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KOICA 본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무언가 요청을 받아 다시금 잊고지내던 몽골에서의 기억들을 조금은 찾아나서야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잊을만하면 떠올려야되는게 몽골에서의 시간들이란 생각에 웃음이 났다. 역시나 평생을 벗어나지 못할 from MONGOLIA, used to live/work in MONGOLIA란 꼬리표랄까.
KOICA로부터 온 전화를 끊고, 손에 든 물건들을 계산하려는데 지갑 안에서 익숙한 사진들과 보딩패스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가방안에서 길을 잃었던 이 아이들을 언젠가 지갑안에 넣으며 나중에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던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가 기억이나지 않는걸로봐선 아무래도 새까맣게 잊고 있었나보다.
한때는 몽골에서 가져온 물건과 사진들이 너무나 소중해 먼지라도 앉을까 어디로 사라져버리진 읺을까 애지중지했었거늘 이제는 아예 기억속에도 없는 꼴이라니.
그러다 점점 더 내가 무뎌져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몽골에서의 추억들에, 한국에서의 생활들에 더이상은 심장이 쿵쾅거리지 않음을.. 기억해야한다며, 또 소중하게 여겨야한다며 주기적으로 무언가를 되뇌여 생각하거나 중얼거리는것 또한 더이상은 없음을 깨달았다.
자꾸만 잊혀가는 것들.
그런데 잊혀져가는것이 자연스러운 것들.
사진과 보딩패스를 보며 비로소 이전엔 내가 그곳에 속해있었음을 오랫만에 체감했다. `아, 그래. 사실이었구나.`라며.
모두가 입을 모아 하는 말. 몽골에서의 시간은 정말이지.. `조금은 긴듯한 꿈을 꾼것만 같다.`
언젠가의 주말, KOICA 유숙소에 단원 몇명이 모여, 벼루고 벼루었던 UB의 외곽으로의 하이킹에 나섰었다.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걷다가 잠시 앉아서 쉬고, 또 준비한 과일들과 먹을거리들을 먹다가 또다시 걷고. 아마 한 5-6시간은 계속해 걷지 않았을까?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고 있는지, 또 우리가 서있는 이곳이 정확히 어디인지조차 모른채 말이다. 그리고 이쯤이면 걸을만큼 걸었다고 생각되었을때, 미크로(한국의 봉고차로, 몽골에선 마을버스식의 대중교통수단)를 타고 UB의 중심부로 돌아왔다. 몽골에서 최고의 중식집이라 소문난 곳에서 치룬 뒷풀이가 그날따라 또 어찌나 맛이 있던지.
사진은 도중에 만난 아이들과 그곳의 사람들. 그야말로 평범한 보통 시민들의 생활이다.
높은 고층빌딩이며 한국만큼 혹은 한국보다도 더 럭셔리한 곳들이 존재하기도 하는 울란바타르(Ulaanbaatar; UB, 몽골의 수도)지만, 이렇듯 한 30여분만 걸어나가도 시내 중심부와는 전혀 다른 풍경들과, 그야말로 지극히 평범하다 할 수 있는 보통 몽골 서민의 생활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 혹은 하샤라고 불리우는 나무집에 울타리를 쳐서 사는데, 겨울엔 난방이 되질 않으니 갈탄으로 불을 지펴 난방을 한다. 그러나 한 겨울 한파가 극심히 지속될땐 영하 40-50도까지도 떨어지는 곳이거늘 이런 식의 생활들이 과연 괜찮으련지 아직까지도 의문이라면 의문. 다행히 왠만해선 전기는 들어오지만 더러는 들어오지 않는 곳들도 있고, 또 도시 중심부 자체도 상하수도 시설이 미비하다보니 당연히 이런 외곽까지 상하수도 시설이 잘 갖춰져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고. 더불어 큰 도로를 제외하고는 마을 전체가 비포장 길이며, 마을에 하나 있을까말까한 우물물을 마을 사람 모두가 힘겹게 길러다 사용하는건 기본이다. 이런 환경의 격차가 같은 나라 같은 지역에 그것도 도보로 20-30분 이내 존재를 한다.
몽골은 그런곳이다. 이런 빡빡하고도 힘겨운 서민들의 생활을 잘 알기에 한편으론 마음이 무겁고도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이내 난 희망을 갖기로 했다. 언젠가는 이 사람들도 제대로 갖춰진 곳에서 살아갈 수가 있을것이다. 그만큼 몽골은 빨리 변화하고 있고, 그만큼 발전가능성이 있는 나라이니까 말이다.
[추가] 트래킹을 하는 모습들, 그리고 이곳의 풍경.
도중에 KOICA가 진행한 프로젝트 사업물을 발견하여 반가운 마음에 기념사진도 찰칵.
다들 몽골에서 보낸 시간이 짧진 않아서인지 이런 곳에서의 목적지 없는 트래킹도 전혀 낯설거나 무섭진 않았다. 오히려 노래를 부르며 걷거나, 동네 아이들과 장난을 치기도.
고마운 초대. 행복한 가정으로의 방문 - Tuvshintungalag(틉신통가락; 틉셔; 통가) 사서와의 인연 -
2007년 8월 말, 한달 남짓한 KOICA 몽골사무소의 현지적응훈련이 끝나갈때쯤 일주일 정도를 기관측 사람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기관으로 출근도 하는 등 OJT(On the Job Training) 기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때 나는 사진 속에 있는 열람서비스과의 Tuvshintungalag 사서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되었으니..
