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부터 2일간 몽골내 KLPT(Korean Language Proficiency Test, 외국인고용허가제 세계한국말인증시험) 본부 감독관으로 잠깐 다른 일을 하였다.
KLPT는 쉽게 말해, 유학을 전제로 하는 TOPIK(Test of Proficiency in Korean, 한국어능력시험)과는 다르게, 한국에 일을 하기 위해 출국하고자 하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시험이라고 보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따라서 TOPIK에 비해선 문제 난이도도 쉽고, 작문 등의 쓰기 시험도 없으며, 말이 한국어능력시험이지 드릴 등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기계의 용도 등을 묻는 등 확실히 한국내 노동자를 뽑기 위함 시험임은 확실하다.
2년인가 3년만에 몽골에서 다시 치루는 시험인지라 시험을 응시한 몽골인의 수는 약 1만여명에 가까웠고, 시험 장소도 5-6군데로 나뉘어 이틀간 치뤄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소속된 곳은 이틀간 약 1천명의 응시생들이 시험을 치를 2번 학교.
교실에 감독을 들어가는 2명의 감독관은 현지 몽골인 선생님들이, 그리고 본부에서 이를 전체적으로 감독하며 시험지 배부 및 답안지 확인을 맡은건 본부 감독관들이었다. 고로, 우리는 시험지 및 답안지 배포 및 회수와 더불어 본부측에서 각 교실로의 감독을 중점적으로 맡았다. 워낙에 TOPIK과는 다르게 KLPT가 컨닝도 심하고, 또 생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어 컨닝을 잡아내는 것도 마음을 굳게 먹고 잡아내야한다고 들었었다(보복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 시험에 따라 한국으로 일을 하러 갈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사실 걱정을 꽤 했는데, 다행이 응시생들을 직접 맞닿뜨리는 교실감독이 아니라, 별도로 마련된 본부에서 그때그때마다 교실로의 시험지, 답안지 배포 및 회수, 또한 교실 감독관들을 관리하는 일이 주된 업무였던지라 큰 트러블은 없었다.
그런데 정말 어느정도로 컨닝이 심한지, 각 교실에서 감독을 맡고 있는 감독관들중 절반은 응시자가 컨닝을 하든 대화를 하든 신경을 쓰지조차 않고 있었다. 최소 본부 감독관이 교실로 순회를 돌면, 이전에 컨닝을 하고 있었더라도 하지 않는 척이라도 해야되는게 아닌가. 그러나 컨닝은 계속됐고, 응시생들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또한 내가 들어서기가 무섭게 몽골인 감독관들은 당황해하며 내가 몽골어를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나지막하게 한국인 감독관이 왔으니 컨닝하지 말라고 응시자들에게 이야기하느라 바빴었다. 그리고선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우리 교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좀 어이가 없었는데, 이중 가장 어이가 없었고 또 화가 났던 일은, 내가 교실로 들어가 교실을 한바퀴 돌며 응시생들을 보고 있는데 옆 사람과 이야기를 계속해 나누던 두 명의 응시생들이었다. 각 줄마다 A형 B형으로 시험지가 다르거늘, 똑같은 문제를 찾아 펴놓고는 이게 맞네 저게 맞네 둘이서 싸우고 있었던. 그야말로 황당하면서도 어이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다가가 싸늘하게 물었다.
"지금 뭐하고 계신 겁니까?"
화가 나, 다가가서 살벌한 표정으로 말하자 대답이 없는 그 둘. 이야기하고 있었냐며 다시금 내가 표정이 좋지 않자 그나마 바른 자세로 앉는다. 그리고 내가 교실을 떠날때까지 어찌나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던지 그들의 눈빛만 보면 내가 무슨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인것만 같았으리라. 하지만 시험 결과의 등수대로 합격자와 불합격자를 나누기에(즉 상대평가), 그런 사람들로 인해 다른 사람이 떨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최소 내가 있는 자리에선 공정해야만 했다.
이 교실을 나선 나는, 너무나 화가 나서 다른 본부 감독관들에게도 지금 컨닝이 성행하고 있다고 문자 메세지를 돌렸다. 이윽고 다른 감독관들도 일제히 교실을 순회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참 가관이었다. 복도에서 감독하는 몽골인 감독관이 각 층별로 몇명씩 따로 있었는데, 우리 본부 감독관들이 각 층별로 불시에 교실들을 순회하기 시작하자, 앞의 교실에 가서 한국 감독관이 지금 순회중이니 조심하라고 미리 알려주질 않나. 시험 종료 후 10분이 지났는대도 교실 감독관이 답안지를 가지고 본부로 내려오지 않아 교실로 찾아가니 아직까지도 마킹을 하고 있는 응시자가 있질않나. 정말이지 나중에 우리 본부 감독관들은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시험은 이틀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전날(13일날) 시험을 보지 못한 응시생들이 몰려와 수험료를 돌려줘야하는거 아니냐는둥 그야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었다. 그나마 다행인게 내가 있었던 2번 학교 같은 경우는 물론 진득허니 계속 항의를 하며 본부에서 뻐팅기고 1시간 반정도 버틴 몽골인도 있었지만, 어찌어찌 몽골 해외인력송출센터 본부(MOU)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그쪽으로 문의를 하라며 그때그때마다 사람들을 돌려보냈었다. 사실상 응시생들의 수험을 등록한건 한국특이 아니라 몽골의 해외인력송출센터였으니까. 그런데 UB 대학의 경우, 신문에 응시장소가 잘못 기재되어 나간대다 항의를 하러 찾아온 사람들을 그때그때 즉시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아 수백명의 몽골인들이 학교 밖에서 집단 농성을 피우는듯 다소 살벌했다면 살벌했었고, 또 TV에서 취재를 나도는둥 그야말로 다른 시험장에 비해 조금은 위험했었다고 한다.
확실한건 KLPT보다는 TOPIK이 감독하기가 수월하다는 것.
역시 생계가 달린 문제여서 그런지 작은 것 하나하나가 KLPT는 다 민감하게 반응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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