마을 사람들 개개인의 기괴한 인물 설정이다. 부유하지만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계속하셔 자살을 시도하는 로제 부인과, 부인을 사랑하는 로베르. 그리고 그 부인을 자살로 몰고 가는 이상한 소리의 장본인인 로베르의 동생. 그리고 집세를 낼 돈이 없어 노파를 집세 대신으로 내는 타피오카 가족과 자신의 육체로써 고기를 얻는 클라베의 정부 플뤼스, 더불어 이 영화의 큰 주축이 되는 푸줏간의 주인인 클라베와 그의 딸 줄리. 그리고 이 마을로 찾아온 뤼종 등이 바로 델리카트슨 사람들이다.
또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바로 계급의 순으로 건물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 중간층에 사는 살마들과 지붕 바로 아래 사는 하층민 로베르 형제, 그리고 지하실에 거주하고 있는 포탱 등 딱딱 나누어진 계급이 '정말 우연의 일치일까?'라는 의문을 품게 한다.
영화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쯤 보는 관객들의 감정 또한 극에 달한다. 바로 이러한 상황. 즉, 뤼종이 처한 상황에 있어 관객 또한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는 것. 특히나 줄리와 함께 목욕탕에서 탈출을 시도할 땐 그것이 극에 달한다. 자신의 성지를 무너뜨린 뤼종과 자신을 배신한 딸 줄리에게 화가 머리끝까지 난 클라베는 뤼종에게 그의 부메랑을 던지지만 되려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탐욕에 젖은 마을 사람들과 클라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마을은 평화를 되찾는다.
어찌 보면 단순하고도 다소 아이러니함의 연속인 이 스토리는 감독인 장 피에르 주네(Jean-Pierre Jeunet)와 마르크 카로(Marc Caro), 그리고 다리우스 콘쥐(Darius Khondji)의 촬영과 도미니크 피뇽(Doninique Pinon)의 익살스러운 연기 외에도 뛰어난 편집.
특히 짧게 커트되고 여러 개가 교차되었지만 관객들에게 혼란을 주기보다는 더욱더 극의 이해와 재미, 그리고 독특한 이 영화내의 한 특성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된다. 또한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을법한 이 영화의 각본은 감독상, 편집상, 미술상과 함께 세자르의 각본상까지 거머쥘 정도로 훌륭했다.
또한 한 건물 내에서 이루어진 사건이라 하면, 단조로운 장소의 이동과 사건으로 말미암아 독자가 다소 지루하게 받아들이거나, 혹은 방대한 스토리일 경우 스토리의 전개에 있어 오히려 좁은 공간에서의 방대함이란 것으로 독자에게 더 큰 혼란스러움을 줄 수도 있는데 이 극은 그 수위를 잘 조절했다고 볼 수 있다.
극의 음악 또한 독특한 영화의 매력을 한껏 더한다. 특히 첼로를 켜는 줄리와 그에 맞춰 톱을 켜는 뤼종의 전혀 다르면서도 동일시되는 모습에서 그 음악 또한 우울하고도 음산한 이 영화의 배경과 맞아떨어지면서도 너무나도 아름다워 듣는 관객들로 하여금 아이러니함을 느끼게 한다.
이 영화의 감독인 장 피에르 주네는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Cite Des Enfants Perdus, La, 1995)'와 '에이리언 4 (Alien : Resurrection, 1997)'. 그리고 모국인 프랑스와 전 세계에서 대히트를 친 '아멜리에 (Fabuleux Destin D'Amelie Poulain, Le, 2001)'에서 그만의 독특한 상상과 시각, 스토리의 구성을 보여준다.
모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실제 공간이 아닌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질법한 소재로, 내용으로, 주인공들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여기서 장 피에르 주네만의 독특한 감독의 관점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최신작 '아멜리에'에선, 사랑은 달콤하고 아름다우며 마법 같은 신비한 묘약이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느끼는 방법은 오직 자기 자신의 해피(happy)한 시각에서부터라고 장 피에르 주네는 말한다. 즉, 세상은 본디 너무나도 아름다운 지상낙원이나 사람들은 그것을 볼 줄 모르며 즐길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10여전 그의 영화 '델리카트슨 사람들'은 아멜리에와 상반된다. 세상은 본디 뒤틀릴 때로 뒤틀려있으며 한껏 기괴하고 음울하며 맹목적이고 편파적이다. 그러한 이 곳에서 사랑은 이 세상에 오직 남겨질 순수한 빛 한줄기라 칭하고 있다.
둘중 어떠한 시각이 옳은 것인지는 그 어느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감독으로써 혹은 인간으로써 장 피에르 주네의 세상에 대한 시각과 마인드가 한 차례 변했다는 것이며, 후자의 입장에서 본 세상을 '델리카트슨 사람들'에서 그는 훌륭하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세상의 뒤틀림과 기묘함. 그리고 비도덕적인 모습으로 일그러진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에게 있어 ‘맛있는 것’것이란 '뒤틀린 그 것'이지만, 진정 최고의 맛을 가진 것은 바로 '사랑(LOVE)'라는 것을 장 피에르 주네는 말하고 있다.
2004/08/10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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