치안에 문제가 있는 15구역에서 홈스테이를 했었기에 Tuvshintungalag 사서는 노심초사 나의 안전에 대해 상당히 예민할 정도로 신경을 썼었고, 거실을 포함한 2개의 룸들 중 룸 하나를 나에게 내어주고는 자신을 포함한 자신의 여동생과 여동생의 친구, 그 친구의 갓난아이까지 가족 전체가 한 방에서 일주일간 지내는 등 정말이지 내가 몸들바를 모를 정도로 편의를 바주었었다.
그러다 홈스테이가 끝나갈때쯤 알게 된 것이, 사실 그녀는 그집에 살지 않았었고, 나를 위해 자신의 여동생에게 부탁을 해 일주일간 그녀의 집에서 지냈던 것이었다. Tuvshintungalag 사서가 살던 곳은 몽골의 전통가옥인 게르(Ger). 사실상 몽골인들의 대다수는 어런소츠(대략 아파트쯤으로 보도록 하자) 등의 건물에서 살지를 않고,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나 나무로 만든 하샤라는 집에서 생활을 하는데, 그녀 또한 상하수도 시설도 없고 전기도 간신히 들어오던 곳에서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몽골은 동거문화가 자유로우며, 결혼 전 동거가 흠이 되지 않는 곳이다). 따라서 나는 항상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너무나도 고마운 마음에 연신 어찌할 바를 몰라 했었는데, 미리 언질을 해놓지는 않지만 나중에 KOICA 측에서 홈스테이 비용을 주기때문에 괜찮다고는 한들, 사실상 내 마음은 편해질래야 편해질 수가 없었다. 이렇듯 나 하나 때문에 가족 전체가 불편한건 아닌지 늘상 신경이 쓰였고 마음 또한 불편했었지만, 한사코 괜찮다고 하는 나를 편하게 지내라며 방을 내어주던 그들에게 내가 불편하다고해서 아직 몽골 생활에 익숙치 않은 내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것도 이들에겐 꽤나 큰 걱정거리가 되겠고, 이들이 늘상 괜찮다고 하는대도 끝까지 거절을 하는건 후한 손님접대의 문화가 있는 몽골에서 과연 결례인가 아닌가라는 문제를 두고 생각해보았을때 그들에게 있어선 '우리의 손님접대가 후하지 않아서 그런것이다'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싶어 어찌되었든 이곳에서 가족들과 즐겁게 잘 지내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동기 단원들의 송별식을 제외하고는 홈스테이 기간 모두를 Tuvshintungalag 사서의 집에서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했다. 아직 양고기에 익숙치 않았던 내가 군말 없이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너거태슐(양고기 외 야채 등을 넣고 끓인 국)을 네그릇씩이나 비워가면서 말이다.
그러다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국립중앙도서관의 '(아시아)문화동반자사업'에 지원하게 된 Tuvshintungalag 사서를 도와주게 되면서 더욱더 친해지게 되었는데, 그녀의 한국어 학습을 위해 해외인력송출센터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던 원대한 단원에게 부탁을 해 한국으로 가기전 잠깐이나마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녀가 한국에 가 있는 약 1여년 가까이를 이메일을 주소 받으며 그녀의 연수를 도와주게 되었다.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된 '틉셔(Tuvshintungalag)-희그네(희근이)-대한박샤(대한 선생님)'의 라인. Tuvshintungalag 사서가 몽골로 돌아오고, 또 그녀의 딸인 턱토를 출산하게 되고, 더불어 원대한 단원의 귀국이 초읽기가 되면서 정식으로 초대를 받게 된 그녀의 집. 우리가 좋아한다는 감자 호쇼르(몽골의 전통 음식인 튀김 만두. 원래는 살짝 양념된 양고기가 들어간다)며 몽골의 전통 음식, 또 고비 알타이의 지역명물인 백포도주까지 한상 거하게 차려놓고는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이때 찍은 사진들을 이렇듯 바라보고 있노라면,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복한 미소들에 아직까지도 기분이 한껏 좋아지는데, 아직 사진을 찍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한껏 환한 웃음을 짓다가도 사진만 찍으면 굳어지는 그들 내외를 보며 원대한 단원과 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던 기억도 난다.
그야말로 고마운 초대, 행복한 가정으로의 방문.
이렇듯 이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하고, 또 소중한 추억들을 한껏 만들었기에 너무나 다행이라는, 행복하다는 생각을 아직까지도 하곤 한다.
이제는 3년전 처음 만났던 그때와는 다르게 Tuvshintungalag은 한 남자의 부인이 되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또한 내가 남기고 온 몽골 국립도서관 한국학정보센터의 현지 담당 사서가 되어 새로운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다시 그녀를 만났을때, 과연 우리는 서로 어떤 모습일까?
아직까지도 주고 받는 소소한 일상 속의 이메일들. 그녀와 내가 주고 받은 이메일에서 이미 지나간 조금은 잊혀졌던 옛 추억도 잠시 되살려 보며, 잊지 않고 연락을 해주는게 그저 고맙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 소소한 이메일들이 1년 2년 3년 그리고 10년쯤 쌓이면, 이것도 하나의 멋진 스토리이자 깊은 인연이란게 되겠지?
"저도 보고싶습니다. 그리고 고마워요, 통가. 멋진 한국학 사서로써의 모습을 기대할께요."
Sain baina uu higen shi ajil sain uu sonin yu bna daa sanaj bn auu higen shi manaihan namar bolohoor soyolin ajiltni odor geed hodoo yawdag bas zondoo humuus yawdag duuldag ter maani boloh geed margaash hodoo yawan chi sain yu bna daa mongol helee martaagui biz dee martaj bolohgui shuu bi chamaig ih sanaj bna aa bid tsomooroo sain bgaa Za daraa uulziya hairtai shuu baka
- Sep 10, 2010
안녕하세요 희근씨 하고 있는 일은 잘 되고 있나요? 새로운 소식은 있어요? 희근씨 우리는 가을이 오면 '문화예술인들의 날' 행사로 지방(유원지)에 가곤해요(참고: 몽골 교육문화과학부 산하 문화예술과 소속의 도서관, 박물관, 국립극장 등의 소속인들이 모두 함께하는 문화체육행사). 많은 사람들이 가구요, 우리들(몽골 국립도서관 사람들) 또한 내일 이 행사에 참가한답니다. 희근씨는 잘 지내요? 몽골어는 잊지 않았지요?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많이 보고 싶어요. 턱토와 저는 잘 지내요. 그럼 다음번에 만나요. 사랑합니다. 안녕.
- 2010년 9월 10일
다음은 지난 2009년 4월 27일에 있었던 '오바마 자서전 출판 행사' 당시의 모습이다.
이렇듯 자주는 아니지만, 몽골 국립도서관(The National Library of Mongolia, MYHC)에서는 각종 출판 행사를 갖기도 한다.
각 방송국 및 신문사, 그리고 정계 외에도 여러 유수의 석학들이 함께했던 자리였다.
정확한 행사 시작 시간이 끊임없이 바뀌자 나마저도 시간에 맞춰 갈 수가 없었었다. 점심식사 후 부랴부랴 갔을땐 이미 행사가 끝날때쯤. 그러나 이곳의 굉장했던 열기 만큼은 나또한 느낄 수가 있었다.
오바마 자서전 출판 행사상의 현수막.
이렇게나 빨리 몽골어로 번역이 되어 출판되다니 사실 놀라웠다. 그만큼 몽골 현지 내에서도 미국과 더불어 오바마 미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일거라 생각한다.
오바마 미(美)대통령은 인성적으로나 리더로써의 능력 등등 여러가지 면에서 보통 그 이상을 뛰어 넘는 대단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바마 대통령 그 자체에 대한 높은 평가보다도 드디어 부시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에 더 큰 기쁨이 서려있기에, 이 사실 자체에 더욱더 큰 미소와 환호성을 연신 내지르고 있다. 드디어 '새로운 시대가 왔노라'며 말이다. 허나 아마도 모두가 이와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는 무척이나 클거라 생각을 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대단한 반미주의자나 반부시세력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단지 반부시세력이라고 말하기엔 그에 대한 적대적인 행동이나 언성을 심각할정도로 크게 높이지는 않아서 그렇지, 부시 전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군사적 회의감이나 비판의 목소리가 아예 없는 사람은 또 아니다. 오히려 부정적인 시각으로 봐왔고, 또 문제가 있었다고 확신하는 사람중 한 사람일테니 말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꽤 되었기 때문인지, TV에서의 국제뉴스나 해외토픽 등에서도 반부시세력들의 여러 모습이 비춰진건 사실상 매우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왠지모르게 나는 미국민들의 반부시세력은 소수의 이야기일거라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적어도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 앞에서는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을거라며 말이다.
허나, 언젠가 버지니아 출신의 한 미국인 영어회화 강사가 짖궂은 개그 모션을 취하며 내질렀던 한 마디에 이런 생각은 송두리째 바뀌고야 말았다. 그녀는 한손으로 주먹을 쥔채 자신의 얼굴을 밀쳐내듯 때리며,
"Bush? Push!"
라고 온 강의실의 학생들이 당황하여 웃을만큼 반대 의사표현을 강하게 했었다.
자신이 속한 국가의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것. 그리고 이를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에게 표현하는 것. 나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그때에도 그렇게 생각을 했었고, 외국인과 살을 맞대고 해외에서 지내고 있는 지금 또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마 지금의 한국 정세가 그리 조용하지도, 또 평온하지도 않기에 그런 것일까?
해외에 있기에 한국 내의 정보를 빨리 전해들을 수가 없어, 또 나름의 한계란 것이 있어, 한국에 있는 것보다야 사실상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은 사실이라면 사실이다. 그러나 대략적인 사건.사고, 또 핫이슈인 몇몇의 소식들은 알고 있기에 아주 또 모르는 것은 아니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왜 나는 마치 내가 제3국의 중립국에 있는듯 마냥 나의 일이 아닌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마는 것일까? 아마도 직접 살을 맞대지 않고 있기에 생생한 체감을 하지 못하여 그러한 것이리라 생각하지만, 자꾸만 시간이 흐를수록 모국에 대한 관심이 옅어져만 가는 나 자신을 보며 큰 반성을 하곤 한다. 정치라는 것이 사실상 소수의 놀이로만 비춰질 수가 있긴 하지만, 찬찬히 그 본질을 꿰뚫어보면 모두의 관심과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른바 참여필요적 생산 활동 그 자체이지 아니한가.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해외에 있기에 내가 느끼는 어떠한 장점도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제3국에 있음으로서 매우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여, 그 어떠한 판단을 내릴 수가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한국인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을 벗어나, 보다 더 큰 시각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위치이고, 또 분위기를 탈래야 쉽사리 탈 수가 없는 상황이기에 머리는 이상하리만큼 더 차가워질 수밖에 없다. 다들 궁금하지 않은가?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은 과연 어떠할 것인지, 또 나와 같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은 어떠할 것인지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무엇보다도 이러한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로 인해 한국을, 대한민국을 보다 색다르게 보고 듣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배우게 되며, 깨닫게 된다. 순간순간 나 마저도 제3자의 입장이 되어가면서, 또 제3의 귀와 눈을 가져가게 되면서 말이다.
Gobi를 향하던 중에 들린 작은 마을, Tsogtovoo Sum(척트어버 솜).
이곳의 작은 도서관에 들려 사진을 찍었다. 교실 절반도 채 되지않을 낡고 작은 도서관. 이곳의 사서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여러가지 생각들이 교차되며 이윽고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이고야 말았다. / 위의 사진은 도서관이 있는 건물 앞의 동상에서. 언제 찍힌건지도 모르겠다.
도서관은 Sum(솜)의 문화회관과도 같은 곳에 있었다. 낡은 단층짜리 건물이 전부.
세계은행의 프로젝트로 만든 '문화-1 프로젝트 : 공연(춤/음악) 예술'이란다. 총 4,275,410 T(투그릭)이 소요되었다고.
들어서자마자 좌측은 이렇게 작은 공연장과도 같은 춤과 음악을 배울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중앙우측에는 아래와 같이 작은 도서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이런 도서관들을 둘러보는것이 좋다. 내가 무언가 새로 배울 멋드러진 지식들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그저 바라보고 사서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지고 채워지는 것들이 참 많은 곳이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배울 수 있는 이런 것들을 어떻게 말로서 다 풀이할 수가 있을까?
이 솜의 도서관에는 보이다시피 신간도서가 없다. 읽기조차 힘든 낡을 책들만이 가득한 도서관. 이러한 이야기를 내가 속해있는 몽골 국립도서관의 Buyanhishig(보양히식) 사서에게 하니, 그런쪽으로 편성된 국가의 예산 자체가 없을거란다. 그렇다보니 환경자체가, 교육의 질 자체가 이곳에서도 현저히 극과 극으로 치닫을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읽을만한 동화책 등이 있는 서가. 그러나 이 역시 마땅한 답이 없다.
이곳의 사서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사서와 관련된 지식을 습득한 사람은 아니였던것 같다. 이곳에서도 BBK(러시아의 도서분류법)로 분류를 한다던데 사실상 그 사서가 한것 같지는 않아보였고, 분류와 라벨링은 커녕 제대로 된 도서대장 또한 없는것처럼 느껴졌다.
Tsogtovoo sum(척트어버 솜) 도서관에서의 사진.
물이 귀한 몽골의 지방을 이동중이었기에 제대로 씻지 못해 머리가 부자연스럽다. 매일 밤 샤워를 하지 못하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이거늘, 몽골의 지방을 다닐땐 이상하리만큼 씻지 않는 것이 아무렇지 않게 된다. 그런데 웃기게도 씻을 수 있는 여건이 되는데 씻지 못하면 이것이 너무나 힘이 들지만, 씻을 수 없는 환경이 또 막상 닥치면 위에서 말한대로 마음을 비워서인지 전혀 힘들지가 않게 되버린다. 이럴때마다 매번 생각하지만 어쩌면 오지탐험이 나에겐 체질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살짝. 물티슈라도 구해 다닐 수 있는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건지 아마 모를거다.
그리고 맨 마지막 사진은 Tsogtovoo sum(척트어버 솜) 인근에서 만난 한 유목민 아이와 함께.
외국인이 신기하면서도 조금은 낯설어 주위에서 쭈뼛거리며 그저 서성이던 아이를 불러 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누니 그제서야 환하게 웃음을 짓는다. 그 작은 미소가 어찌나 예쁘던지 다들 상상을 할 수가 있으련지.
이제는 이렇듯 어린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이 당연하고도 즐거운 일들이 되어버렸다. 나는 아이들의 웃음과 미소가 좋다.
2009.06.10. Tsogtovoo cum
2009.06.09. - 06.16. Gobi, Mongolia : 많은 사진들의 업로드는 미정
Chinggis Khaan(칭기스한)의 고향인 몽골의 동쪽, Hentii Aimag(힌티 아이막) 여행중에 한적한 도로에서.
원대한 단원, 또 한국에서 오신 원 단원의 친구분인 이광영 선생님, 그리고 안윤식 단원과 더불어 분위기 메이커였던 운전사 처거까지. 정말이지 꽤나 즐거웠던 여행이었다. 물론, 도중에 KOICA 사무소의 부탁으로 잠시 공적인 업무를 하기도 했었지만 이 마저도 좋은 경험이었다.
아무튼, 여행사진 및 여행기는 북서여행과 마찬가지로 언제 올릴지 미정. 참 쉽지가 않다.
무료 도서 관리 시스템인 koha. 찾고야 말았다.
내가 근무하는 몽골 국립도서관(MYHC, The National Library of Mongolia)의 한국자료실에 한번 적용해볼까 고민중인 프로그램. 그도 그럴것이 몽골 국립도서관의 도서관리 시스템인 Catalogue는 최소한의 제대로 된 도서관리마저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도서관으로의 신축.이전시 몽골 국립도서관의 도서 프로그램 자체가 전자 도서관 시스템으로 바뀌며 대대적인 자관의 시스템상에 큰 변화가 있을 예정이기는 하지만, 그때까지의 도서관 운영은 사실상 지금의 시스템에서 바뀔수가 없기에, 현 설치되는 한국자료실을 지금의 방식 그대로 운영하는건 꽤나 곤욕스런 일이기 때문이다.
일단 몽골 국립도서관의 Catalogue 프로그램은,
1. 간단한 서지정보만을 입력 : 필사로 된 도서대장으로의 별도 기입이 필요하다
즉, 서지정보의 기입 자체가 최소한의 기준에도 미치지를 못하고 있으며, 프로그램 상에는 이러한 도서목록 자체를 편의에 따라 프린트하는 것이 불가능하기도 한 것. 쉽게 말해 그저 이용자들의 간단한 기초적 도서검색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 보는 것이 쉽겠다.
2. 사서의 수서업무나 DB 구축, 더불어 각종 자료의 가공 등의 관점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결코 아님 : 사서의 업무는 너무나 고되다
따라서 자료가 입수되면 사서들은 몽골서에 한해 Catalogue로의 간단한 서지정보 입력을(서양서의 경우 유니코드 등의 언어패치가 되어있지 않아 Catalogue의 입력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별도의 필사 도서대장과 목록카드 기입 등을 해야만한다. 곧, 사서의 모든 업무는 Catalogue 프로그램 내에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3. 그렇기에 별도로 진행되는 모든 업무들 : 레이블 작업마저 마찬가지
바코드, 분류기호 등의 레이블 작업마저 Catalogue 프로그램 자체에서 출력이 불가능하기에, 사서들은 일일히 출력을 요하는 정보들을 손으로 타이핑하고, 또 A4 용지에 이를 출력해, 칼로 일일히 자른 다음(라벨용지 또한 사용하지 않는다) 스카치테이프로 붙이는 고난의 작업을 하고 있다. 한 나라의 국가대표 도서관이라는 곳에서, 한 나라의 가장 막대한 자료 공간속에서, 당신들은 이 고난을 가히 상상이라도 할 수가 있겠는가?
4. MARC의 非적용 : 아예 MARC 자체를 모른다
몽골에 상용화된 MARC(MAchine Readable Cataloging, 기계가독형목록) 포맷 자체가 별도로 없지만, UNIMARC 또한 적용되지가 않은지라 서지정보의 반출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국자료실의 입수된 신간자료들도 MARC 반입만 가능했어도 한결 손쉬웠을거라 생각한다. 데이터를 반입하되, 포맷(사항)이 다른 항목에 대해선 일부 수정만을 가하면 되었을테니까.
5. 그렇다고 이용자의 검색도 용이하지는 않다 : 검색이 되기는 되는건지?
한국에서처럼 다양한 항목으로의 확장 검색이 되지 않는다. 즉, Catalogue 프로그램 내에서 이용자는 두가지의 항목으로만 자료를 검색할 수가 있다. 바로, 서명과 저자명. 그렇다고 이것들이 다 검색되는 것은 아니다. 예로, '세종대왕'를 검색하였어도 검색되지 않는 책들은 무수히 많다. 이는 키워드나 주제어 설정이 되어있지도 않고, 또 세종대왕과 관련된 자료일지라도 서명과 저자에 이 단어가 기록되지 않았으면 검색이 되지가 않는 것.
6. 인터넷을 통한 자료검색, OPAC이 될리가 만무 : 할 말이 없다
관내 LAN망을 통해 Catalogue 프로그램은 이용자들에게 정보검색실 내에서 이용이 되어지고 있는데, 이보다 확장된 차세대 OPAC(Online Public Access Catalog, 온라인열람목록)으로의 접근은 사실상 구축자체가 되어있지가 않다.
즉, 웹(인터넷)을 통한 자료의 검색이나 자료현황 등은 서비스 자체가 되어있지 않은 것. 당연히 상호대차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고(불가능), 자관에 방문하지 않으면 자료의 검색 또한 할 수가 없는 것은 물론이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쯤에서 각설하도록 한다.
사실상 내가 파견된 국가 자체가 개발도상국이기에 이러한 시스템 모두를 기대하고 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중심시스템 자체를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앞으로의 변화에도 적용할 수 있고, 더불어 한편으론 이곳에서 앞서나갈 수도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도입한다는건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파견된 기관에서의 모든 업무를 그리하는 것이 정석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어떠한 점에선 이 koha 또한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이 시스템을 인스톨하여 제대로 된 데모 운영을 해보지도 않았고, 반대로 또다른 예외 변수가 있을 수 있으니 시간을 들여 여러모로 고려를 해보아야 한다는건 당연한 일일것이다. 따라서 일단 프로그램을 설치하여 찬찬히 살펴본 다음, 여러가지 항목면에서 만족스러울만한 OK 싸인이 떨어지면, 내가 속한 한국자료실의 자료를 koha를 통해 관리해 볼 생각으로 있다. MARC 자체도 MARC21과 UNIMARC를 지원하기에 선택의 폭도 있고, 사서의 수서나 정리적인 측면, 또 이용자들의 자료 검색적인 측면에서마저도 지금의 Catalogue 프로그램 보다야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더 뛰어날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가장 걱정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분류 항목과 언어패치적인 문제이다. 특히 언어패치적인 문제로(물론 이외에도 여러 호환성 문제가 있긴했지만) 한국 광주과학기술원의 무료 웹버전 도서관리시스템인 KORSA-ASP 또한 적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koha에 거는 기대만큼 걱정도 만만찮게 앞서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무어라 단정지어 말하기가 어려운 상황이기는 하지만, 다음주내로 인스톨을 하여 제대로 살펴본 다음, 빠른 시일내 확정을 짓도록 해야하겠다. 이제는 개관일도, 자료정리도 모두 D-Day를 세어야되는 시기가 아닌가.
About Koha
Koha is the first open-source Integrated Library System (ILS). In use worldwide, its development is steered by a growing community of libraries collaborating to achieve their technology goals. Koha's impressive feature set continues to evolve and expand to meet the needs of its user base.
Full-featured ILS. In use worldwide in libraries of all sizes, Koha is a true enterprise-class ILS with comprehensive functionality including basic or advanced options. Koha includes modules for circulation, cataloging, acquisitions, serials, reserves, patron management, branch relationships, and more. For a comprehensive overview of features visit the Koha feature map.
Dual Database Design. Koha uses a dual database design that utilizes the strengths of the two major industry-standard database types (text-based and RDBMS). This design feature ensures that Koha is scalable enough to meet the transaction load of any library, no matter what the size.
Library Standards Compliant. Koha is built using library standards and protocols that ensure interoperability between Koha and other systems and technologies, while supporting existing workflows and tools.
Web-based Interfaces. Koha's OPAC, circ, management and self-checkout interfaces are all based on standards-compliant World Wide Web technologies--XHTML, CSS and Javascript--making Koha a truly platform-independent solution.
Free / Open Source. Koha is distributed under the open-source General Public License (GPL). More information on the GPL can be found here.
No Vendor Lock-in. It is an important part of the open-source promise that there is no vendor lock-in: libraries are free to install and use Koha themselves if the have the in-house expertise or to purchase support or development services from the best available source. For more information about obtaining support visit the support page.
아무튼 각설하고 본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테스팅도 못해봤습니다.
몇 번이고 건의로 테스팅이라도 해보자며 귀국전까지도 전산실쪽에 이야기는 계속 넣기는 넣었었는데 전산실 담당자의 귀찮은 일이라 생각하는거 반(새로운 일에 대한 의욕이 없었죠), 또 국립도서관이라 한번 테스팅을 시작해서 시범으로라도 일단 전환을 하게되면 다른 도서관까지 영향이 미칠수가 있기에 조심스러운거 반으로 무산이 되었어요.
대신 몽골 울란바타르시립도서관(UB시립도서관)은 koha로 전환중에 있다는 소식을 얼마전에 들었습니다. KOICA로 파견된 신혜영 사서가 UB시립도서관에 있으니 테스팅이나 전환작업에 대해선 그쪽으로 문의를 하시는게 제일 빠르지 싶고, 한도협의 '도서관문화'에서 베트남으로 파견되신 KOICA 김효선 사서님의 원고를 읽으시면 UNESCO의 무료 배포용 프로그램이나 그 외 관련된 정보를 아주 조금은 아실수도 있는데, 자세한 내용을 원하신다면 직접 서치를 굉장히 많이 해보셔야 될거에요.
저또한 많은 프로그램들을 알아봤지만 koha가 제일 좋겠다라는 결론이었고, UB시립도서관의 Begzsuren 전산(사서) 담당자와도 몇 번이고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 분 또한 자신이 아는한 koha가 제일 났겠다란 의견이셨습니다.
ㅇ. 독일 GTZ(Gesellschaft für Technische Zusammenarbeit) 주최, 몽골 환경 캠페인 - 2008.05.24.
독일 정부의 해외원조기관인 gtz의 몽골 환경 캠페인.
몽골 NGO 단체와 KOICA도 이를 도왔는데, 그야말로 하루종일 삽질과 중노동만 했었던. 참으로 좋은 캠페인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으나, 결론적으로 이래저래 아이러니한 일들이 많았기에 지금도 무어라 좋게만은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다.
불가리아대사관과 일본대사관 앞 중앙 화단에서의 작업.
우리가 심고있는 나무들은 큰 나무부터 이렇게 작은 나무까지 골고루였다.
JAICA(Japan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자이카, 일본의 해외원조기구)는 일본대사관에서 행사 축하인사만 하러 오고, 단원들은 오지 않았었다. 따라서 불가리아대사관과 일본대사관 앞 중앙 화단 모두를 KOICA와 몽골의 NGO 단체가 맡았었거늘, 가만히 생각해보니 JAICA가 했어야했다는 생각이 들게 되자, 나도 어쩔 수 없나란 생각에 나지막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사진 속의 외국인은 gtz의 직원. 독일은 볼런티어 파견이 아닌, 정부 프로젝트 사업(해외원조)만 진행한다고 한다.
그리고 사진으로도 언뜻 짐작되듯이, 몽골은 기후가 건조하기에 땅 또한 매우 메말라 있었다. 그렇다보니 먼지도 많았고, 무엇보다 돌무더기가 잔뜩이었던지라 삽질이 너무나 힘이 들 수 밖에 없었던 것. 하지만 이렇듯 힘이 든 것보다도, 과연 이러한 메마른 땅에서 우리가 심은 나무들이 잘 살 수가 있을지 의문이 들고야 말았다. 그러자 낮은 한숨과 함께 갑작스레 한무더기의 걱정들이 찾아왔다.
점심. 몽골의 고기 군만두라 볼 수 있는 호쇼르 2개. 솔직히 꽤 놀랐었다.
1) 참으로 점심이 약소하다는 것과, 2) 이 점심을 먹은 후 몽골 NGO 단체와 더불어 거의 모든 캠페인 참가자들이 집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에 말이다. 사실상 전자야 상관이 없었지만(어차피 기대란 것을 안하고 왔기에), 후자때문에 당황 아닌 당황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KOICA와 몽골 단체 한팀만 남아 남은 작업을 모조리 마무리 짓게 된.
물론, 우리 또한 그때 일을 접고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워낙에 남은 잔업도 많았었고, 모두가 갔다고해서 우리들마저 자리털고 일어서기는 단원들 모두가 싫었던 눈치였다. 더운 땡볕에, 중노동에 힘이 들고 짜증이 났을법도 한데 끝까지 작업을 마무리 지은 KOICA 단원들이 한편으론 자랑스러웠다.
점심을 먹고 나서 잠시 쉬기. 정말이지 너무나 좋았던 한때. 따뜻한 햇살에 온전한 봄이었다.
여러모로 기분이 언짢은대다 힘도 들었을텐데 웃음을 잃지 않았던 우리들. 만만한게 JAICA였는지 왜 gtz 환경캠페인에 JAICA는 오지 않은거냐며 투덜되기도 하고, gtz 직원들은 다들 어디로 간거냐며 또다시 투덜되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우리들끼리 참으로 웃기기도 웃겼었다. 또 순진한 KOICA라며 다른 해외원조단체들은 이리될줄 알고 미리 빠진거였나 뒤늦게 경악스런 모션을 취하기까지도 했었던. 하지만 투덜들 되면서 다들 일은 또 어찌나 열심히하던지.
모든 작업이 끝난뒤, 뒷풀이인 gtz의 바베큐 파티장으로.
gtz 사람들의 초대로 KOICA 부소장님과 따로 저녁을 먹을것을 이쪽으로 인사간다고치고 잠깐 들렸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음료만 무료이고 햄버거나 스테이크 등의 음식은 유료인 기부금 파티였던 것. 이에 대한 소식을 전혀 듣지못했던 우리는 다소 당황스러웠지만(저녁을 대접한다는듯한 뉘앙스였기에), 그래도 이해를 하려 노력했었다. 하지만 당연히 저녁을 대접하는걸로 알고 왔던 몽골분들은 꽤나 비싼 가격에 그저 음료만을 마시다 일어서 가시는데 마음이 썩 좋지만은 않았었다. 괜시리 이를 지켜보고있던 내 마음마저도 불편해지는 이유는 왜였을까.
그러다 이윽고 몰려드는 외국인들. 우리가 하루종일 환경 캠페인을 할 동안 그 많은 사람들은 정작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건지, 또 독일에서 주최하는 캠페인이 맞았던건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생각보다 많은 외국인들이(독일인) 몰려 들기 시작했던 것. 그러나 정작 모든 일을 앞장서 끝까지 하고 마무리를 지은건 한 팀의 몽골인들과 KOICA 단원들이 아니던가.
또 여담으로, 이 캠페인 영상이 얼마전부터 독일 gtz 캠페인으로 TV에 떡하고 나온다는데, 나무를 심는 낯익은 웬 KOICA 단원이 등장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yo ve?(뭐야?)"다.
많은 KOICA 단원들이 이를 두고 황당해하거나 언짢아하기도 하는 것은, 사실상 gtz측에선 캠페인의 마무리까지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는 점 때문이다. 즉, 자기네들 캠페인을 gtz 주축으로 돌린것이 아니라, 타이틀과 명함만 gtz 주최지 정작 캠페인의 실질적 활동은 외부 단체가 다 한거나 다름이 없었다는 것. 캠페인의 주체였던 gtz측이 인원이 많던 적던 보다 더 적극적인 자세로 끝까지 캠페인을 함께 했으면 무척이나 좋은 인상으로 남았을텐데, 이 캠페인에 처음부터 참가했던 나로써는(혹은 우리들로써는) 그러지 않았던 gtz의 캠페인 자체가 그저 안타깝기도 하고, 조금은 gtz측이 얄밉기도하고, 여차저차 결론적으론 썩 좋지 않은 인상으로 기억되고야 말았다.
더불어 행사에 참가한 단체에겐 구체적인 캠페인의 일정이나 기타 사항 등을 제대로 공지를 했어야했는데, 끝까지 캠페인에 참가한 우리들이었지만 사실 우리들은 정작 이 캠페인이 끝난 뒤에도 적잖은 혼란스러움을 느껴야만 했었다. 기부금 파티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기분 좋게 우리도 이에 흔쾌히 동참을 할 수가 있었을텐데,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얼떨떨하기만했던 우리들은 준비된 여분의 돈도 없었고, 또 그때 당시 KOICA 부소장님의 지출로 기부금 파티에서의 소세지 햄버거를 맛보며 자연스레 이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역시 그 찜찜한 기분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맛있는 저녁을 먹는다며 들뜬 마음으로 왔다가 이내 일어선 몽골인 한팀을 지켜보았기때문에 더욱 그러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그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지 않았기에 이렇게 큰 언짢음을 느끼는건 아니다. 단지 그들에게 기부금 파티에 대해 사전에 잘 설명을 했어야했다고 생각한다. 미리 그들이 알았더라면, 그리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을게 아닌가.
이렇듯 좋은 일들을 하고도 이러한 기분을 왜 느껴야만하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무척이나 아이러니하다. 더불어 그 이후로 (몽골에서 실시하는)많은 캠페인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이자 버릇 아닌 버릇이 생기기도 하였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gtz뿐만이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그리고 몽골이란 나라 그 자체내에서도 여러가지 많은 캠페인들이 열리게 되길 바라며, 그 필요성을 몸소 느끼고는 있다. 한해, 두해. 이렇듯 시간과 횟수가 거듭될수록 더 좋은, 그리고 더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들이 이곳엔 너무나 많고, 또 절실히 필요하다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보다 더 많은 분야에서, 보다 더 다양한 형태로 각가지 캠페인들이 열려야된다고 생각한다. 비록 문제가 있을지언정 시도조차하지 않는 용기 없는 행동보다는, 직접 부딪히며 문제점들을 하나씩 해결해가는 것이 보다 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KOICA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사무소나 본부로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든 안받든, 최소한 단원들의 소소한 노력으로라도 어떠한 하나의 캠페인을 자그마하게 이루어낸다면, 몽골이란 이 나라에서 참으로 뜻깊은 일을 한가지 더 하고 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어떠한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는 것. 미처 깨우치지 못했던 것들을 일깨워주는 것. 그리고 모두를 동참시켜 비로소 이를 실행해나가고 또 바꿔나가는 것.
어쩌면 우리 단원들이 파견된 진짜 이유가 아닐까도 싶다. 그래서 늘 생각한다. 내가 속한 기관에 대한 책임과 의무. 그리고 그 이외 내가 이곳에 줄 수 있는 작은 도움들과 긍정적인 영향들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 정말 이곳에서 무엇을 더 할 수가 있을까?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한데 말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98년~00년에 몽골 코이카 단원으로 근무했던 사람입니다.
전부터 가끔씩 들어와 글을 읽곤 했는데 오늘 처음으로 글을 남겨 보네요.
이 글을 읽으니 제가 괜히 마음이 뿌듯해지는군요. 나무 심으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님을 비롯한 여러 단원분들의 수고는 언제든 어떻게든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나무들도 시들지 말고 건강히 잘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초창기나 다름없는 OB선배님이시네요. 반갑습니다. 98~00년이면 단원수도 많이 적었을테고, 또 지금보다 활동하시기 힘이 드셨을 환경이었을거라 생각합니다. 참, 저희 몽골 코이카 단원들 싸이월드에 클럽이 있습니다. 가입하시면 여러가지 소식들을 접하시기는 한결 편하실거에요. club.cyworld.com/koicamongolia
올해 7월, 활동 종료를 앞두고 있었거늘 도무지 일이 끝나지 않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그리하여 사실 연장 이야기는 올해 초부터 계속해 나오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물론 연장의 필요성을 나 스스로가 많이 느끼고는 있었지만, 후임이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무엇보다도 내 개인적으론 더 나이를 먹기 전에 대학원에 진학하고자 하는 욕심이 컸던지라, 한편으론 한국에 빨리 귀국하고픈 마음이 조금은 더 컸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기관측에선 KOICA를 통한 후임의 부재와 더불어, 기관측의 현지 후임도 확정이 되지 않은터라 이래저래 더욱더 나의 연장을 원하게 되었고, 그간 쭉 진행해오던 사업 또한 마무리가 되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나의 연장은 기관측에서 보자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렇듯 몇 달동안 부담 백배로 관장님과 부관장님을 맞닿드려야 했으니, 나는 그저 한숨만 내리 쉴 뿐이었다. 사실 기관측의 요청에도 타당성이 있었으니 대놓고 거절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기관측의 요청은 최대 연장기한인 1년 연장. 그러나 나는 도무지 1년까지는 있을 자신이 없어 6개월만 더 있기로 마음을 먹었고, 지금 진행중인 한국자료실 관련 사업들을 어느정도 마무리 짓고, 또 운영도 좀 하다가 여력이 되면 교육도 하고, 인수인계도 확실히 하고. 물론 6개월이란 시간 동안 하기엔 빠듯한 일정이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한 업무의 진행도 개인적으론 이곳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과감히 6개월이라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연장 기간에 대한 후회는 없다.
그간 내가 해왔던 방식과 방법이 있었다면, 또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의 방식과 방법도 있을거라 생각한다. 어떤것이 옳고 그르고는 없다. 단지 상황이나 일에 맞추어 봤을때 보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이게 더 낫다라는 것은 있을 수가 있겠지만.
단지, 나는 내가 이곳에 더 있게 되면 내가 한 것들이 전부가 되어버릴까봐, 내가 한 방법들이 전부가 되어버릴까봐 두려운 것이 없지않아 있는것은 사실이다. 더불어 나 스스로도 나를 필요로 하는 이곳에 조금은 쉽게 안주해버릴까봐 두려운 것 또한 사실이라면 사실이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다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들을, 학업들을 진행해 나가고자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제는 지금 이곳에서의 일들을 정리할 때라면서.
그래, 난 남은 기간동안 내가 이곳에서 이루고자했던 것들을, 그리고 이곳에서 내가 꽃피워야할 것들을 활짝 피워, 달디 단 열매를 한가득 맺고야 말겠다. 이제는 지난 2여년 가까운 시간들을, 그 고난과 고통과 또 온갖 노력들을 비로소 꽃 피울때가 아닌가. 나의 그 결실이 이제는 맺어질때가 아닌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